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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 Sep 25. 2024

무섭고도 무서운 최고의 칭찬, 체코 프라하 한식당에서

거듭되는 여행과 해외살이 속의 엄마 밥, 한식이란

 어느새 4년 차, 아이의 학교 보안요원인 아저씨는 내게 신분증을 받지 않고 외부인 목걸이를 건넸다. 이제 내가 누구인지 너무나 잘 아시는 모양이다. 익숙한 듯 튀르키예어 인사를 건네고 아이 학교의 PTA가 열리는 장소에 앉았다. 서로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커피를 나누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처음, 아이로 인해 이 학교에 들어선 외국인 엄마는 내게 지난 3년을 물었다.  그 대답을 하려던 찰나에 교장선생님이 왔고 이런저런 학교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회의를 마치고 중고 교복을 정리한다는 이유로 학교를 둘러보고 엄마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니, 아이들의 웃음 속에도 걸걸한 목소리로 연신 기침을 해대는 친구가 있었다.

 

 "우리 아이만 그런 게 아니구나."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리곤 마음을 다독여 이스탄불의 오르막길을 천천히 내려온다.

 

비가 오던 프라하, 혼자라면 가지 않았을 한식당, 아들과 남편과 다시 가니 제겐 전혀 다른 기억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2023년 6월 30일 오후 2시 37분

 체코에서 시작된 여행은 오스트리아를 넘고, 독일을 거치면서 우리의 차에는 커다란 빈 물병들이 실려있게 되었다. 물값보다 물병 보증금이 비싼 독일의 상황에서, 독일 마트에 도착하자 독일어에 까막눈이던 남편은 호기롭게 1.5L 탄산수(sparkling water) 여러 병을 일반물(still water)인 줄 알고 엄청 샀다.

 분명 마트 직원에게 연거푸 영어로 확인했지만, 아마 그 사람은 그저 외국인 관광객에게 'YES'만 외쳐준 친절한 독일인이었으리라. 독일 여행 기간 동안 최대한 열심히 남편과 내가 마셨지만, 아들이 탄산수를 못 마시는 통에 우리가 빌린 렌터카에 초록색 물병들이 가득했다.


 결국 체코 국경을 앞에 두고 만난 독일 마트에서 물보다 비싼 물병 보증금을 받기 위해, 먹을 수 있는 물을 콸콸 부어 버려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시작되었다. 물을 많이 먹으면 미인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알뜰살뜰한 두 사람은 제 목을 열어 콸콸 마셨다. 결국, 톡 쏘는 유럽의 탄산수 앞에서 백기를 들었지만 말이다.

 

 독일에서 처음 만난, 빈 플라스틱 병을 수거하는 기계 앞에서 휭휭 소리를 내며 안으로 들어가는 병의 모습을 아들은 신기하게 바라본다. 그리곤 병 보증금이 반환된 종이를 들고 다시 마트로 들어가, 아들은 자신이 먹고 싶은 과자를 고르기 시작했다. 아까운 물을 버렸다는 죄책감이 드는 짠순이 엄마 앞에서 아들은 독일산 과자를 고르느라 더없이 행복하다.


그리곤 만족한 표정의 아들이 내게 말했다.


"There are pros and cons!"*

"그래, 네 말이 맞다. 이 녀석아."


 아들의 행복한 표정과 상황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말에 그만 심통을 거두곤, 이것도 추억이니 하며 플라스틱 병을 수거하는 기계와 독일 마트의 모습을 다시 찍어본다. 그리곤 우리는 체코를 향해 국경을 또 한 번 넘었다.




 아이가 이스탄불에서 국제학교를 다닌 지 어느새 4년이 되었다. 코로나 19가 성행하던 이스탄불, 그때는 아이가 학교에 가는 날보다 아파서 못 가는 날이 많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를 학교에 보내면 주말엔 병원에 가는 비슷한 일상으로 살아가고 있다.


 누가 내게 그동안의 해외 생활을 물으면 내가 자주 했던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There are pros and cons!' 내 말을 유심히 듣는 아이 앞에서 이 말을 너무 자주 했던 것일까. 아니면 아이는 정말 내가 하는 이 말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고 벌써 느끼고 있는 것일까.

 라틴어에서 유래된 이 말은 찬성이라는 뜻의 'pro', 반대의 뜻의 'cotra'에서 시작되었다. 아들과 이스탄불에서의 삶이 이어지고, 남편의 휴가에 맞춰 새로운 여행지를 탐험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4년 차에도 나는 여전히 이곳의 삶을 좋아하다가도 싫어지는 타향살이의 두 개의 양립된 감정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이스탄불의 삶의 시작으로 알파벳조차 모르던 아이는 현재는 영어로 편하게 이야기하게 되었지만, 시작은 참으로 고단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 그곳의 입시에 적응해야 할 아이가 한국어를 적절하게 쓰지 못할까 또 다른 걱정하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한국의 입시의 부담에 벗어나 더없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교육을 받지만 무언가 체계 없이 이어지는 교육과정에 대한 염려와 긴 방학으로 엄마표 학습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스탄불살이 이후에 내가 '요리왕 비룡'처럼 음식을 하는 동안, 나의 몸에선 용과 불꽃이 눈에서 마구 튀어나오진 않지만 김치, 김밥, 불고기, 닭튀김 등 집에서 할 수 있는 한식 요리 능력치가 늘어났고, 아들의 각종 알레르기로 인해 외식의 선택지가 많지 않던 우리 집에서, 남편과 아들, 그들의 지독한 한식 사랑에 나의 요리 능력치와 튀르키예어는 마구 성장하였다. 그러나 긴 타지 생활로 나의 한식 요리 능력치가 늘어난 것과 달리, 나는 여전히 밥보다 남의 밥이 더 좋다.


 종갓집 제사상 앞에서 이제 밥 하기 지겹다며 나는 은퇴도 없냐고 하시던 친정엄마의 말. 이건 타국에 사는 엄마인 나뿐만이 아닌 모든 엄마의 본질일까.


프라하 MATZIP의 족발, 글쓰면서도 먹고 싶다. 진심으로 타향살이가 시작되고 유럽여행 중에 먹은 외국에 있는 한식당 중 최고!

 

 '삼시 세끼' 프로그램에 나온 출연자들처럼, 밭에서 갓 딴 채소를 손질하진 않지만 어렵게 한식 재료를 찾아내고 요리하던 나는 이스탄불의 생활을 청산하겠다며 한식파 집밥돌이인 가족에게 말한다. 

 

 "나 프라하에선 밥 하기 싫어."

 "그래, 여기 그래도 독일보다 물가가 저렴하고 한식도 다양해. 끼니마다 외식하자!"

 "와!"

 

 남편도 다시 호기롭게 말한다. 신난 나와 달리 눈치 없는 아들은 엄마 밥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언가에 또다시 홀린 듯, 체코 마트에서 오랜만에 보는 돼지고기와 햄을 장바구니에 주섬주섬 집어넣는 아줌마가 된 나는 이스탄불에서 먹자며 에어#앤비 집의 냉동실 가득가득 장본 한국 음식과 돼지고기를 채워 넣었다.


 타국 살이가 계속될수록 내가 거듭 깨닫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일도 다 좋거나 모두 나쁘지는 않다는 삶의 가르침이었다. 

 아이가 힘들어하던 순간, 남편이 나를 도울 수 없다고 느낀 코로나 19가 이스탄불을 덮치던 순간. 그 순간이 있었기에 나는 이스탄불에서 알레르기를 가진 아이와 사는 법을 배웠고, 아이의 학교를 가고, 튀르키예인들의 언어를 빠르게 알아가며, 다른 이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었다. 한참을 지나고서야 이 모든 것이 어쩌면 내게 준 큰 축복임을 깨닫는다. 아들과 남편은 내 음식보다 조금 덜 맛있다는 체코 프라하의 한식당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


"이거 진짜 한국 맛인데, 진짜 맛있다."

"그래도 나는 엄마 밥이 제일 맛있는데."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이 무섭고도 무서운, 아들의 최고의 칭찬.  


 체코 프라하 한식당에 앉아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다시 먹을 수 없다며 테이블 위에 빈 그릇들이 수북이 쌓은 채, 세상살이 이미 모두 안 듯한 아들은 독일산 과자를 신나게 먹고 있었다.





 #Pros and cons!*는 구로 비즈니스 영어, 흔히 대립되는 주제가 논의되는 회의에서 자주 사용됩니다. 모든 일에 장점과 단점이 있다는 것을 설명할 때 쓰이는 표현으로, 토익시험에도 자주 출제되는 표현입니다. 영영사전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 the advantages and disadvantages of something, especially something that you are considering doing: 캠브리지 사전 참조



#프라하 맛집 Praha MATZIP Korean restaurant

https://maps.app.goo.gl/vZ7Ryg1gBANPPNfv7

 어쩌면, 우리 가족이 프라하에 다시 간다면 그 이유는 한식일지도 모릅니다. 모두 맛있는 식사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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