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서 추석을 맞이하는 엄마, 그저 한 아이였던 나에게
어느새 이스탄불에서 세 번째 맞이한 추석이다. 아들의 일상 사진을 여느 때처럼 어른들의 카카#톡에 보내고, 쿠#으로 추석보다 일찍 어른들의 집으로 추석 선물을 보낸다. 고향집엔 나와 남편, 손주 대신 쿠#아저씨가 다녀가셨다.
여기서 몇 번의 명절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관습적으로 정해놓은 많은 약속과 그날들이 그저 나의 삶의 똑같은 날 중 하나 일 뿐인 것을 느낀다.
이곳에서 오늘을 특별한 날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고기를 굽고, 전을 부치지 않으면, 아무런 날도 아닌 그런 날이 된다는 것을, 사람이 만드는 특별한 그날은 결국 어른이 된 내가 만드는 것임을 다시 한번 더 느낀다.
어른이 사람들을 불러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안방에 모여 괜히 작은 텔레비전 앞에서 서로의 몸을 비벼야 명절이 이루어진다는 것, 추석임에도 우리 집은 참으로 고요하다.
이스탄불은 비가 오니 더욱 차분하다.
나의 친정집은 종갓집이다. 지금은 제사를 많이 줄였지만, 엄마가 지금의 나보다 젊었던 그 시절, 젊고 예뻤던 엄마는 언니와 나의 손을 잡고 거의 매달 시외버스에 올랐다.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시내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그러면 엄마는 우리의 손을 잡고 시외버스 정류장에 가서 표를 끊곤 우리를 데리고 매점에 데려가주셨다.
지금이야 할아버지가 살던 그 지역에 원자력 발전소가 생기면서, 산을 뚫고 터널이 생겨 친정집에서 그곳까지 가는 길이 참으로 가까워졌지만, 그때만 해도 할아버지 댁까지 가는 길은 참으로 꼬불꼬불했다.
마치, 작년 여름 떠난 튀르키예 보드룸의 길처럼, 길은 모두 굽이굽이 꺾여있었다. 그 때의 나는 지금의 아들처럼 그렇게 고개마다 멀미에 힘들어했다.
그 굽이굽이 꺾여있는 도로를 지나 큰집에 가야 하는 날, 엄마는 그날만은 부자였다. 고기를 좋아하던 우리를 먹이겠다며 매번 식육점에 가서 제일 저렴한 부위의 돼지고기만 사던 짠순이였던 엄마가, 그때만은 언니와 내가 먹고 싶다던 상자에 든 큰 과자를 사주셨다. 그때는 '크#운 산도', '후렌# 파이' 한 통을 언니와 각각 들고 시외버스정류장에서 엄마의 시댁,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는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리곤 버스를 타곤 꼬불꼬불 산길을 가다, 잠에 들었다가 다시 그 과자가 담겨있던 검은 봉투에 토를 하며 할아버지댁에 갔다.
엄마한테 힘들다고 엉엉 울기도 하고, 검은 봉투를 얼굴에 쓰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차를 세워달라고 울었던 게 아직도 생각나는 것을 보니 그때의 엄마의 과자는, 미안함이었나 보다.
그렇게 도착해 산 중턱에 있던 작은 버스정류장에서, 아직 멀미에 울렁거린다며 아프다고 투덜거리던 나와 언니를 데리고, 엄마는 비틀거리며 산길 아래를 걸어내려갔다. 아빠는 언제나 회사를 마치고 제사가 있던 곳에 늦게 오셨으니, 거의 매달마다 있던 제사를 지내러 온 엄마는 두 딸의 손을 잡고 그렇게 산길을 걸어 큰 집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엄마는 우리를 사랑방에 넣어두고 분주하게 제사 음식 준비를 했다.
언니와 나는 할아버지댁에 있던 토끼장에 있던 토끼들처럼, 아프다던 것을 금세 잊고 촌집 마당을 뛰어다녔다.
그리고 오늘, 추석.
세월이 지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세상에 없고, 하늘나라에 가셨다. 꼬불꼬불 산길을 같이 걷던 딸은 어느새 커서 이스탄불에서 아들을 학교로 보낸다. 이스탄불은 오랜만에 비가 온다. 9월 말이니 우기가 시작되려고 하나보다. 주말 내내 비가 온다는 소식이다. 어느새 커버린 딸은 아이가 생겼고, 그때의 비탈진 고갯길이 아닌 빗물이 똑똑 떨어지는 이스탄불 거리를 걷는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실 할아버지가 며느리들이 준비한 제사상 앞, 하얗고 노란빛이 도는 삼베옷을 입고 머리와 허리에 끈을 두르고 지팡이를 들고 곡을 하신다. 모든 사람들이 엎드려 다 같이 그 곡에 같이 우는 소리를 낸다. 그 속에서 검은 머리가 가득했던 나의 아버지는 자신의 형님 옆에서 엎드려 곡을 한다. 정말 칠흑같이 깜깜한 밤, 정각 열 두시. 모두가 잠든 시간 할아버지댁의 마당에만 환한 낮이었다.
모깃불의 불길이 잦아들고 새하얀 연기만이 아주 천천히 쏟아 오른다.
밤하늘의 커다란 보름달에 비친 일열로 서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 모기들을 쫓기 위해 피워놓은 모깃불, 아궁이에는 커다란 솥이 놓여있고 연기가 새어 오른다. 그 누구도 그 곡소리를 방해하는 사람은 없다. 사랑방에서 어린 나와 사촌들은 마당까지 기다란 돗자리를 펼쳐놓고 몇 줄씩 나열된 사람들의 뒤꽁무니를 어렴풋이 바라보았다. 떠들면 혼난다는 어른들의 야단에 사촌 큰 오빠는 작은 손가락 하나로 입을 가리곤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모든 시간이 끝나고, 아빠의 등에 업혀 나는 다시 시외버스에 올라탔다. 그 시절의 나는 내 기억 속의 너무 젊고 예뻤던 엄마처럼, 나 또한 참으로 작고 어려서 아빠의 등에 업힐 수 있었다.
아빠는 그때도 참으로 따뜻했다.
친정집의 작고 오래된 앨범 속 한 어린 아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계시던 그 명절, 할아버지 댁을 바라보는 그 산 중턱 버스정류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우리를 바라보는 젊은 아빠와 엄마를 향해 연신 환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