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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Aug 17. 2019

#39 "대학은 인생에서 별것인가...?!"

수능을 앞둔 조카에게 못할 말 (2)



지난주 수능을 100일 앞두고 조카가 우울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조카는 아마도 엄청난 압박감 속에 있을 것이다. 적어도, 드가 Edgar Degas의 그림 속에서, 무대를 앞두고 리허설을 하는 발레리나들만큼. 발레리나들이 치러야 할 한 번의 무대처럼, 조카는 대학입시를, 인생의 전부가 걸린 한 번의 시험으로 여길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조카는 그림 속 발레리나 이상의 압박감, 불안함, 초조함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Edgar Degas, The Rehearsal of the Ballet Onstage, 1874,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이런 조카에게, 나는 도대체, 어떻게, 무엇을,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고민을 할수록 한편으로 대학은 인생에서 “여전히” 별것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대학은 인생에서 “이제” 더는 별것이 아니기도 했다.         


 

“대학 그거 인생에서 별것 아냐.” 


나는 조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없었다. 

19살의 내게, 어쩌면 지금의 조카보다 훨씬 더, 대학은 인생에서 매우 별것이었다.

대학입시의 모든 과정이 마무리된 20살의 1월에, 내게, 대학은 더욱더 별것이었다.

그때 나는 대학입시에서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해야겠다. 나는 대학입시에 실패했다. 

대학입시의 실패는 내 인생의 첫 번째 실패였다.     

그때 내가 들었던 “대학 그거 인생에서 별것 아냐”라는 말은 가진 자의 여유였다.

정확히는 올챙이 시기를 생각하지 못하는 개구리의 여유로 생각될 뿐이었다.

내게 그런 위로를 하는 당신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에게도 분명히 대학이 인생의 전부처럼 여겨지던 순간이 있지 않았어?”

     

친구들이 대학 신입생이 되었던 그때 나는 재수학원의 학생이 되었다.

친구들 중에는 그때의 내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때의 내 선택이 누군가에게 이해받기 위한 선택은 아니었다.

그때의 내 선택은 철저하고 온전하게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그 선택의 결과도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정확하게 말해야겠다. 실패와 다를 바 없었다.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내 인생의 첫 실패였던 대학입시의 실패는 내 삶에 꽤 오래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20대 초반의 여느 대학생과 달랐다. 

나는 빛나지 않았다. 나는 싱그럽지 않았다. 


나는 그저 매우 무기력했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는 것만을 보고 달려왔던 나였다. 그렇게 대학입시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은 탓에, 그러고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탓에, 무기력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회사를 10년쯤 다니고 나서 경험하게 되는 그 번아웃 증상을 20대 초반의 내가 이미 경험했던 것 같다.     

친구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의욕 없는 사람 1위로 늘 나를 꼽았다. 그래서 나를 아는 오랜 친구들은 그토록 무기력했던 내가, 지금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기적으로 여기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때 당시의 가장 큰 문제는 자존감도, 자신감도 없었다는 점이다.

누구도 내게 내 대학에 대해, 내 전공에 대해,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가족들조차도 그 결과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탓에 힘들고 비참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남들과 비교하면서 나는 점점 더 초라해졌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별것이 아닌데도 당시에는 그 모든 것들이 그렇게 크게 느껴졌었다.     

그때 나는 늘 생각했다. 도대체 이제 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난 무엇을 해야 하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생각들을 한 덕분에 내 전공 이외의 여러 전공 수업들을 들었다.

그리고 그 전공들을 통해 내게 맞는 전공을 찾을 수 있었고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단순히 공부 혹은 학문에 대한 열망으로 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아니다.

그때 나는 입사시험이라는 그 시험과 그 경쟁을, 그로 인한 실패, 그로 인한 비교를 또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 잠시 유예기간을 두려는 이유도 있었다.          



지금은 고작 몇 줄로 써 내린, 전공 탐색에서부터 대학원 진학에 이르기까지의 그 시간들이, 당시의 내게로서는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다. 다음이 있을까, 앞날이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해야 했다. 무엇보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도, "대학원 입시도 대학입시처럼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와 같은 두려움이 컸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대학입시 이후 대학입시보다 몇 배나 더 힘든 일이 많았다. 그러나 20대 초의 내게, 대학입시는 여전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무엇이자, 가장 아픈 첫 실패로 남아 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대학입시에서 20대 중반에 이르는 그 시간들이, 그 젊음이, 그립거나 아쉽지는 않다. 다만 그 시간들을 잘 견뎌내고 가까스로 사람 구실?을 하는 지금의 내가 기특할 뿐이다.      



올해 수능을 보는 조카는 나보다 더한 압박감에 있을 것이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20여 년 전보다 몇 배나 더 치열한 경쟁 속에 있기 때문이다.

수능을 앞둔 조카에게 대학입시는 삶에서 중요한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학입시는 조카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조카에게 “대학 그거 인생에서 별것 아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리고 적어도 당분간은, 조카에게 이렇게 쉽게, “대학 그거 별것 아냐”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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