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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ul 03. 2019

#29 나로 인해 다쳤을 상대의 마음을 생각하는 것

고흐의 <귀를 자른 자화상>에 덧붙여.


또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마태오복음 5장 29절, 30절        



책을 읽다가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떠오른 이미지가 반 고흐의 <귀를 자른 자화상>이었다. 그리고 고흐가 귀를 자른 이유가, 내가 생각했던 이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측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Self Portrait with Bandaged Ear >, 1889년 1월, 캔버스에 유채, 60.5×50cm. 코톨드 갤러리The Courtauld Gallery

우측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Pipe>, 1889년 1월, 51cm x 45cm, Private collection




나는, 반 고흐에게, 귀를 자르는 것이, 고갱을 잃은 것보다는, 차라리 덜 고통스러웠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흐에게는, 스스로 귀를 자르는 고통이, 마음이 잘린 고통보다는 덜 아팠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성경구절을 보고 나서는 고흐가 귀를 자른 이유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다른 사람이 내 삶을, 내 마음을, 쉽게 단정 짓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 역시 그렇게 하고 있었다.


내게 고흐는 불행한 예술가, 상처 입은 예술가, 고통 속에 평생을 살았던 예술가였다. 그리고 나는 그 고통, 상처라는 키워드를 통해 고흐의 <귀를 자른 자화상>을 보았다. 물론 고흐의 삶이 행복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불행이라는 말로 그를 수식하는 것도 하나의 편견일 수 있다.


고흐의 생애를 찾아보니 고흐는 목회자 집안의 아들이었다. 고흐는 예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종교인이 될 수도 있었다. 고흐가 목회자 집안의 아들임을 알기 전까지 내게 고흐는 늘 고통 속에 있는 화가라는 편견만이 압도적이었다. 내게 고흐의 모든 작품은 온통 그의 불행과 아픔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나는 딱 내가 아는 만큼만의 얕은 앎으로 고흐의 그림과 그 안에 든 그 마음을 읽었던 것이다.



어쩌면 고흐는 고갱에게 속죄하고 싶어서 귀를 자른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고흐는 본인의 귀를 자르기 전에 고갱을 죽이려고 했었다. 물론 미수로 끝나기는 했다. 고흐는 고갱을 죽이려고 했던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흐는 스스로 귀를 자름으로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준 상처를 용서받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친구인 고갱이 떠난다는 이유로 그를 죽이려고 한 것은 결코 일상적인 행동은 아니다. 고흐는 그 일이 두 사람 사이에 얼마나 큰 상처로 남을지를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상실감 때문에 고갱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는 것도 알았던 것 같다.      


고흐가 귀를 자른 건 단지 본인이 상처를 입어서가 아닐 것이다. 물론 고흐에게는 고갱이 떠난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고갱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이, 고흐에게는 훨씬 더 괴롭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고갱에게 상처를 준 것은, 고흐에게는 죄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고흐는 그래서 귀를 잘랐던 것 같다.


고흐가 귀를 자른 마음 어딘가에 한 번쯤 고갱이 돌아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었다고는 못 하겠다. 그러나 그보다는, 그런 마음을 갖는 것조차 죄스러운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고흐처럼 상대에게 상처를 준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외면했던 것은 아니다.


내게는 내 상처만이 깊어서 다른 상처를 짚어볼 마음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참으로 오만하게 다른 사람의 상처를 너무나 쉽게 평가하고 말았다.

나는 상처의 드러난 면만을 보았을 뿐이었다.

어떤 상처는 쉽게 치유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흔적이 깊게 남은 상처도 있다.

그때 나는 그것을 몰랐다.     


나는 내 상처밖에 안 보였다.

내 상처만 보느라 그 과정에서 또다시, 어쩌면 더 큰, 상처를 주고 말았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그렇다.

지금도 크게 나아졌다고는 못 하겠다.



그러니, 내가 사랑을 모르는 게 너무나 당연한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랑이라는 마음은, 귀를 자른 고흐의 마음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니까 사랑은, 나로 인해 상처 받았을, 상대의 마음까지도, 그 상처까지도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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