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의 추석, 어느새 네 번째에 접어들었다. 튀르키예는 그동안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지난 3년 전에 비해 약 3배의 가격으로 같은 물건들을 사고 있다. 더 이상은 저렴해서 그 물건을 산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진 이스탄불.
쏟아 오른 집값, 건물의 오래된 연식 등으로 한 해가 바뀌어도 내가 살고 있는 시떼(튀르키예 아파트 단지)에 새로운 한국인 가족이 오지 않았다.
"너무 비싸진 월세값(가격)과 건물 상태(제품), 이 집에 과연 새로운 사람이 올까(유통)?"
그러던 중, 새로운 소비자가 나타났다.
2024년 6월 17일
독일 레고랜드, 그곳엔 두 개의 드라이빙 라이선스 존이 있다. 미취학 아동이 타는 드라이빙 센터와 취학 아동 이상이 타는 드라이빙 센터다.
두 개 모두 탑승 후에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의 자동차 면허증을 주는 공통점이 있지만, 둘은 엄청난차이가 있다. 하나는 어른인 내가 걷는 것보다 느린 자동차를 타고 무료로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다른 하나는 그래도 제법 속도가 나는 차를 타며 탑승 전에 드라이빙 교육이 있으며, 탑승 시간 예약과 동시에 교육을 위한 추가의 돈을 내야 한다는차이점이 있다.
사실, 첫 방문 때 세상 느린 자동차를 타고 얻은 면허증에 더 없는 행복감을 갖고 여행 후에도 자신의 책상에 붙여놓고 자주 그것을 보는 아들을 보곤, 솔직히 아이가 이걸 이렇게 좋아하다니라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리고 부쩍 세계 자동차 브랜드와 역사 등에 관심을 가지는 그를 보곤, 아이가 해당 브랜드의 자동차를 탄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아이를 낳고 세상을 보는 시각은 달라졌다. 내게 가치 없는 소비라고 폄하했던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2024년, 취학아동이 탈 수 있는 드라이빙 센터.
유료로 진행되는 드라이빙 스쿨임에도, 일찍 방문한 우리가 겨우 마지막 드라이빙 타임의 시간을 예약할 수 있을 정도로 레고랜드 내의 현대자동차 드라이빙 라이선스 센터는 인기가 있었다.
아들은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 혼자서 드라이빙 센터로 들어갔다. 부모 없이 아이들 각자는 미리 예약 시 발급받은 티켓을 확인하고 레고랜드 직원들의 지시에 따라 그들은 교육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폭우가 쏟아지는 밖에서 남편과 나는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빈 둥지 증후군'에 걸린 듯 교육장 밖을 서성였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서야 나타난 아이들은 각자 자동차에 앉았고, 제법 넓은 도로시험장에서 교통신호에 따라 직진, 좌회전, 우회전을 이어갔다. 아이들은 서로를 기다리고 다시 신호를 주고받으며 도로를 누볐다.
아이들이 차례차례 움직인다. 아무런 문제 없이, 바로 옆의 미취학 아이들이 타던 운전장소와 그 모습, 태도 모두 아주 다르다. 엄마, 아빠가 없던 그 교육장, 그 시간 동안아이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느새 아이들은실제 도로에서 운전을 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깜빡이 대신 손을 이용하여 신호를 진지하게 주고받곤 차선 변경까지 해냈다. 그리고 아들은 결국 두 번째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현대자동차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2024년 레고랜드 현대자동차 드라이빙 센터, 취학아동 대상
아들은 여행을 다녀온 후, 현대자동차와 BMW, 페라리, 포드 등 유명 자동차 브랜드와 관련된 역사를 함께 살펴보았다. 그리곤 그는 질문이 많아졌다. 그의 질문은 대략 이랬다.
자동차 회사 중 매출 최고는 누구냐?
어떤 자동차 종류가 가장 많이 팔리냐?
왜 그 자동차는 비슷한 성능의 다른 자동차보다 비싼 값으로 파냐?
아들의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하려다 보니 결국 '인간의 심리 그리고 마케팅'이라는 단어까지 나타났다. 아들의 질문의 요지는 대충 이랬다. 이렇게 도로가 개선되고 실제 도심에선 자동차가 그속도로 달릴 필요가없는데, 여전히 이 고성능의 자동차가 계속 팔리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결국, 산업 혁명 이후의 현대사까지 이 대화에 끼어든다.
그리곤 시떼에 부쩍 고급 자동차가 많은 탓에 아들은 왜 사람들은 비싼자동차를 선택하느냐는 질문까지 이어졌다.
"아들, 레고랜드에서 자동차 타고 자격증을 따니 어땠어?"
"응, 엄청 좋았어. 또 타고 싶어!"
"아들, 그게 마케팅이야."
아무리 공장에서 성실히 좋은 물건을 만들고, 엄마인 내가 좋은 글을 쓴다 해도 어느 누구도 그 제품을 사지 않고, 그 글을 좋아하지 않고 읽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긴 이야기가 끝나는가 싶다가 결국, 레고랜드의 마케팅에 의해 결국 두 번이나 간 소비자인 나를 예로 들어, 아들을 위한 작은 마케팅 원론 강의가 시작되었다.
*마케팅, 소비자를 대상으로 고객을 창조하고 유지 · 관리함으로써 고정고객으로 만드는 모든 활동 즉, 고객과 관련된 모든 활동. 위키백과에 있는 말부터 아들과 찬찬히 소리 내어 읽어본다.
내가 한국에 있었더라면 못 느꼈을 우리나라의 이미지, 그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내게 사진을 함께 찍자며 한국어로 말을 거는 나이 어린 여고생, K-POP이란 이름으로 블랙핑크의 노래를 부르고, '한국어다.'라며 속삭이고 있는 그들의 튀르키예어를 알아듣고, 먼저 말을 건네면 마치 나를 연예인처럼 보며 환호하는 튀르키예 젊은이들.
잠재적인 소비자인 그들에게 지금의 한국은, 아들이 레고랜드를 떠올릴 때처럼, 그들이 멋진 것을생각할 때 함께 떠오르는 것은 아닐까.
네 번째 추석, 아이는 이 시떼의 새로운 소비자, 따뜻한 한국 이웃이 건넨 한국 과자에 함박웃음을 짓는다. 아들은 세상을 얻은 듯한 행복한 표정이다.
"이게 그렇게 좋냐?"
"응. 한국이니까. 한국 맛이니까.
이스탄불, 이곳에서 아들은 좋게 말해서는 순박하게, 나쁘게 말해 바보처럼 간절해지는 나도 아는 그 맛, 한국의 맛에 행복해졌다. 한국 밖에서 있어야 제대로 아는 우리의 맛을, 아들은 빙빙 돌려 이렇게 전했다.
"이스탄불 과자 회사는 한국맛을, 소비자가 다르니 이 맛을 제대로 알리 없지. 너무 맛있다. 엄마."
추석, 이국 땅의 아들은 두 번째 라이선스를 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의 것들을 하나씩 다시 그려본다.
2023년 현대자동차 드라이빙 센터 미취학 아동 대상
'칸쵸'와 비슷한 유형의 '비스콜라타'가 있지만 팜유를 쓰지 않아서 그런지 훨씬 딱딱하다.
덧붙임) 이스탄불에서의 네 번째 추석입니다. 저는 한국이 여전히 그립네요. 남은 연휴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