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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Sep 29. 2019

탯줄로 연결된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

로맹가리 <새벽의 약속>

보통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으로 처음 접하지 않을까 싶지만 나는 단편 <여자의 빛>으로 그에게 매혹되었다. 한 작가의 작품을 여러 권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여러번 하지만 실제 기간을 정하고 꾸준히 읽은 작가는 츠바이크, 로맹 가리, 그리고 가즈오 이시구로뿐이다.


<새벽의 약속>은 로맹 가리의 자전적 소설이다. 주인공은 그의 어머니. 로맹 가리가 자신의 생애에서 본인의 증명 사진을 빼면 나머지는 모두 어머니의 유산이라고 인정할 정도로 그의 인생은 어머니가 계획하고 실천한대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로맹가리는 이를 "나와 어머니는 탯줄로 연결되어 있으며, 어머니 사망 후에도 그 탯줄은 계속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로맹 가리는 러시아 이민자의 아들로 폴란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프랑스에 난민자 신분으로 이주했다. 이방인으로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쳐 힘겨운 시절을 보냈지만 그가 프랑스인으로 성공적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희생과 희망과 힘 덕이었다. 그런 어머니를 부담스러워 하고 어머니로 부터 도망가고 싶어하면서도 결국은 그 힘으로 살 수 밖에 없던 로맹 가리의 이야기가 때론 고난스럽게 때론 무지하게 그러나 전반적으로 유머가 깔린 따뜻함으로 그려진다. 뻔하디 뻔한 사모곡으로 그칠 수 있었던 글이 문학으로 품격을 지닐 수 있었던 데는 로맹 가리의 유머가 절대적 역할을 한다.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그것을 비틀어 웃음을 지어내게 하는 그의 유머는 또한 이 책을 계속 읽고 싶어하게 하는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끝났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같은 장소에서 "살아냈다"라는 말로 끝난다. 어머니가 돌아가심으로써 물리적 관계는 끝이 났으나 그럼에도 연결된 탯줄이 작동하여 어머니와의 연결된 삶을 살아낸 그에게 새 한마리가 지저귀는 소리, 바닷가 파도 소리, 물개 소리는 어머니가 그에게 들려주는 소리다. 그 소리들 힘으로 그는 어머니가 없는 삶을 살아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살아갈 힘을 얻는다. 


때때로 버겁고 징글징글하지만 그럼에도 삶의 동력이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특히 책 후반부 곳곳에 그려지는데, 그래서인지 생전 어머니가 그에게 자주 부탁했던 눈을 치켜 뜬 자세로 사진을 찍은 로맹가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사진일까. 직시하는 그의 눈에서 쉽게 눈을 돌리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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