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에 있는 꿈과 환상의 공간 '에#랜드'. 그곳엔 '티익스프레스'라는 놀이기구가 있다. 그 재료가 나무로 되어있어 직접 타면 그 흔들림이 엄청 나서 더욱 무섭다는 기구. 낙하각 77도, 시속 104Km.
에#랜드 제일 안쪽에 위치하여 수학여행 둘째 날 아침, 아이들과 입장하여 기념사진을 찍자마자 들어가서 첫 번째로 탔던 가장 무섭다는 놀이기구.
나는 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 일 년의 한 번 그 놀이기구를 의무적으로 탔다.
"꺄아악"
난 사실 참 타기 싫었다. 돈 주고 무서운 걸 타야 한다니. 그런데 나의 첫 번째 수학여행 이후, 이 놈의 놀이기구를 매년 탔다.
"이 불합리한 사회! 아하하."
2024년 6월 17일
이스탄불에서 독일로 향하는 두 번째 여행이 시작되었다. 아들의 지극한 기계 사랑에 의해 다시 시작된 독일행에서 우리는 작년에 갔던 레고랜드에 다시 오게 된 것이다. 아들은 여전히 신이 났지만, 솔직히 마흔이 넘은 나는 같은 장소의 두 번째 레고랜드가 그리 흥미롭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 후, 이곳이 가장 좋았다며 매번 이야기하는 통에 우리는 결국 제일 저렴한 독일 비행기 표를 찾았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며 출발하곤 그래도 아들이 좋아했으면 좋겠다며, 두 번째로 독일 레고랜드에 다시 도착했다.
아들, 남편, 나는 독일 레고랜드의 놀이기구 앞에 섰다. 이미 타 본 놀이기구 앞에서 어느새 놀이기구를 탑승할 수 있는 키가 어정쩡해진 아들을 바라본다.
"아들아, 이건 작은 애들이 타는 거야. 너 너무 커서 못 타겠다."
"엄마, 이건 너무 무서워. 나는 못 타겠어."
그리 담대하지 못한 세 사람은 레고랜드 놀이기구 앞에 서서 자신이 놀이기구를 타지 못하는 이유를 항변한다. 어쩌다 보니 세 사람 중에 놀이기구를 제일 잘 타는 사람은 나였다.
"아들, 엄마, 아빠도 타야 하니까. 여기 서서 엄마, 아빠 타는 거 기다려줘."
이제 제법 큰 아들은 이제 자신도 탈 수 있는 놀이기구임에도, 타지 않고 우리 짐을 지키고 기다리고 서 있겠단다. 그리고 그는 타기 전의 내게 연신 안전바를 꼭 잡으라고 강조한다. 오늘도 내가 하던 말을 네가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친다.
회전하는 놀이기구에서 연신 웃음이 나온다. 흔들리는 놀이기구 속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면서도 옆에 앉아서 같이 돌고 있는 남편을 한 번 보고, 저 멀리서 돌려지고 있는 우리를 보고, 걱정을 하는 아들에게 손을 흔들어본다. 엄마는 정말 괜찮다고 걱정하는 아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하하. 이거 뭐."
아들과 남편의 표정, 나는 빙글빙글 회전하면서도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2024년, 이젠 혼자서 놀이기구를 타겠다는 아들
학교에 근무하던 첫 해, 나는 솔직히 무서운 선생님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제일 젊은 선생님이었던 나는 나이 든 선생님들 속의 어린아이 같았다. 옆에서 긴 봉대를 들고 아이들을 호령하던 선생님들 중에 가장 어리던 나는, 그 시절우습게도 늙어 보이고 싶었다.
겨우 띠동갑이었던 아이들은 나를 보고 웃었고, 나는 어리숙하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남자아이들만 가득한 반의 담임선생님이 되었다. 녀석들이 아직 '동물의 왕국'이었던 그 시절, 쉬는 시간이 되면 각자 다른 초등학교에서 온 아이들은 서열 싸움을 하곤 했다. 화장실도 못 간 채, 나는 교실에 앉았다.
막대기로 교탁을 열심히 두드렸다. 큰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누구도 나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수업을 마치고 정리되지 않는 교실에서 정신없이 아이들을 하교시키곤 돌아와, 교무실 책상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리곤 선배였던 선생님은 내게 이야기했다.
"선생님, 아이들 때릴 수 있어?"
"아니요."
"무섭게 할 수 있어?"
"아니요."
"그럼, 선생님은 무섭게 하지 마. 아이들이 샘을 좋아하게 만들어."
나는 그렇게 무서운 선생님이 되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했다. 아이들이 떠들 때, 남겨서 나의 시간을 그들과 함께 썼다. 그리고 나는 학교에서 제일 안 무서운 선생님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나는 학기 초 수학여행마다 그들과 롤러코스터를 탔다. 정말 돈 주고는 절대 타고 싶지 않은 놀이기구를 그들과 함께 꼭 탔다. 무섭다며 벌벌 떠는 녀석들과 줄을 서서 세상을 날려버릴 듯한 고함을 함께 지르며 날아올랐다.
"까아악"
"까아악"
나는 세상의 분노를 놀이기구에서 털었던 것 같다. 수학여행 첫째 날, 밤새 잠을 자지 않고 버틴 그 녀석들과 정말 내 혼을 다 날려버릴 듯, 함께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와 함께 놀이기구를 탄 친구는 떠들고 있던 반 친구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우리 샘은 화가 없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낼 화를 참으시는 거야. 우릴 기다리는 거야. 조용히 해."
나는 그렇게 참으로 오랜 시간 아이들을 기다렸다. 나는 전혀 무섭지 않았기에 그들이 나를 좋아하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지금의 내가 아들을 하염없이 짝사랑하는 것처럼, 나는 오랜 시간 그들을 기다리며 함께 있었다.
2024년 6월 18일
비가 내리는 레고랜드에 다시 서 있다. 아들은 저 멀리 떨어져 혼자 서 있다. 빙글빙글 도는 그 짧은 순간, 나는 다시 남편과 아들을 바라본다. 아이는 내가 놀이기구 타는 모습을 보며 기다리고 있다. 남편은 취향에 맞지 않는 놀이기구를 나 때문에 함께 타주었다. 그는 회전하는 놀이기구에서 나랑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안전바를 잡고 있었다.
솔직히 레고랜드의 놀이기구는 무서움을 느끼기도 전에 이내 나를 내려놓았다. 레고랜드의 놀이기구는 에#랜드 티익스프레스보다 안 무서웠다.
하지만 삶의 모든 것은 상대적인지라. 아들보다 어린 어떤 아이는 깔깔거리며 놀이기구를 내렸고, 또 다른 어린아이는 놀이기구가 멈추자 눈물을 흘렸다. 걱정이 많은 나의 아들은 놀이기구에 타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 번의 회전으로 세상이 뒤집힌 후, 땅에 내린 우리를 보며 연신 괜찮냐며 그는 묻는다. 아들을 기다리게 하곤 놀이기구를 탄 엄마는 철딱서니 없이 웃어 보였다.
"아들아, 네가 나를 기다려주니 기분이 너무 좋다. 기다려줘서 고마워."
아들은 마치 나의 모습을 하곤, 어지럽다는 아빠에게 물을 건넨다. 나는 다정하게 아빠를 위하는 아들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는 아들, 너를 보며 다시 그 시절의 그 녀석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참으로 부족했던 나는 오랜 시간이 걸려 너를 기다렸다. 그리고 사랑하는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시절, 나는 정말 행복했다.
2023년, 나와 함께 놀이기구를 타준 수학여행 온 독일 어린이들
덧붙임)
2023년 6월 28-29일, 2024년 6월 17-18일.
거의 일 년 만에 비슷한 시기에 독일 레고랜드를 방문했습니다. 일 년이 지나고 달라진 점은 아들의 키가 커졌고 그가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늘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무서운 놀이기구를 즐기지 않는 성향은 어쩌면 그렇게 똑 닮았는지, 키가 커졌다고 몸이 달라졌다고 놀이기구도 잘 타는 건 아닌가 봅니다.
2023년에는 남편과 번갈아가며 놀이기구를 탔고, 2024년엔 놀이기구를 남편과 제가 함께 타고 아들이 그것을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아들이 컸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두 번째 방문에서 레고랜드의 티켓값이 아까웠습니다. 아하하. 이제 컸다며 아주 어린아이들이 타는 놀이기구는 시시하다며 안 타고, 또 조금 무서워 보이면 안 타고, 아들이 참 말 안 듣습니다.
이럴 거면 왜 또 레고랜드에 오자고 계속 말했냐고 화내면서 묻고 싶었지만, 결국 표 값이 아까운 건 제 마음일 뿐. 아들은 그것에 개의치 않으니, 제가 잔소리 좀 연발하곤 저를 열심히 태웠습니다. 그리고 저를 좋아하는 죄로 남편도 같이 타줬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아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