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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ul 21. 2019

#36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지금 이 순간"이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좌측 Frederick Leighton, Study at a Reading Desk, 1877, Sudley House, Aigburth, Liverpool, England

우측 Jean-Honoré Fragonard, A Young Girl Reading, 1770,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nited States




어렸을 때 부모님은 나를 서점으로 데려가서 책을 고르게 했다. 부모님은 내가 지루해하거나 부담을 가져 책 자체를 싫어하게 될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전집 같은 것들을 사주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대신 그때그때 서점에 같이 가서 책을 고르고는 했다.      


당시에 내가 골랐던 책은 표지 그림이 예쁜 책들이었다. 그리고 나름대로는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골랐다. 그 책들이 내 책꽂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을 때면 나도 모르게 뿌듯해졌다. 전집은 아니지만 전집을 읽은 그런 느낌이랄까.     





책 표지 출처는 yes24 및 민음사



아마 중학생 정도였던 것 같다. 그때 부모님은 어린 왕자(Le Petit Prince), 데미안(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 같은 책들을 사주셨다. 부모님은 내게 그 책이 너무 감동적이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부모님같이 무심한 성격의 사람들이 감동적이라고 하기에 나름대로 기대를 하고 그 책들을 펼쳤다. (물론 내 부모님도 나처럼 무심함을 가장하고 있으나 매우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임을 이제는 안다.)


하. 정말이지, 도무지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었다.     


어린 왕자, 보아뱀, 장미, 여우, 기다림...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어린 왕자는 쉬웠다.

헤세의 책은 몇 배나 더 어려웠다.

헤밍웨이의 책들도 다를 바 없었다.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그 감동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시간이 흘렀다. 세계명작이라고 불리는 이 책들은 여전히 내 책꽂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마 대학생 때였던 것 같다. 무심코 어린 왕자를 읽었다. 알 수 없는 울림이 있었다.

어떤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그런 깊은 울림을 주는 책이었다.

그때 이 책이 진짜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것을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무지 데미안은 손이 가지를 않았다.

그렇게 데미안 위에는 먼지가 쌓여만 갔다.          



시간이 다시 흘렀다. 책꽂이의 책들은 거의 다 사라졌다. 

얼마 전 책을 찾을 일이 있어 도서관에 들렀다. 

문득 데미안이 생각났다. 그렇게 데미안의 첫 페이지를 펼쳤다.

말 그대로 울컥했다.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긴 문장들은 아니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순식간에 책을 읽었다. 책의 전부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이제는 조금은 이 책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신기한 일이 더 있었다. 그때 김려령의 <<일주일>>에서 만났던 그 말들을 이 데미안에서 다시 만났었다. 운명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이 구절은 내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끌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끕니다." (데미안, 민음사, 200페이지)


          


Edward Hopper, Hotel Room, 1931, Museo Nacional Thyssen-Bornemisza, Madrid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책은, 그 사람에게 필요한 순간에, 그 사람을 찾아간다”라고.

아마 내가 데미안을 읽던 그 순간에, 내게 필요한 책이 데미안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내게는 지금이어야만 가능했던 것 같다.          

내게 데미안과 다시 만나는 데에는, 그리고 이해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에드워드 호퍼의 호텔방에 있는 여인처럼, 나는 삶이 꽤나 긴 여정임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데미안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호텔방에 있는 여인에게 그 여정이 필요했듯이 내게도 그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지났어야만 나는 비로소 데미안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깊이 있어지는 데미안을 만나며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아마 그래서 명작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돌이켜보니 사람과의 만남도 책과의 만남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그때 그 순간 당신을 만났던 의미는 시간이 지나야 이해될 수 있었다.     


누군가와의 만남도 데미안과의 만남과 같았다.

시간이 지나서 비로소 누군가를 이해하며 용서하게 되기도 했다.

그 시간을 지나, 다시 만난 그 누군가와는, 그만큼 관계가 깊어지기도 했다.

그 시간을 두고 그들이 변한 것인지, 내가 더 변한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만큼 그들도 나도 시간과 함께 성숙했던 것 같다.   

  

그때 알아차리지 못했더라도, 그때 몰랐더라도, 상관이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있다.

그 시간을 지나 지금이라도, 비로소, 알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게 아닐까.          



     

#참고

데미안(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의 원래 제목은 “데미안 : 에밀 싱클레어의 청년 시절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Emil Sinclair)가 자전적 고백을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1919년 출간 당시에는 주인공 이름인 에밀 싱클레어라는 익명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데미안》의 문체가 헤르만 헤세의 것과 같다는 것이 알려지자 4쇄부터는 헤세의 이름이 사용되었다. 초기 기독교의 영지주의 문서 중 하나인 《필립의 복음서》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B%8D%B0%EB%AF%B8%EC%95%88)     


#누군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데미안을 추천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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