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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ul 11. 2019

#33 사소한 일상을 함께할 때, 더없이 특별하다.

나를 설레게 했던 순간은 가장 사소한 순간이었다.



좌 Claude Monet, The Parc Monceau, 1878,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우측은 좌측 그림세부



이른 아침, 어쩌면 새벽, 전화가 왔었다.     


일을 하다 보면 밤을 새워야 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내 무능함으로 치부하기엔 업무량이 너무 많았다. 그날도 그렇게 어김없이 밤을 새워서 일을 했다. 일을 마치고 메일을 보내고 나니 새벽 5시가 되어갈 무렵이었다. 출근할 준비를 하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얼핏 잠이 들었다가 깨고 보니 한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준비를 하고 보낸 메일을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그때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얼떨결에 그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으며 내가 뭔가 실수를 했나 싶었다.

그런 내게 그 사람은, 밤새워 일하느라 고생이 많았겠다며, 잠도 거의 제대로 못 잤겠다고 그렇게 말했다.

본인도 제대로 못 잤을 텐데, 그 사람은 그렇게 나를 걱정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서는 한참 생각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1시간 정도 지나면, 회사에서 만날 텐데, 굳이 왜 내게, 이 시간에 이런 전화를 하는 거지라는 생각 말이다.

회사에서 만나서는, 그 사람과 나는, 그 전화를 하지 않은 것처럼, 밤새 고생했다는 인사를 나누었다. 다행히도 밤을 새운 보람이 있게 그 작업은 무난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일을 마치고 나서 다시 생각했다. ‘이 사람은 왜 나한테 전화를 했지’ 하고 말이다.

친구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왜 나한테 전화를 했을까’라고. 

친구가 말했다. ‘그 사람은 그냥 네가 보고 싶었던 거야’라고.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밤을 새웠음에도 그날 나는 이상하게 들떠 있었다. 이상하게도 힘들지 않았다.

아마 그 사람의 그 전화 덕분이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의 전화는 내게, 병원에서 맞는 링거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사실, 예상하지 못한 그 사람의 전화를 받으면서, 나는 당황스러웠었다.

그런데 그 전화를 마치고 나서는, 당황스러움보다는, 설렘과 고마움만이 남았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그 장면이, 그때의 내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날 만큼.          



집으로 가던 늦은 저녁, 당신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내가 당신을 만나며 설렜던 순간도 그랬다.

당신의 느닷없는 전화 한 통에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때까지의 정황상 당신의 전화는 약속을 변경하자는 내용일 것 같았다.

그 짧은 찰나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안 받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 예상치 못한 전화를 받으며 나는 행복했던 것 같다.

당신 때문에 고민하던 지난 시간들이, 당신의 마음을 의심하던 시간들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그렇게 설렜다.     


그 전화도 아무 내용이 없었다. 

그저, 오늘은 어떤 하루였는지, 저녁은 잘 챙겨 먹었는지, 저녁은 잘 보내고 있는지,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전화였다.


내가 당신을 만나며 가장 설렜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그 전화를 받았던 때였던 것 같다.

아마 그날 그 밤거리를 걷던 사람 중에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나였던 것 같다.          




내가 당신을 만나며 원했던 것은 그런 전화였다.     


당신과 내가 그날 처음으로 전화를 한 것은 아니었다.

이전의 전화들은 대개는 특별한 용건이 있었다. 약속을 정하거나 변경하거나 하는 그런 용건.

그런데 그날 당신이 내게 했던 전화는 아무런 용건이 없었다.

당신과 나는, 그저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하루를 보낸 사소한 일상을 나누었을 뿐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어쩌면, 예전의 내가 생각하기엔, 도무지 쓸데없어 보이는 그런 전화였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그 순간이 그렇게나 좋았다.     

아마 나는 알았던 것 같다. 그 사소한 그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를 말이다.               



사소한 일상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누는 순간 더없이 특별하다.     


잠은 잘 잤는지, 식사는 잘 챙겼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힘든 일은 없었는지... 

이 사소한 말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 알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사소한 말들에 얼마나 큰 사랑이 담겨 있는지를 이제 알 것 같다.

왜냐하면, 아무나 와 그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내가 사랑하는, 혹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 사소한 일상은 절대 사소하지 않다. 사소할 수가 없다. 매 순간이 소중하고 매 순간이 특별하다. 


아마 쇠라 Georges Seurat 나 모네 Claude Monet 의 그림 속에 있는, 공원에서 휴일을 보내는 사람들도 그랬을 것 같다. 여느 때와 같은 주말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 그 순간이 더없이 특별하고 더없이 행복했을 것 같다.          




Georges Seurat, A Sunday on La Grande Jatte, 1884-6, Art Institute of Chicago


어쩌면 그래서인 것 같다. 그저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 순간을 함께 나누어주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으로, 그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다.      


사소한 일상을 나누는 그 특별한 순간, '사소한'이라고 쓰고 "중요한"이라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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