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의 아침, 아들이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서 길을 나섰다. 우리 시떼(아파트 단지)의 조경을 관리하시는 할아버지께서는 이른 아침부터 사다리에 올라 커다란 조경 가위로 집 앞 나무를 자르고 계셨다. 나뭇가지들은 우리가 지나갈 땅 아래로 한 움큼 떨어졌다. 아들은 내게 물었다.
"엄마, 저 나무 왜 잘라요? 그대로 두면 안 돼?"
"그대로 두어도 되지. 그런데 잘 크게 하려고 일부러 자르는 거야."
"나랑 같네. 나무."
어젯밤, 아들은 요즘 그가 좋아하는 책인 'Asterix'의 인물들을 그리다가 멈추어야 했다. 하루 2장씩 풀어야 하는 한국 수학 교과서를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고, 결국 나에게 혼도 좀 났다. 이부자리에 누워 '엄마 밉다'를 연발하던 아들은 오늘 아침, 자신을 나무라 말한다. 자신은 나무와 같다고 말한다. 아들은 지금 내가 키우는 나무인가.
아침부터 가지치기가 한창인 나무를 지나가며 나는 아들과의 시간을 돌아본다.
그래, 너는 나무. 그렇다면 나는 지금 햇볕을 받고 자라는 너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한다.
숙소 안에 작은 금고, 수수께끼를 풀어 비밀번호를 알아내 금고를 열면 왼쪽 사진과 같은 레고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2023년 6월 28일
'Could you solve the riddle?'
당신은 수수께끼를 풀었나요?
레고랜드 근처의 식당이 문을 닫은 탓에 우리는 숙소에 얼른 들어섰다. 숙소는 놀이동산 밖에 위치해 있었고 테마별로 숙소 간의 거리가 제법 있었다. 우리는 '해적'을 테마로 한 숙소를 예약했고, 숙소 안팎과 아침을 먹을 조식당까지 모두 '해적'을 테마로 하여 꾸며놓았다. 다른 테마의 숙소가 있었지만 아들의 취향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우리는 입장부터 이곳의 분위기에 한껏 신이 났다. 방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해적을 테마로 한 레고 장식품들과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아들은 모두 웃고 있다.
저녁 식사를 예약하지 않은 게 속상했을 만큼, 숙소의 상태는 깨끗하고 단정했다. 아이를 위한 호텔답게 방 안에 있는 아이를 위한 샤워용품까지 세심했다. 다만 방 안에 간단한 커피잔 세트도 없다는 것이 의아했다. 하지만 제법 단단하게 만들어진 이층 침대를 보며, 아이가 하나인 게 너무 아쉬울 만큼 객실의 구성이 괜찮았다.
호텔 앞엔 해적을 테마로 하여 놀이터를 만들어 놓았다. 하루종일 레고랜드에서 놀고서도 이것도 놓칠 수 없다며, 내가 저녁밥을 준비하는 동안 아들과 남편은 바쁘게 나갔다 왔다. 미리 챙겨 온 밑반찬과 휴대용 압력밥솥이 열심히 일하고 그 정리를 하는 중에, 남편과 아들은 또다시 웅성웅성 끝없는 대화가 이어진다.
"이 비밀번호가 아니야."
"우리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들은 어느새 울상이다. 행복하려고 온 것인데, 아들은 열리지 않는 자물쇠를 보고 울음을 터뜨린다. 수수께끼를 풀면, 선물로 레고를 받을 수 있다는 아빠의 말에 시작한 그들의 모험이 잘 되지 않나 보다. 좋은 것이 가득한 이곳에서, 단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문제 하나로 아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세상 떠나갈 듯한 울음이 시작되고 남편과 나는 계속 울면 도와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우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그를 다그친다. 아들은 한참 동안 속상한 마음을 주체하기힘들어했다.
아침 조식당 커피머신(5성급 호텔 수준으로 각종 알레르기를 대비한 세심한 조식 구성이었다.), 레고빌리지 복도 모습
결국, 울음을 그친 아들을 진정시키고 문제를 확인하며 다시 숫자를 맞춘다. 그리고 그동안 꼬리를 숨기고 있던 상어를 드디어 찾아냈다. 방에 있던 상어가 머리 없이 꼬리만 내밀고 호텔 벽에 그려져 있었다. 내 생애 처음 호텔에 와서,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호텔방 벽까지 다 살펴보고 잠자리에 누웠다. 참 긴 하루다.
그렇게 우리의 밤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아들은 울음을 그치고 자물쇠를 열자 우리가 잃었던 평화로운 세상은 다시 찾아왔다. 아들은 헤벌쭉 웃는다. 나는 아들의 행복한 표정에 이 말을 꾹 삼킨다. 사실, 화는 이미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레고, 이 블록 몇 개! 이게 뭐라고!"
하루종일 레고랜드에 신나게 놀고, 밥 먹고, 숙소에 와서 뒷정리하고 아들은 자물쇠 연다고 울고, 남편은 우는 아들을 보고 화가 나서 '이 놈 자식'을 연발한다. 울음 파티 후, 혼이 나고 진정을 찾고 난 뒤에 다시 시작된 수수께끼 풀이. 우리는 결국 숙소의 레고 선물도 찾았다. 오늘 하루는 사실 이렇다. 그런데 아들은 나의 이 감정과 무관하게방금 있었던 모든 일은 이미 다 잊었나 보다. 그렇게 울어대던 녀석은 레고를 만지며너무 행복해한다. 그는 이부자리에 누워 말한다.
"엄마, 나 오늘 내 생애 가장 행복한 날이야."
"그래, 행복하다니. 나도 행복하다. 잊자! 이 녀석아!"
이층 침대가 좋다던 아들은 결국, 혼자 자지 못하고 내 곁에 누워 잠이 들었다. 웅크리고 누워 아들을 바라본다. 내가 지금 키우고 있는 나무, 너를 바라본다.
내 나름대로 너를 잘 키우려고 가지치기를 하다 힘들어서 화가 난 나도 바라본다. 그리고 나무인 네가 벌써 모두 잊어버린 네 가지들을 긁어모아 너와 내가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따지는 내가 보인다.
잘하고 있는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아들은 어느새 웃는 얼굴로 자고 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나도 그를 따라 웃어본다. 그래도 녀석은 오늘 햇살을 잘 받았나 보다. 나도 그도 함께 서로를 꼭 안고 웃으며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