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처음에, 일시적 당신을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내게 당신을 만날지 물어보셨을 때, 나는 아예 당신과의 만남을 거절했다. 그 순간 나는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내가 잊고 있던 것이 있었다. 내 부모님은 답정남, 답정녀였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내게 물어본 것은 내 답을 원한 게 아니었다. 당신을 만나도록 나를 설득하기 위함이었다.
내 부모님이 나를 설득할 정도로 당신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많았다. 당신은 화려한 경력과 아픈 상처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당신은, 아마 내 부모님 기준에 몹시 특이한 나를 이해하기에, 매우 적당하게 느껴진 것 같다.
내가 당신을 만나지 않고 싶었던 이유도 내 부모님과 같았다. 그 화려한 경력 뒤에 가려진 상처가 나는 무서웠다. 그 상처에 대해 자세하게는 알 수는 없었다. 그저 얼핏 들은 정도만으로도 내게 당신의 그 상처는 버겁게 느껴졌다. 당신이 그 시간을 견디느라 얼마나 노력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그 상처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부모님과 나는 꽤 오래 실랑이를 벌였다. 부모님이 물어볼 때마다 못하겠다고 매일같이 울면서 말했다. 그러다 결국 지친 내가 포기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상처를 감당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한 번만 만나고 안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당신과 연락을 주고받던 그 날, 나는 그렇게나 울고 있었다. 그때는 추운 겨울이었다. 그 날 나는 버스정류장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너무 울어서 도저히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서 당신을 만나야 하는지를, 나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를 않았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연락하는 당신이 싫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적극적인가 싶었다. 나를 배려하는 것도 싫었다. 아니 정확히는 당신의 모든 것이 싫었다.
문제는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너무 밝았다. 당신에게서는 어떤 상처도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것조차도 싫었다.
그런데 궁금해졌다. 상처를 별 것 아닌 일로 여기거나, 그 상처를 매우 별 것으로 여기지만 겉으로는 아닌 척하는 사람이거나, 그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당신은 후자였다. 아주 작은 상처에도 매우 크게 아파하는 예민한 사람이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며, 웃으며 괜찮다고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다.
당신은 늘 괜찮다고 웃으며 밝은 목소리로, 당신의 모든 것을 감추려고 했을 것이다. 아마 당신은 몰랐던 것 같다. 당신이 쓴 가면은 이미 너무 상처투성이라서, 앙소르 Ensor의 그림 속 사람들 보다 더 기괴할 정도로 아픈 모습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JAMES ENSOR, Squelette arrêtant masques (Skeleton stopping the Masks), 1891, Sotheby's
어쩌면 그 처음에, 나는 그런 당신에게서, 나를 보았던 것 같다. 앞에서는 늘 태연하게 웃고 있지만 돌아서서는 늘 그렇게 울고 있는, 위태로운 나를.
그렇게, 당신을 만나고서야,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지는 지를 알 것 같았다.
나 역시, 작은 상처에 아픈 만큼, 상처주기를 싫어하고, 그래서 지나치게 배려하는 사람인 걸 알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방어형 인간이 된 것도 알았다.
스스로는 온통 감추려고 하지만,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안간힘을 다해 버텨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기에, 다들 모를 수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당신이 싫었음에도, 내겐 당신을 만나야 하는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 순간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다른 모습으로라도 당신과 한 번쯤은 만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