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에티켓> 리뷰
지인들과 저녁 식사를 하다 한 사람이 물었다. 각자의 묘비에 뭐라고 쓰고 싶냐고. 한문장으로 자기소개한다면 뭐라고 하고 싶은지 이야기하다 나온 질문이었다. 각자 자신이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는데 나만 “당신들의 미래 모습이다”라고 대답했다. 너도 한번 당해봐라, 뭐 이런 심정이었을까.
죽음은 내 주요 관심사다. 자주 잊고 살지만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을 때, 아는 이의 죽음을 들었을 때, 아플 때 등 죽음을 상기시키는 일들이 생길 때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책을 찾을 때마다 삶의 유한성을 자각하며 마지막 정리를 어떻게 할까 생각한다. 이 책도 그래서 관심이 갔다. 죽음에 대한 모든 것, 비로소 죽음에 대한 인간의 예의를 만나다 등 부제 또한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이 책은 죽기 직전 사람의 신체와 정신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죽음과 얽힌 사적, 공적 절차는 무엇이 있는지, 남겨진 사람들은 어떤 회복의 과정을 거치는지 담담하게 보여준다. 특히 죽을 때 신체가 어떤 변화를 겪는지 잘 설명해주는데 죽음을 현실적으로 그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역할을 다했다고 본다. 죽음을 소외시하고 격리시키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죽음을 멀리 있는 것으로 치부하기 쉽다. 이에 따라 죽음에 대한 자료도 많지 않은데 이는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죽음과 관련한 자료가 매우 부족한 현실을 보여주는데 일례로 책으로 가득한 2층 건물 전체에서 저자가 찾은 죽음에 대한 자료는 단 9페이지 뿐이었다. 그것도 대체의학 관련한 1400페이지짜리 책에서 달랑 9 페이지. 인생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죽음을 홀대하고 있다.
그래서인가, 저자는 죽음의 과정을 그 어느 책보다 자세히 보여준다. 죽기 직전 우리는 속눈썹을 들어올리기 힘들 정도가 되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손톱과 발톱은 피가 빨리 돌지 않아 푸르스름하게 변하고 쇠약함으로 입술은 벌어지고 뺨은 움푹 들어가며 두 눈은 눈두덩으로 쑥 들어간다. 구강 깊은 곳에 침이 고여 숨을 쉬면 그르렁대고 눈동자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숨을 한번 훅 들이쉬면 정말로 끝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는 것이다. 그 이후에도 일정정도 우리 몸은 반응을 한다. 근육은 풀어졌다 다시 굳고 피가 고여 신체 뒷면에는 시반 현상이 일어난다. 눈과 입은 벌어져 누군가 닫아줘야 한다. 이제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닌 죽어 있는 물질로 누군가의 관리가 필요하다.
이러한 신체변화가 썩 반갑지 않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아름답다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만을 아름답다 칭하는 인간의 편견이 우리 인생의 큰 부분을 마치 없는 것인 듯 외면하게 한다. “모든 사체는 생명의 공간이다”라는 말처럼 우리의 죽은 몸은 또 다른 생명과 맞닿음으로써 자연의 일부가 되고 성서에서 말하듯 먼지에서 먼지로 돌아가는 순환에 빠진다. 즉, 죽었지만 생명을 안고 있다.
죽음에 이르렀을 때의 고통 때문에 죽음을 외면한다면 그것도 걱정할 필요 없다. 우리에겐 진통제가 있고 죽는 순간 세로토닌, 엔도르핀, 도파민 같은 것들을 뇌가 뿜어낸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죽어가는 뇌가 적절하게 생을 빠져나가려고 마지막으로 터뜨리는 아름다운 불꽃”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니 우리가 죽음을 외면할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해결하지 못한 고통이 하나 남아 있다. 남아있는 자들이 감당해야 할 슬픔은 망자가 어찌할 수 없는 일. 저자는 이것도 걱정할 필요 없다 한다. 사람들은 점차 일상으로 돌아가는 치유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겪을 것이기에. 누군가는 그 기간이 짧고 누군가는 유독 길겠지만 대부분 떠난 이의 부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순간이 온다. 이때가 돼서야 우리는 죽음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죽지 않을 것같이 산다.
누구나 마주칠 운명임을 모두 알지만 누구도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아이러니, 죽음. 그아이러니를 해결하고자 저자는 죽음에 대한 다양한 면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를 권한다. 그 다양한 면은 저자가 직접 발로 뛰는 조사를 통해 얻은 자료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그 노력을 편하게 활자로 본다는 것 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있다. 죽음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 -의사, 요양사, 장례업자, 사망신고 담당 공무원 등-과 인터뷰를 하고, 실제 죽음이 처리되는 과정을 함께하면서 얻은 귀중한 자료를 공유한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