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의 나의 아들보다 어렸던 그때, 우리 집은 시장 근처의 족발집 2층에 살았다. 새 집을 짓는다며 집을 짓는 동안 살 거라고 했던 2층 족발집, 나는 매일 아침 올라오는 족발 냄새가 싫었다. 생각해 보면 일층이 족발집이지만 엄마는 한 번도 족발을 사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시절 젊었던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더 많이 돈을 벌기 위해 조선소에서 야간근무를 거부하지 않았고, 학교에 돌아온 언니와 내가 놀고 있을 때 엄마는 항상 우리 둘에게 아빠가 주무시니 조용히 놀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저녁 찬거리를 사러 엄마의 손을 잡고 동네 시장에 갔다.
검은 김 위에 커다란 밥솥에서 갓 꺼낸 밥을 올리고 당근, 시금치, 단무지가 차례로 올라가고 마지막으로 분홍소시지 하나가 더해진 후 쓱쓱 말아 참기름이 윤기 나게 발라졌다. 노상에 놓인 시장 가판에 앉아 김밥에 뿌려진 통깨를 바라보며 엄마 옆에 앉아 큭큭거리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아주머니는 칼로 김밥을 서억석 소리를 내며 썰어 하얀 비닐이 싸인 초록 접시 위에 김밥은 놓았다. 그리고 엄마 옆에는 장난감 가게 옆의 이불 가게에서 언니와 내가 잠을 잘 때 안고 자라며 사준 베개인형인 '예쁜이'와 '호돌이'가 놓여있었다.
'예쁜이'이라는 호칭처럼 언니는 김밥을 먹으면서도 그 베개를 꼭 안고 있었고, 나는 사실 옆에 무심히 놓여있던 주황색 통의 '옥스포드' 블록이 더 궁금했다.
2023년 6월 28일
이번 독일 여행의 하이라이트, 레고랜드에 도착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렌터카를 빌린 결정적인 이유도 독일 Gunzburg에 도착하기 위함이었다. 레고랜드가 있는 이곳 주변에는 큰 마을이나 상권이 없는지 렌터카를 이동하는 동안 본 것은 인근의 공장지대 표시한 표지판과 정리되지 않는 수풀이었다.
"이런 깡촌에 레고랜드라니!"
"이런 촌이어야, 놀이동산을 크게 짓지."
레고랜드 첫날, 레고랜드는 정말 크고 신나는 공간이었다. 무엇을 표현해야 더 완벽할까. 입장과 동시에 레고랜드는 우리를 들뜨게 했다. 입구부터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려는 아들을 붙잡고 모든 놀이기구를 타겠다는 일념으로 전진한다. 전날 마트에서 사 온 빵과 간식으로 점심을 때우고 다시 전진! 전진!
수요일 저녁 6시가 넘은 시간, 여름의 햇살로 마치 한낮 같은 저녁이었건만 레고랜드 주변 식당과 마트는 모두 문을 닫았다.맛있는 중국요리를먹을 거라며 레고랜드 안에 파는 피자나 파스타를 전혀 사 먹지 않았던 우리 가족은 너무 배가 고팠다. 레고랜드 숙박의 석식을 신청하지 않고, 레고랜드 주변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해결하려고 생각했던 우리의 계획은 완전히 실패했다.
"수요일, 독일인은 저녁을 모두 집에서 먹나 보다."
레고랜드 주변은 레고랜드 안의 화려함과 달리 주변의 상권이 발달하지 않아 보였다. 우리 또한 레고랜드 안의 숙소를 정하고 그곳의 조식을 신청했기에 첫날 저녁 식사를 제외하곤 이곳 밖을 나갈 이유가 전혀 없었지만, 레고랜드 바깥세상의 고요함은 마치 잠시 머물고 있는 꿈속과 그 밖의 현실은 온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레고의 제조 공정을 보여주는 레고 FATORY, 레고랜드 방문 기념품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곳곳에 눈 뗄 곳이 없이 신기하고 재밌었던 레고랜드. 어른인 나 또한 신이 났고, 아들은 일 년이 지난 지금도 레고랜드를 다시 가고 싶어 한다. 흔히들 노잼이라고 말하는 독일이 이제껏 모든 여행 중에 가장 재밌었다고 하는 아들. 그 이유는 레고랜드와 독일박물관이 독일에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새로운 레고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며, 이곳을 떠나기 전에 새 레고를 살 수 있냐며 묻는 아들. 나는 진담반 농담반이 섞인 말을 던진다.
"우리 집이 가난해서 이 레고 못 산다."
"가난한데 어떻게 여기 놀러 와요?!"
"다른 데 아껴서 여기 오는 거다. 아하하."
말도 안 되는 우리의 대화에서 나는 어린 시절을 떠오른다. 그리고 시장통에서 새 장난감을 쥐어주곤 흐뭇해하던 젊었던 친정엄마가 떠오른다. 아들은 그때의 나처럼, 이 레고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무척 궁금한가 보다. 사고 싶은 레고를 들고 흔들어보고 돌려본다. 시장 김밥을 입에 문 채, 빙글빙글 돌려가며 블록통의 그림을 보던 내가 떠오른다.
걸어도 걸어도 계속 나오던 새로운 모습의 레고들에 신난 우리는, 다음 공간엔 어떤 놀이기구는 있을지 너무 궁금하다.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가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곤, 왜 나는 아직 이곳에 더 있고 싶은 것일까. 신난 아들의 표정을 보며,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시장 장난감 가게에서 샀던 옥스포드 블록통이 생각났다.
나는 주황색 블록통 안을 열어 블록통 겉에 붙어있던 그림을 따라 기차역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내 머릿속에만 있던 2층집을 만들고, 마을을 열고, 긴 블록 더해 비행기를 만들었다.그리고블록통 겉에 붙어있던 그림이 낡아 저절로 떼어질 무렵 나는 본래 놓인 그림과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다.
여전히 블록이 담겨있어야 할 그 오래된 주황색통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친정집에서 살고 있다. 한 때, 나보다 젊었던 그녀가 내 손에 쥐어준 그 통은 제법 빛을 바랐고, 그 통에 이제 담긴 것은 알록달록 블록 대신 늙은 엄마의 어깨를 낫게 해 줄 부황을 담는 통이 되었다.
일 년의 한 번, 내가 어린 손자와 함께 가면 그녀는 젊었던 그 시절과 달리 부끄러움 없이 윗옷을 벗어 통 밀어 부황을 자신의 몸에 놓아달라고 말한다. 지금의 아들만 했던 나는, 이제 할머니가 된 그녀의 등에 놓인 빨간색 멍에 맞추어 부황을 놓았다. 그 오래된 주황색 통을 보면 나는 그 시절의 젊은 엄마가 그리고 나이 어린 언니와 내가 떠오른다.
어느새 빛바랜 블록통처럼 나이 든 그녀가 여전히 그곳에 잘 있어줘서, 언제나처럼 그곳에 계셔서 참 고마웠다.
이제는 늦은 저녁, 레고랜드의 숙소에서 계획과 달리 캐리어에 챙겨 온 쌀과 전기밥솥으로 밥을 지어먹고 누워, 아들의 침대 옆에 놓인 레고를 만들며 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