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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Aug 18. 2019

#40 “대학은 인생에서 별것이 아니다...?!”

수능을 앞둔 조카에게 못할 말 (3)



어제는 대학이 인생에서 매우 별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대학은 인생에서 더는 별것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은 내 삶에서 더는 별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 이 말을 인생의 전부를 건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19살의 조카에게 어떻게 할 수가 있겠는가. 나 역시 인생의 전부를 걸고 대학입시를 치른 적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내가 19살에 “대학 그거 별것 아냐”라는 말을 들었다면 나는 아마 속으로 욕을 했을 것 같다. “너는 대학 나왔잖아”라고 말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대학 그거 별것 아냐”라고 말했다가는 언니와 형부에게 욕을 들을 것만 같기도 하다. “지금 그게 이모가 되어서 할 소리냐”, “너 19살 때 생각해봐라”, 등등의 말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언니가 기억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언니도 내게 “대학 그거 별것 아냐”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 와서 이 말을 하면 더 욕을 들을 것 같아서 차마 하지는 못하겠다.          


하루 사이에 말을 바꾸는 내가, 남들에게, 매우 많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음을 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다. 한편으로 대학은 여전히 별것이지만 한편으로 대학은 이제 더는 별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19살의 내게 대학은 별것이었다. 그러나 마흔을 앞둔 내게 대학은 별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래서 시간이 마법 같은 것인가...)           



19살의 내게는 대학이, 원하는 대학에 가는 것만이, 내 삶의 목표로 여겨졌었다.

대학에 가면 내가 꿈꾸던 모든 삶이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대학입시에 실패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오는 그런 눈부시고 싱그러운 대학생의 삶은 없었다.

친구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가거나 취직을 준비할 무렵인 23살에서 24살 무렵 나는 여전히 대학생이었다. 심지어 졸업을 위해 채워야 할 학점도 매우 많이 남은 상태였다.    



Leonid Pasternak, The Night before the Exam, 1895, Musée d'Orsay



그때 대학입시보다 더하면 더했을 수많은 고민이 몰려왔다.

내 고민은 흔히들 말하는 프랑스의 대학입시에 나오는 문제들과 비슷했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되는 것인가.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가.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이런 고민을 하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두 가지였다.

첫째, 나는 프랑스의 입시를 치르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흔히들 프랑스의 입시는 한국의 입시와 다르다고 한다. Leonid Pasternak의 그림 The Night before the Exam 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프랑스의 입시는 사고의 과정과 깊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는데 나는 아마 이것은 더 잘 해내지 못했을 것 같았다.  

둘째, “나 도대체 뭐 먹고살아야 하지?” 

당시에 했던 수많은 고민의 결론을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그러니까 삶에 대한 매우 깊이 있는 질문이 내게로 와서는 생계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내가 프랑스의 입시를 치르지 못했으리라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현실적인 삶 앞에서 대학입시는 더는 중요한 그 무엇이지 않았다.

나는 “뭐 먹고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제대로 찾지 못했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일을 찾았다. 그 일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야만 했고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름대로 높은 경쟁률 속에 원하는 대학원은 한 번에 합격했다. 아마 대학입시 실패의 여파로 최소한 대학입시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다. 내 친구들은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며 반짝이던 내 눈빛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하곤 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아직 사회화되기에 부족한, 나의 무기력감과 우울감도 대학원 진학에 영향을 준 것도 맞다. 혹시나 대학원에 진학하게 될 누군가가 이 글을 보게 될까 미리 말한다면 대학원은 대학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대학원 전공 강의를 들은 첫날 집으로 오면서 대학원을 그만두어야 하나 생각했을 정도였다. 나중에 대학원 동기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 흔히 한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들 한다. 이 말이 그냥 생긴 말은 절. 대. 아니다.)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엔 더는 대학은 별것이 아니었다. 대학입시와 다른 차원의 문제와 고민들이 쏟아졌다. 아마 이렇게 말하면 될 것 같다.


19살의 나는, 29살의 나를 책임지기에 어렸다. 

그런데 29살의 나는, 39살의 나를 책임지기에 어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29살의 나는, 39살의 나를 책임지기 위해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있는가.


대학입시를 치르고 10여 년이 지났을 무렵에 내가 느낀 삶의 무게는 전혀 달랐다. 더는 무기력하거나 우울해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대학이 네 인생에서 별것 아닌데 도대체 왜 그렇게 집착하니?”


내가 대학입시와 그 결과에 집착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이 말의 의미를 대학입시를 치르고 10여 년이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10여 년이 더 지나고 나니 대학입시는 별것이 아니게 되었다.

대학입시를 치르고 20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내가 어느 대학을 나와서 어떤 공부를 했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나는 19살의 내가 느낀 좌절감, 상실감, 박탈감보다는 훨씬 더 큰 좌절감, 상실감, 박탈감 등을 경험해야 했다. 대학입시 정도는 더 이상 별것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카에게 “대학 그거 별것 아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지금의 내게 대학은 이제 더는 별것이 아니긴 하지만 19살의 내게 대학은 별것이었으니까.      


그래서 “대학이 인생에서 별것인가...?!” 혹은 “대학은 인생에서 별것이 아니다...?!”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나는 대학이 별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그 어떤 답도 명확하게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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