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다행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당신을 닮은 누군가를 마주한 순간은.

by 니테오




Pierre Bonnard, Young Woman Writing, 1908, Barnes Collection, New York..jpg Pierre Bonnard, Young Woman Writing, 1908, Barnes Collection, New York.



내게 글은, 내가 불행할 때 가장 잘 써졌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세상 누구보다 불행했고 세상 누구보다 아팠다. 그 어느 누구도 내 아픔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그렇게 불행할 때 썼던 글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내가 잘 써서 감동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 글을 썼던 그 시간들이, 그 글을 썼던 때의 내 복잡한 감정들이, 여전히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불행이 멈춘 듯했다. 글이 써지지를 않았다.

나는 내가 정말로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내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당신과 닮은 누군가를 마주하고서야 알았다.




오래전 일이다. 그 사람과 헤어진 이후 한참이 지나서야 그 사람을 만났었다.


그 사람과 나는 꽤 오랫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다. 헤어짐도 늘 희망고문이었다. 헤어져도 곧 다시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과 헤어졌을 때 나는 이미 지쳐버린 상태였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을 쉽게 잊지 못했다. 그때 친구는 ‘그 사람은 죽었다고 생각해’라고 말했었다. 나는 친구에게 ‘우연히라도 한 번쯤은 다시 만나고 싶은데 죽으면 다시 볼 수 없잖아’라고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을 그렇게 쉽게 놓지 못했었다.

시간이 지나 그 사람을 우연히 다시 만났다. 그 사람과 만나 그 사람에 대한 내 감정이 없었던 것은 슬펐다.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서 그토록 간절히 기도했던 그 수많은 순간이, 그리고 그 순간들의 내가 아팠다. 그래도 다행인 것도 있었다. 그 사람이 온전한 과거가 되어, 그제야 그 사람에게 남은 감정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 사람을 완전히 놓을 수 있었다.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그 사람과 완전히 이별하기 위해, 남은 감정이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 내가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는 사실을.




당신과 닮은 누군가를 마주했다. 말 그대로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 찰나의 순간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스쳤는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아마 호퍼 Edward Hopper 의 그림 속 여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그녀에게는 극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극장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과 극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던 마음, 둘 다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극장의 문 앞에서 안의 소리를 들으며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당신과 닮은 그 사람 앞의 나도 그런 마음이었다. 그 공간을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과 당신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 그 어디쯤에, 나는 그렇게 있었다.



Edward Hopper, New York Movie. 1939, MoMA, New York..jpg Edward Hopper, New York Movie. 1939, MoMA, New York.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당신이 아니었다.

그가 당신이었다면 나를 알아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당신이었더라면 내 감정이 더 쉽게 정리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다.

그가 당신이 아니었음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남은 감정을 당신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


내가 여전히 괜찮지 않음을 아는 것은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다.

내 과거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이렇게, 힘이 센 것이었다.



어쩌면, 그 동안 나는 내 마음을 너무 꾹꾹 눌러 담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어쩌면, 흘러넘치면 넘치는 대로 두어보는 게, 차라리 나은 게 아닐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6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