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한국을 떠난 지, 200일이 넘어서 터키살이가 지속되고 있다. 여기도 아직 코로나 확진자가 있지만, 마스크를 쓰고 공원에 가면 우리만 쓰고 있어서, 결국 벗고 있는 일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동양인은 요즘 이 코로나 시국 탓에 관광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정말 우리 밖에 없는 데다가 마스크도 우리만 쓰고 있으니, 아무래도 튀고, 아들이 입고 있는 한국 옷은 참 이상하게도 여기 아동복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뭐 공룡 마니아 취향에 맞춘 옷이니 터키에선 못 보던 티라노사우르스 그림이 있는 옷이 신기하고, 가끔 신기하게 쳐다보다가 어떤 터키 어린이는 내 가방에 달린 ' I Love Korea.'가 달린 한복 입은 인형을 보고 'Kore(코레코레)', 'Koreli(코레리)'하고 주변을 빙글 돌며 나와 아이를 구경하고 가는 일이 종종 있다. 물론 내가 사는 동네에선 외국인이 많아서 우리가 신기한 존재가 아니건만, 조금만 벗어나서 정말 터키인들이 많이 가는 지역으로 가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바로 이 말이다.
'Sen nerelisin?(Where are you from?)'
'넌 어디에서 왔니?'
남편 회사에서 학원비를 일정 부분 지원해주는 덕에 시작한 터키어는 석 달 차에 이르니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정도로 향상되었고, 식당이나 놀이터에서 영어를 하지 않고 터키어로 주문하거나 아이의 알레르기 때문에 음식 재료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어보면 늘 돌아오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넌 어디서 왔니?'
그럼, 'Korelim(한국인이다.)가 나오는 순간, 다음 질문은 역시나 남한이냐, 북한이냐가 다음 질문이다.
그리곤 남한이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한국에 대한 좋은 반응이 대체로 쏟아진다. 터키 사람들이 착하고 한국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이 대화는 칭찬과 흥분이 대다수이다. 요즘 여기서는 대형서점이나 문구점, 대형마트 한 코너의 잡지를 파는 곳에서 아주 쉽게 BTS나 블랙핑크가 표지로 있는 잡지책을 발견할 수 있고, '오징어 게임'이라고 적힌 머그컵이 판매되고 있거나 '한국어 학습'이라는 교재도 찾을 수 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모른 채 살았던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그러나 이곳에서 나는 누구보다 많이 한국인임을 말하게 된다. 특히 외국인임에도 영어가 아닌 터키어로 이야기하는 순간, 그들은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는 일이 늘어나는 것이다. 물론 나의 이상한 발음으로 주문을 세세하게 하면 뭔가 다른 음식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서 될 수 있으면 긴 문장(이어진문장)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알아들은 줄 알았는데 모르는 경우도 많고, '에라 모르겠다.' 영어로 쏼라쏼라 이러면, '나 영어 잘 몰라'를 터키어로 하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내가 이제는 그 말을 알아들어서, 그 말을 알아들을 정도는 이제 돼서 말이다.
얼마 전, 새로 주재원 가족들이 왔다. 가는 사람이 있으면 오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새로운 주재원들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이가 먹고 아이를 데리고 시작하는 외국생활, 쉽지 않다. 뭐 하나 그냥 집에 들어오는 일이 없는 것이다. 나도 그 시간을 지나갔으니 모두 어떤 마음인지 잘 알고 있다.
학교를 정하는 일, 집을 구하는 일, 이삿짐이 오지 않은 집에서 살아가는 일, 장을 보는 일, 음식을 사 먹고 주문하는 일까지 비영어권 국가에선 모든 일이 쉽지 않다. 그것을 가르쳐주고 알려주는 일, 선임 주재원의 가족 간의 마음의 업무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같은 시떼 안에 한국 주재원들끼리 서로를 도와주고, 정보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것, 여기선 한국에 있었다면 절대 몰랐을 사람들과 친언니처럼, 때론 동생처럼 살아가게 된다.
'지훈이 엄마, 내가 여기를 가 봤는데 있잖아.'
'응, 언니'
어느새 내 이름, 지훈이 엄마, 그리고 한국이었다면 몰랐을 다른 회사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 그저 한국 사람이라는 것 하나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국제학교에선 아이들끼리 우리는 같은 한국인이라며 서로를 돕는, 그런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동질감, 이렇게 여기서 한국에서 내가 왔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터키분들은 대체로 친절하시다. 내가 애를 데리고 가다가 덤벙거리며 뭐를 흘리면 쫓아와서 내게 그걸 주워다 주고 아이 먹을 초콜릿을 건네주시는 따뜻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끔 이상한 터키인을 만나거나 분명 터키인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일 것 같은 무례한 사람을 만나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도와주려고 손을 건네는 한국 사람들, 서로의 사정을 알아서일까 같은 주재원에 같은 학교를 다니는 사이이면 그냥 갑자기 친해진다. '내 마음을 알 사람은 너뿐이야.' 이런 상태로 말이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외국 주재원 생활한다고 하면 다들 ' 와, 좋겠다. 넌 무조건 좋고.' 공감대가 생기기는 어려운 것이니 말이다.
백날 이야기해도 모를 테니, '와서 살아봐라. 이것들아!' 하고 싶지만, 팍팍한 한국생활도 아니 그저 '그래그래.'하고 들어줄 뿐이다.
한국을 벗어나서 나는 더 느낀다. 내 고향,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나의 나라를 생각한다. 생활이 고될수록 그리고 안정되어 여행이란 이름으로 이 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떠날수록 또다시 느끼는 것이다.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느낀다. 그리고 내가 좋은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간다.
너는 어디에서 왔니?(nerelisin?)
나는 한국인이야.(Ben koreliyim.)
이 말이 부끄럽지 않게 나는 지금 이스탄불에서 살아가고 있다.
덧붙임)
터키에는 다양한 나라의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시리아와 국경을 인접하고 있어 터키 내에서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 중, 시리아인 많습니다. 때론 필리핀인, 몽골인 등 다양한 인종이 터키에 있습니다. 터키는 유럽에 인접에 있지만, 터키인은 유럽으로 가는 여행 비자를 받는 절차가 까다로운 반면에 우리나라는 거의 대부분의 나라, 유럽 대륙의 거의 모든 나라에 무비자 입국이 가능합니다.
타국에 살다 보니 다른 나라 사람을 만나,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얼마나 좋은 나라에 살고 있었는지 다시 한번 느낍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시리아 어린이들이 쓰레기 수거 차량에 앉아 쓰레기를 부모와 함께 줍고, 뒤지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합니다. 한국에도 어려운 친구들이 있지만, 그런 모습을 흔하게 볼 순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선 여기가 부자동네임에도 불구하고 리어카를 끌며 쓰레기를 뒤지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분리수거를 하지 않은 쓰레기통을 뒤져서 돈이 될 만한 쓰레기를 찾는 아이와 그 가족의 모습을 자주 봅니다.
게다가 요즘과 같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속에서 우리나라도 역시 분단국가이며, 휴전 국가임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이 그리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것을 타국에 와서 더욱 자주 목격합니다.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하길 그리고 모두가 평화롭길 다시 한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