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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 Mar 29. 2022

국제학교에서도 야반즈일 뿐.

외국인이 된 우리, 국제학교에서 학부모 상담을 위한 몇 가지 지혜

아들의 피부는 그렇다. 정말 나빠졌다.

Kotu(bad)


 터키어를 처음 배우면 알게 되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표현인, 'Nasilsiniz(how are you)?', 우리가 처음 영어를 배울 때처럼, 나는 당연히 'Iyiyim(I am fine).'이라고 해야 하지만, 우습게도 아이를 학교를 보내면 난 계속 이 말을 못 했다.

 



 국제학교는 서양식 교육방식을 취하고 있다. 당연히 서양 생활방식으로 신발을 신고 학교생활을 하고, 밥도 생야채의 샐러드가 꼭 나오는, 아이는 학교를 간 후 한국에서보다 학교에서 빵을 많이 먹는다. 그리고 교과서가 없고 토론, 토의로 수업을 진행한다. 아이가 학교에서 뭘 공부하고 오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건, 한국보다 여기가 더 하다. 뭐 알림장도 없으니 이메일만이 유일한 학교 소식 알림장이다. 신발을 실내에서 신는 일이 이만큼 어려움을 유발할 줄 몰랐지만, 그와 터키식 식당에 가거나, 그가 학교에 다녀오면 원인 모를 두드러기가 그의 몸에 나는 것이다.


 애써도 답이 없는 이 상황, 처음에 귀가 찢어지는 아토피 전조 증상의 시작이었으나 2주 전 온몸 전체로 두드러기가 퍼졌다. 아이는 일주일을 학교에 가지 못했고 알레르기 증상이 심해져 낮과 밤 모두 정상적인 생활을 못했다. 밤엔 계속 몸을 긁는 통에 남편과 나는 교대로 그를 문지르고, 로션 한 통을 그의 몸에 다 바르고, 그의 손을 막는 게 최선이었다. 남편과 나는, 그래 또 다른 병원을 찾아 떠난다. 한국에서보다 병원에 더 가는, 참으로 나는 답답함을 넘어  '학교가 더러워'가 입에서 욕으로 나올 지경이었다. 선생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이야기만 오갈 뿐, 아이를 학교에 보내자마자 코로나에 걸리고, 뭐 난 이제 열이 받은 것이다.


 애를 쓰고 그리고 잠을 자지 못한 며칠이 이어졌다. 더 이상은 안된다는 생각에 나는 다시 학교에 메일을 쓰기 시작했고 그리고 지난주 금요일 코로나19로 외부인 출입이 힘듦에도, 나와 남편은 상담을 위해 약속을 잡고 학교로 갔다.


 다소 적대적인 학교의 태도 그리고 내가 내민 선물을 보고 바뀐 그들의 태도.그렇다. 난 선물을 빙자한 '뇌물'을 드렸다. 한국 고려홍삼사탕, 터키 출발 전 이삿짐에 혹시나 하며 샀던 물건을 드렸다. 비싼 건 절대 아니다. 다만 정성이 들어가 있을 뿐, 단가로 생각한다면 삼천원은 될까 싶은 저렴한 사탕 꾸러미였다.


 만약 아직 이삿짐을 싸지 않았고 짐을 더 넣을 여유가 있다면 '한국 전통 선물'을 꼭 추천한다. 받은 이들은 모두 좋아했다. 한국도 '김영란법'으로 고가의 선물을 받을 일은 절대 없다. 그러나 서양은 이보다 더하다. 학부모에게 어떠한 선의의 선물을 받는 일이 없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선생님을 공경하거나 높게 대우하는 문화도 없다. 물론 한국 공교육이 많이 파괴되었다고 하지만, 적어도 우린 선생님 이름을 막 부르며 친구처럼 대하진 않는다.




 그렇다. 난 부탁하러 온 별난 엄마다. 아무리 싸우고 화를 내 봤자 내 손해이며 또한 내 아들 손해인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자식 가진 사람이 죄인인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나는 죄인처럼 아들이 아파도 그들에게 선물을 줘야 한다. 학교에서 만약 그가 아나팔락시스와 같은 상황이 왔을 때, 네가 우리 아들을 도와줄 사람들이니까 나는 참아야 했다.


 한국에서도 그가 학교를 보내려고 할 때마다, 나는 정말 다양한 교사들을 만났다. 나와 달리 지나치게 솔직해서 예의가 없는 사람도 만났고, 나와 비슷해서 예의는 있지만 솔직하게 힘들다고 말하는 교사도 만났다. 

 그 때, 내가 배운 건 아무리 내가 그들에게 화를 내봤자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고,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며, 나에게 겉으론 미안하다고 말하며 거절하지만 그 말로는 아이를 키우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내가 선물한 홍삼사탕 상자에 그들은 모두 행복해했고, 아이가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우겠다며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해주었다.개선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1. 아이의 반 교실 내에선 실내화 착용

2. 온습도계, 가습기(자비로 구매, 설치 및 관리를 부탁했으며 한화 총비용 8만 원 정도가 들었다.)

3. 9월 다음 학기부터 전체 학생 실내화 착용에 대한 학부모 동의 후, 진행 예정

4. 급식에 참깨 등 알레르기 유발 재료 사용하지 않도록 한번 더 점검

5. 실내 청소 더 청결히 하도록 점검


 아이는 참깨, 털로 유발되는 진드기 등 알레르기 반응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 온습도계, 가습기를 내 자비로 설치했지만 지금 학교의 반응을 기다릴 시간이 내게 없으니, 급한 사람이 먼저 달려가야 했다. 다시 기다리고 개선되길 지켜봐야 한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 안되면 이제는 아이에게 매일 도시락을 싸 보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다. 국제학교에는 온 나라의 친구들이 학교를 다닌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난 그냥 외국인일 뿐이다. 비영어권의 동양인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동양의 청결함은 그들과는 다른 삶이었다. 이런 다른 생활 방식에서 지훈이가 잘 받아들이길 바란다. 몸도 마음도 모두 건강하길 늘 바라본다.


 학교는 변하고 있다. 실내화를 반 친구들  부모님께서 준비해주시고 있다. 모두는 아니지만 참으로 고맙다. 나의 아이도 다행히 2주 전보다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 다시 온몸 전체에 반응이 오질 않길 바라며, 외국인(yabanci)으로 사는 삶은 솔직히 그렇다. 나쁘다(kotuyum). 별로다. 가끔 친구가 '외국에 사니 좋지? '하고 묻기도 한다.


 그럼 난 다시 묻는다. '넌 이사 가면 편하더냐?' 이사만 해도 너무 힘든데 다른 나라인데 편할리가 없다. 그러고는 나는 웃는다. 나는 지금 좋은 것을 찾는 중이라고 말한다.

 진심으로 좋다(İyiyim)고 말하며 안부를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의 건강은 늘 나의 행복의 기준인 것은 한국에서도 터키에서도 변함이 없다. 그렇게 난 지금 튀르키예에서 학교도 찾아가고, 가습기도 학교에 사줘 가며 외국 드라마에 나오는, 동양인 극성 엄마처럼 그렇게 터키에 살고 있다.




덧붙임)

주재원이 되어 이삿짐을 싸실 때, 쿠팡이나 인터넷을 통해 홍삼사탕 등 한국느낌이 나는 물건을 꼭 챙겨오시길 바랍니다. 살아보니 쓸 일이 있네요. 그들에겐 특별하고 여하튼 어딜가든 한국산 역시 최고입니다.


졸루센터의 뒤의 실제 터키인들의 사는 시떼의 모습, 극성엄마의 홍삼사탕 포장

        베벡 선박 정류소 앞, 아들과 그리고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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