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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Aug 04. 2019

#38 "너의 노력은 너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수능을 앞둔 조카에게는 결국 못할 말 (1)



8월 9일이 수능 100일이라고 한다. 내게는 수능을 맞는 첫 조카들이 있다.

친조카는 아니지만 친한 언니들의 조카이니 친조카와 다를 바 없다.

수능을 앞둔 조카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를 고민하다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나름대로 좋은 말을 해주고 싶은데 어느 것도 적당하지가 않았다.          



나는 조카에게 “노력하면 잘 될 거야”라고 할 수가 없다.


나는 이 말에 책임을 질 수가 없다. 

나는 이 말을 책임지기 싫은 것 같다. 

아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이 말을 책임지기 싫다.     

나는 “노력하면 잘 될 거야”라는 말이 너무 싫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데, 도대체?!!!     


아빠는 지금도 늘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냐?”라며 나를 응원한다.

아빠 나름대로 나를 위로하는 말이라는 것을 안다. 

아빠나 그 친구들을 보면 이해되는 말이기도 하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아빠와 그의 친구들은 더 이상 노력하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노력했다.

그분들은 아마도 그렇게 죽을 만큼 노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던 것 같다.

물론 그분들은 지금도 그런 것 같다.

그분들에게, 나는, 혹은 내 또래의 사람들은, 너무나 나약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도, 그리고 내 또래의 사람들도, 드가의 그림 속에 있는 수업 중의 무용수들처럼 나름의 방식대로 노력하고 있다.


Edgar Degas, The Dance Lesson (The Dancing Lesson), 1879,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그런데, 문득 돌이켜보니 내가 좋아하는 말이 아빠의 저 말과 다르지 않았다.


“네가 들인 땀과 눈물과 시간은 너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들었던 말이다.     


내가 들인 땀과 눈물이 결국은 죽을 만큼 노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이제야 안다.

아빠의 말을 부정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아빠의 말에 반항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이제 나이가 들어 아빠의 말에 반항할 여력이 없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이제 나이가 들어 그 꼰대라고 불리는 나이가 되어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제 나이가 들어, 그 노력이, 의미가 있음을 아는 꼰대가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dgar Degas, Waiting, 1882, The J. Paul Getty Museum



나는 누군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면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어쩌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인지도, 내가 듣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그 일에 들인 땀과 눈물과 시간은 결코 당신을 배신하지 않는다."

당신이 그 일을 하느라, 당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긴 시간을 보낸 것을 안다. 

당신이 드가의 그림 속 무용수보다 더 지쳐버렸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당신이 이제 한 발짝도 더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포기는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작은 이상하리만큼 어렵다. 

시작은, 지속은, 언제든지 다시 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니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을, 당신이 지금 가진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의 어떤 일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일도 있다.

세상의 어떤 일이 다 그렇게 빨리 해결되지는 않는다.  

   

죽을 만큼 노력해서 안 된다면 그때 포기해도 늦지 않다.

사실 그렇게 죽을 만큼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만약 그렇게까지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이라면 그 일은 내 것이 아닌 일이다.

만약 그렇게까지 노력했는데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적어도 미련은 남지 않는다. 

그리고 비록 그 일이 내 것이 아님을 알고 힘들지라도, 적어도 내가 들인 그 시간과 눈물과 땀은 내 것으로 남는다.

만약 현명한 누군가는 더 빨리 그 일이 내 일이 아님을 알고 그만둘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사실 이 방법이 가장 현명하지만 그렇게 현명하기란 쉽지가 않다.          



“노력하면 잘 될 거다”라는 말에 담긴 의미를, 나는, 마흔이 가까운 이제야 알아가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도 조카에게 “노력하면 잘 될 거다”, “네가 흘린 피, 땀, 눈물은 너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라고는 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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