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화 Oct 07. 2019

가슴 한켠이 알싸하게 그리운 도시, 리스본

여행을 많이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일상 속 문득문득 떠오르는 도시가 있다. 그곳에 오래 산것도 아니요,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꾸 돌아보게 되는 도시. 나에겐 리스본과 베를린이 그렇다.

   

2016년도 10월 말에 리스본에 있었다. 바로 직전 여행지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남부 스페인은 10월인데도 태양빛이 강했다. 한낮엔 숙소에 들어가 쉬고 오후 늦게야 돌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따갑고 뜨거웠다. 그래서인지 사람들도 뜨거웠다. 관광지는 말할 것도 없고 그냥 일반 동네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무엇인가 끊임없이 말하고 움직였다. 열정의 스페인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끼고 스페인의 햇빛과 열정에 지칠때 쯤 리스본에 도착했다.  


리스본은 고풍스러웠다. 사실 낡았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릴 정도로 오래된 느낌이었다. 볼 것도 많지 않았다. 관광 안내서에는 리스본이 8개 언덕으로 되어 있고 각 언덕마다 특징이 있다는데 실제 다녀보면 이렇다할 것도 없다. 시내 투어 버스를 탔다 허술한 관광지들에 어이 없어 본전 생각이 났을 정도. 오죽하면 시내 투어 버스 정차지 중에 하나가 시내 백화점일까. 그나마 만족한게 알파마 지구였다. 알파마는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예전에는 테주강의 일꾼들과 선원들이 살던 가난한 동네였다고 한다. 그러나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도시 모든 곳이 붕괴되었지만 알파마만 붕괴되지 않은 덕에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지금은 리스본 최고의 관광지다. 그래서 알파마 지구엔  호텔과 에어비앤비, 관광객이 많다.   

 

몇년 전 삼성 노트북 광고를 리스본에서 찍었다. 알파마지구 언덕에서 내려와 이 길을 건너면 로시우 광장이 있다


알파마에서는 리스본의 유명 관광지와 트램을 그린 캔버스 그림을 판다. 가격도 10-40유로 정도로 적당하다. 파스텔톤의 그림이 리스본의 정취와 맞아서 살까 하다 들고 다니는 것이 귀찮아 마지막 여행지인 포르투에서 사기로 했다(그런데 막상 포르투에서는 그림을 팔지 않아 리스본에서 사지 않은 걸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 외 딱히 기억에 나는 건 없다. 테주강을 바라보며 코메르시우 광장을 거닐던 것이나 계란타르트가 아주 맛났던 것 정도? 스페인에서 느꼈던 강렬함은 없었다.


사실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 계획을 세울 때 가장 기대하던 곳이 리스본이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소설과 영화가 좋았었기에 막연하게 고풍스러우면서도 지적인 분위기의 도시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실제의 리스본은 옛 영광의 흔적만 남은, 관리되지 않는 오래된 성 같았다. 심지어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나오는 산타아폴로니아역도 대도시의 중앙기차역이라고 하기엔 작고 낡았다. 관광객을 빼면 활기찬 사람을 잘 볼 수도 없다. 나이든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노인들의 도시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실망스럽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도시가 너무 예뻐서는 아니다. 도시가 예쁜 건 맞으나 유럽에 그 정도 예쁜 도시는 많다. 사람들이 좋아서도 아니다. 친절하나 어딘가 모르게 뚱하다. 오히려 스페인 사람들이 더 밝고 친절했다. 그렇다고 음식이 맛난 편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 도시가 자꾸 생각날까. 무엇인가 더 느낄 수 있었는데 반도 못하고 온 느낌이다. 


같이 갔던 친구는 다시 여행을 한다면 스페인 남부라며 포르투갈은 실망했다고 했다. 난 스페인 남부도 좋지만 포르투갈도 꼭 다시 오고 싶다 했다. 정확한 설명은 못하겠다. 어쩌면 리스본 캔버스 그림을 사지 못한 아쉬움때문인지도. 아니면 아무데나 대고 사진을 찍어도 그림같이 나오는 하늘때문인지도, 그것도 아니면 풍족해 보이지는 않지만 한때의 영광을 자부심으로 갖고 사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표정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또 아니면 알파마 골목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며 길을 잃으면 잃는대로, 찾으면 찾는대로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던 그 하루를 다시 느끼고 싶은 것인지도.


그냥 언덕에서 찍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