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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ul 10. 2019

#32 당신의 가면 뒤에는, 내가 있었다.

싫었던 당신에게서 위태로운 나를 마주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처음에, 일시적 당신을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내게 당신을 만날지 물어보셨을 때, 나는 아예 당신과의 만남을 거절했다. 그 순간 나는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내가 잊고 있던 것이 있었다. 내 부모님은 답정남, 답정녀였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내게 물어본 것은 내 답을 원한 게 아니었다. 당신을 만나도록 나를 설득하기 위함이었다.



내 부모님이 나를 설득할 정도로 당신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많았다. 당신은 화려한 경력과 아픈 상처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당신은, 아마 내 부모님 기준에 몹시 특이한 나를 이해하기에, 매우 적당하게 느껴진 것 같다.

내가 당신을 만나지 않고 싶었던 이유도 내 부모님과 같았다. 그 화려한 경력 뒤에 가려진 상처가 나는 무서웠다. 그 상처에 대해 자세하게는 알 수는 없었다. 그저 얼핏 들은 정도만으로도 내게 당신의 그 상처는 버겁게 느껴졌다. 당신이 그 시간을 견디느라 얼마나 노력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그 상처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부모님과 나는 꽤 오래 실랑이를 벌였다. 부모님이 물어볼 때마다 못하겠다고 매일같이 울면서 말했다. 그러다 결국 지친 내가 포기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상처를 감당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한 번만 만나고 안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당신과 연락을 주고받던 그 날, 나는 그렇게나 울고 있었다. 그때는 추운 겨울이었다. 그 날 나는 버스정류장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너무 울어서 도저히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서 당신을 만나야 하는지를, 나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를 않았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연락하는 당신이 싫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적극적인가 싶었다. 나를 배려하는 것도 싫었다. 아니 정확히는 당신의 모든 것이 싫었다.


문제는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너무 밝았다. 당신에게서는 어떤 상처도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것조차도 싫었다.

그런데 궁금해졌다. 상처를 별 것 아닌 일로 여기거나, 그 상처를 매우 별 것으로 여기지만 겉으로는 아닌 척하는 사람이거나, 그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당신은 후자였다. 아주 작은 상처에도 매우 크게 아파하는 예민한 사람이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며, 웃으며 괜찮다고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다.


당신은 늘 괜찮다고 웃으며 밝은 목소리로, 당신의 모든  것을 감추려고 했을 것이다. 아마 당신은 몰랐던 것 같다. 당신이 쓴 가면은 이미 너무 상처투성이라서, 앙소르 Ensor의 그림 속 사람들 보다 더 기괴할 정도로 아픈 모습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JAMES ENSOR, Squelette arrêtant masques (Skeleton stopping the Masks), 1891, Sotheby's



어쩌면 그 처음에, 나는 그런 당신에게서, 나를 보았던 것 같다. 앞에서는 늘 태연하게 웃고 있지만 돌아서서는 늘 그렇게 울고 있는, 위태로운 나를.



그렇게, 당신을 만나고서야,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지는 지를 알 것 같았다.

나 역시, 작은 상처에 아픈 만큼, 상처주기를 싫어하고, 그래서 지나치게 배려하는 사람인 걸 알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방어형 인간이 된 것도 알았다.

스스로는 온통 감추려고 하지만,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안간힘을 다해 버텨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기에, 다들 모를 수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당신이 싫었음에도, 내겐 당신을 만나야 하는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 순간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다른 모습으로라도 당신과 한 번쯤은 만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통해서 나를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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