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이상한 인도
인도는 집 다음으로 많이 사용하는 공간이다. 걷는 것을 좋아해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다 보니 인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걸으면서 사람 구경하고, 거리 돌아보고, 팟캐스트 듣고, 생각도 하니 인도는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그런데 사람이 걷는 인도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점점 짜증으로 변하고 있다.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다른 것까지 신경 써야 하니 걷다 보면 기분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가 쌓인다.
서울 시내 인도는 동네마다 다른 폭을 가지고 있다. 종로, 을지로 등 강북의 인도는 대체로 좁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더 이상 공간이 없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 가로수까지 있으면 한 사람씩 일렬로 걸어야 한다. 목동이나 여의도, 신촌, 합정 등은 그럭저럭 3-4명 정도는 걸을 수 있다. 그러나 신촌, 합정엔 사람도 많은데 포장마차가 인도의 1/3은 차지하고 있어서 걷기 불편한 경우가 많다. 목동의 경우 자전거가 많아서 뒤에서 따르릉 거리면 얼른 길을 내줘야 한다. 자전거 도로가 있다 하나 애초 만들 때 인도를 나눠 만들었기에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인도가 제일 넓은 곳은 역시 강남이다. 보통 목동이나 여의도의 1.5배, 넓은 곳은 두배도 된다. 그래서 앞 사람이 천천히 걸어도 뒤에서 주춤거리거나 비켜 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강남 인도 역시 걷기에 좋은 것도 아니다. 강남 인도는 넓은 대신 오토바이도 많다. 적어도 3-4대의 음식배달, 퀵서비스 오토바이가 걸어가는 사람들 옆으로, 원래 인도는 오토바이와 함께 사용하는 것이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간다. 인도를 같이 사용하니 횡단보도도 당연히 같이 써야 한다(물론 오토바이는 강남 인도에만 있지 않다. 서울시내 모든 인도에 오토바이가 다닌다). 내 옆에서 으르렁거리며 인도에서 같이 신호를 기다리더니 신호등 색이 바뀌자 마자 소리를 내며 앞지른다. 내가 세발자국 정도 걸었을 때쯤 오토바이는 이미 횡단보도를 건너 건너편 인도를 달리고 있다.
오토바이와 함께 쓰는 강남 인도에 새로운 녀석이 등장했다. 바로 퀵보드. 올해 부쩍 퀵보드 타는 사람이 늘어나더니 이제 출퇴근 시간이면 없어서 못 탄다고 한다. 퀵보드는 오토바이처럼 굉음을 내지도, 검은 연기를 내뿜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함께 걸을 만한 친구는 아니다. 오는 줄도 몰랐는데 갑자기 옆을 휙 지나칠 때면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춘다.
이밖에 인도가 주차장의 다른 버전인 줄 아는 자동차, 가게 앞 거리를 점령한 간판 등 인도엔 걷는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거나 피하게 하는 많은 것들이 많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우리의 인도를 인도(人道)가 아닌 잡도(雜道)로 만들고 있다. 걷는 사람이 아닌, 바퀴가 있는 운송수단이, 커다란 간판이 우선인 잡도. 그들에게 누가 인도를 사용할 권리를 주었을까. 어째서 그들은 인도에서 그렇게 당당할까. 큰 목소리로 지적하고 싶은 우리의 이상한 인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