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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ul 22. 2019

#37 다행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당신을 닮은 누군가를 마주한 순간은.




Pierre Bonnard, Young Woman Writing, 1908, Barnes Collection, New York.



내게 글은, 내가 불행할 때 가장 잘 써졌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세상 누구보다 불행했고 세상 누구보다 아팠다. 그 어느 누구도 내 아픔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그렇게 불행할 때 썼던 글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내가 잘 써서 감동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 글을 썼던 그 시간들이, 그 글을 썼던 때의 내 복잡한 감정들이, 여전히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불행이 멈춘 듯했다. 글이 써지지를 않았다.

나는 내가 정말로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내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당신과 닮은 누군가를 마주하고서야 알았다.               




오래전 일이다. 그 사람과 헤어진 이후 한참이 지나서야 그 사람을 만났었다. 


그 사람과 나는 꽤 오랫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다. 헤어짐도 늘 희망고문이었다. 헤어져도 곧 다시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과 헤어졌을 때 나는 이미 지쳐버린 상태였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을 쉽게 잊지 못했다. 그때 친구는 ‘그 사람은 죽었다고 생각해’라고 말했었다. 나는 친구에게 ‘우연히라도 한 번쯤은 다시 만나고 싶은데 죽으면 다시 볼 수 없잖아’라고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을 그렇게 쉽게 놓지 못했었다.     

시간이 지나 그 사람을 우연히 다시 만났다. 그 사람과 만나 그 사람에 대한 내 감정이 없었던 것은 슬펐다.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서 그토록 간절히 기도했던 그 수많은 순간이, 그리고 그 순간들의 내가 아팠다. 그래도 다행인 것도 있었다. 그 사람이 온전한 과거가 되어, 그제야 그 사람에게 남은 감정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 사람을 완전히 놓을 수 있었다.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그 사람과 완전히 이별하기 위해, 남은 감정이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 내가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는 사실을.                




당신과 닮은 누군가를 마주했다. 말 그대로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 찰나의 순간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스쳤는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아마 호퍼 Edward Hopper 의 그림 속 여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그녀에게는 극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극장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과 극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던 마음, 둘 다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극장의 문 앞에서 안의 소리를 들으며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당신과 닮은 그 사람 앞의 나도 그런 마음이었다. 그 공간을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과 당신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 그 어디쯤에, 나는 그렇게 있었다.      



Edward Hopper, New York Movie. 1939, MoMA, New York.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당신이 아니었다.

그가 당신이었다면 나를 알아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당신이었더라면 내 감정이 더 쉽게 정리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다.

그가 당신이 아니었음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남은 감정을 당신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          


내가 여전히 괜찮지 않음을 아는 것은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다.

내 과거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이렇게, 힘이 센 것이었다.     



어쩌면, 그 동안 나는 내 마음을 너무 꾹꾹 눌러 담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어쩌면, 흘러넘치면 넘치는 대로 두어보는 게, 차라리 나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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