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공룡을 여전히 참으로 좋아한다.수많은 공룡의 이름을 줄줄 외우고, 보지 않고도 그것의 특징을 살려 그리는 그를 보며 나는 언제까지 그의 공룡 사랑이 계속될지 참으로 궁금하다.
아들의 친구는 며칠 전, 늦게나마 아들의 생일 축하편지를 보냈다.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는 어느새나의 친구인 미국인 엄마와 함께, 같이 탈 택시를 기다리며이스탄불 생활을 이야기한다.
아들의친구이자 그녀의 아들은 그들 둘의 모습을 공룡으로 그려 '너는 나의 좋은 친구'라며 글을 썼다. 그림 속에서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둘은 분명 누가 봐도 공룡이지만, 그림 속의 그들은 내게 도무지 무섭지 않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끌어안을 듯, 서로를 반가워한다
지난여름, 아들은 나와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의 대표작 '쥬라기공원(1993)'을 봤다. 그는위인전을 통해 읽어서 이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알았고, 이스탄불 극장에 걸린 쥬라기 시리즈 신작 포스터를 여러 번 본 탓에 그의 현재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공포의 대상인 공룡, 현재스티븐 스필버그가 기획하는작품인'쥬라기 월드(2018)'에선 공룡이 어린 아들이 보기엔 너무 잔인하게 묘사되는 탓에, 아들은 영화 시작 10분을 채우지 못하고 화면을 꺼달라고 외쳤다. 아들이 누구보다 강해지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다고 생각했던 공룡 사랑은 막상 공룡이 인간에게 잔인한 행동을 거듭하는 통에, 새가슴인 엄마와 함께 '꺄악'소리를 내곤 이 영화는 별로라고 자체 마무리를 짓는다.
그 후, 우리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직접 감독한 1993년도의 작품을 봤다. 아들은 한 번의 흐트러짐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작품을 본다. 선혈이 낭자한 요즘의 작품과 달리, 아들 자신과 퍽 닮은 어린 주인공이 공룡에 의해 두려움을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함께신나 하며 놀랄 뿐, 2018년의 작품의 도입부를 보고 아이와 내가 가진 그때의 거부감은 전혀 없었다.
'쥬라기 공원(1993)'의 공룡은 화면 속의 보이지 않는 어떤 곳에서 등장해 소리와 분위기, 매서운 눈빛으로만 다가올 뿐, 피를 흘리며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무엇이 다른 건인가. 같은 공룡이건만 두 작품의 표현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무서움이란, 공포라는 것은 과연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 것일까.
내일2023년 10월 29일,튀르키예는 공화국 설립 100주년을 맞이한다. 지금의 이스탄불은 누구보다 이 즐거운 축제를 즐기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도로와 거리엔 많은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은 이를 행복하게 맞이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이었던 오스만제국은 서양 열강에 의해 세브르조약을맺게 된다. 다른 서양 열강에 지배를 받은 다른 약소국처럼, 예전 우리나라처럼 다른 누군가의 의해 나라의 명운이 결정이 될 시기, 튀르키예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좋아할 영웅, 무스타파 케말이 이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다. 그리곤 그는 1923년 10월 , 세속주의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튀르키예 공화국을 설립한다. 그리고 그의 이 결정은, 튀르키예가 다른 이슬람 국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갖게 되는, 진정한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낸다.
요즘 나는 무스타파 케말의 평전을 읽고 있다. 그 시절 깜깜한 밤을 걷던 것과 같았던 튀르키예에 그가 일으킨 변화는 어떤 것일까. 거대한 공룡과 같던 오스만 제국은 또 다른 공룡이었던, 근대화된 서양 열강(영국 등)에 의해 여지없이 처참히 쪼개어 나누어진다. 그리고 어둠과 같은 공포 속에서 몸집이 다른 또 다른 공룡들을 맞이한다. 소리와 눈빛만으로도 모두가 숨을 죽이던 그 순간, 무스타파 케말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어제 이스탄불의 오후, 무수한 전투기 굉음이 하늘을 울렸다. 그것은 오늘 튀르키예 공화국 100주년 전야제 준비를 위한 전투기 공연 연습이었다. 세찬 전투기의 행렬이 이스탄불 하늘을 수놓는다. 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전투기 편대가 하늘을 빠르게 날아간다. 그런데 그 속에서 나는 갑자기 두렵다. 방학을 맞아 집에 있는 아들도 계속된 굉음에 걱정을 시작했다. 어린 아들은 내게 설마 전쟁은 아니겠지라며 직접 보지도 않았건만, 내게 소리로 전해진 그의 공포를 이야기한다.
'가자지구 민간인 병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잔혹한 공격으로 인해 대통령이 선포한 3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 동안,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개최예정이었던 모든 행사가 취소되었습니다.'
지난주,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문화센터'의 알림글이다. 이스탄불, 이곳에서 나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에 대한 두 가지 시선을 만난다. 분명 하나의 전쟁이건만 그 시선은 분명히 다르다.하나는 미국인의 시선에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튀르키예인,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1923년 10월, 지금으로 100년 전의 전쟁 속에서 튀르키예 공화국을 설립한 시기에 튀르키예 사람들은 어떤 시선으로 그때를 이야기했을까. 그때의 사람들은 상대를 어떤 모습으로기억했을까.분명 같은 상황에 있건만 우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서로를기억하고 있다. 지금의 그리스가 고향이었던 무스타파 케말은 그때의 전쟁 속에서 자신이 싸우는 상대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았을까. 자신이 죽이는 존재가 그 상대가 나의 적이라고 그가 전쟁을 하던 그 순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 그가 죽이던 사람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전쟁은 과연 우리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무엇을 주는 것인가. 그는 그저 그 순간의 자신의 최선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이스탄불 하늘 속의 굉음이, 그 공포가 아들친구의 공룡처럼 때론 우습게 아니 너무나 따뜻하게 지금 이 순간 변하길 다시 바라본다.
*2023년 10월 29일, 튀르키예의 공화국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 이 순간, 다시 평화가 찾아오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