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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ul 13. 2019

#34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가장 쉽지만, 가장 어려운, 그러나 지금 꼭 해야 하는 말.




나는, 꽤 오랫동안, 그녀와의 이별을 준비했다. 그녀의 죽음을, 나이가 들면서 맞게 되는 자연스러운 죽음이라고 믿어야 했다. 그녀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했던 이유가 단지 그녀가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갑자기 쓰러진 이유가 그녀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녀가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버거운 사람들이자 내 친척인 당신 때문이었다.



Edvard Munch, The Dead Mother and the Child, 1897-1899, Munch Museum, Oslo


장례식장으로 가는 그 밤, 그 택시 안에서, 당신을 향해 얼마나 저주를 퍼부었는지 모를 것이다.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당신에게 욕을 퍼부어주려고 결심하며 장례식장으로 갔었다. 내가 그 말을 해서, 내가 예의를 모르는 나쁜 사람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그때 내게는,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내게는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나는 장례식장에서, 그리고 장례가 끝난 이후에도, 당신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게는 당신에 대한 분노보다는, 그녀를 잃은 슬픔이 몇만 배나 더 컸다.      


사실 나는, 장례식장에서 당신이 보인 몰지각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가 되지도 않았다. 그때 당신은, 너무 슬퍼서 차마 아픔을, 슬픔을 드러내지 못한 사람의 얼굴은 아니었다. 

나는 할머니를 잃은 것이지만, 당신은 엄마를 잃었잖아, 당신을 그렇게 사랑한 엄마를 다시 볼 수 없다고, 그런데 어떻게 당신이 나보다 괜찮을 수가 있지, 도대체 어떻게...           


무엇보다 내가 더 불쾌했던 이유는, 당신이 나보다 더 슬퍼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나는 그때 그녀를 잃은 슬픔만도 감당하기에 버거운데, 당신은 내가 슬퍼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당신은 그 짧은 순간에도, 나와 그녀를 사랑한 모든 사람을, 그렇게나 불쾌하게 만들었다.          



당신은 모를 것 같다.


당신은 모를 것 같다. 당신을 사랑한 그녀에게, 당신이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를. 

당신은 모를 것 같다. 그녀가 종이에 내 사진을 고이 접어서 나를 기다린 것보다, 몇만 배나 더, 당신을 기다렸다는 사실을.

당신은 모를 것 같다. 그녀가 원한 건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는 것을. 

아마 당신이 그녀의 손을 잡고 고맙다고 말 한마디만 해주었더라면, 그녀가 가지고 있던 당신에 대한 미움은 다 녹아버렸을 거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너무 사랑한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그런데 너무 미안하다고.


나는 그녀를 보았던 마지막 그날,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가 그 말을 하는 내 마음이 진심임을 몰랐을 리는 없다. 

울면서 말하는 나를 보며, 그녀 역시 나와 함께 울었으니까...          


내게는 그녀와 관련된 순간이면 어떤 것이든 후회로 남는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정말 미치도록, 후회한다. 

사랑한다고 더 자주, 더 많이, 말할걸.

미안하다고 더 많이 말할걸. 

감사하다고 더 자주 말할걸.     


돌이켜보니 그녀는 내게 늘 말했다. 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라고. 

혹시나 내가 모를까 봐,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그렇게 묻기도 했다.

모를 수가 없다. 그녀는, 프레드릭 모건Frederick Morgan의 그림처럼, 내 모든 처음부터, 내 모든 순간을 함께 하며, 내게 사랑만을 주었다. 어쩌면 그녀의 사랑이 있어 내 모든 순간이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나는, 더 자주, 더 많이, 말하지 못했던 것일까.          


Frederick Morgan, First Steps, 19th, Alder Hey Children's Hospital, Liverpool.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이 말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세 가지 말이라고 들었다.

어려운 말이 아닌데, 생각만큼 쉽게, 말하게 되지 않았다.

이 말을 하는 게 왜 그렇게 쉽지 않았던 것일까.     

정확히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가족에게 말하기가 더 어려웠던 것 같다. 

더 자주 말해도 되는데 내 생각만큼 자주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늘 곁에 있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지나쳐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가족이 아닌 남에게는 생각보다 훨씬 더 쉽게 했던 것 같다.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지금 당장 말해야 한다...! 


이 말은 사실 가장 쉬운 말들이다. 

가장 익숙한 말이기도 하다. 

가장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이 말들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기에, 가장 어려운 말이 되어버렸다.

더 무서운 건, 이토록 쉬운 말을 지금 하지 않으면, 이토록 쉬운 말을 계속 아껴두고 있다면, 어쩌면 누군가는 이 말을 영원히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당장 해야 한다,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그리고 너무 고맙다고.

그리고 혹시 늦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해야 한다. 

너무 늦어 너무 미안하다고, 그렇지만 정말 사랑한다고, 그리고 늘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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