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네 Oct 02. 2024

늑대를 만나기 싫어서, 프라하성 스타벅스

여행 속에서 발견하는 나, 한국인이 사는 법

 "늑대가 나타났다"


 동네 사람들은 양치기 소년의 고함에 놀라 정신없이 무기를 들고 양치기 소년을 도와주러 나타났다. 하지만 그것은 소년의 거짓말이었다. 소년의 거짓말에 일부 사람들은 화를 내며 떠났지만, 몇몇 사람들을 양치기 소년을 불러, 양들을 혼자 잘 돌보고 있는 그의 어려움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가 이런 장난을 치면 정말 위험할 때, 너 자신을 지킬 수 없다고 이야기하며 그를 혼내고 다시 안아주었다.


 양치기 소년은 혼이 나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여러 번 거짓말을 했다. 어른들은 그에게 화가 났지만 다시 그를 지도하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마을 사람들 중 일부는 그 소년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


 며칠 뒤, 마을 농장에 정말로 늑대가 나타났다. 혼자 있던 양치기 소년은 두려움에 떨며, 큰소리로 사람들을 불렀다.

 다행히 일부 어른들은 그의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약속처럼 다시 나타나 늑대를 물리쳤다. 하지만 그동안의 거짓말로 인해,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의 고함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기에 결국 농장의 양 몇 마리는 늑대에게 물려 다쳤고 죽음을 맞이했다. 양들의 죽음 앞에서 아이는 자신의 지난 잘못을 반성했고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자신의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타나 자신을 지켜주려고 했던 마을 어른들에게 감사하며 안정을 찾아갔다.


 정말, 본래 이야기에서처럼 양치기 소년의 모든 양은 거짓말의 대가로 늑대에게 모두 잡아먹혀야 했을까.


프라하성 기념품샵에도 한국어가 있었습니다.


2023년 7월 1일

 프라하성으로 가는 아침. 더 좋은 제품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우습게도 더 오래되고 더 낡은 트램을 타기 위해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정류소에 서 본다. 블타바강을 지나 프라하성으로 가는 T3는 이 도시만큼 나이를 먹었지만 단정하고 깔끔했다. 프라하의 대중교통 역사가 안내되어 있는 트램의 안의 표지읽으며, 덜컹이던 트램은 아들과 남편, 나를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하늘이 너무 파랗다."


 프라하의 아름다움에 벌써 취한 것일까. 내 생애 두 번째, 아들과 다시 보는 이 도시는 예전처럼 아름다웠다. 아들의 손을 잡고 카를교를 걷고 거리의 음악가의 연주를 들으며 강가를 바라보는 일. 마음에 드는 한식당에서 신나게 밥을 먹고 갑자기 부슬부슬 쏟아지는 비에도 우리 셋은 참으로 행복했다. 날씨 예보를 매일 보는, 걱정이 많고 많은 엄마 아빠는 가방에 비닐 우비와 우산이 필수였기에, 거리를 촉촉이 젖는 비 속에서도 아들은 우산을 빙글빙글 돌리며 프라하의 밤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엄마, 비 다 맞는다. 그만 돌려."

 "엄마는 우비 입었잖아."


 갑자기 비가 와도 우리는 이렇게도 너무나 낭만적이고 좋았지만, 긴 여행동안 책 한 자 보지 않고 계속 놀기만 하는 아들이 아무래도 신경 쓰인다. 내가 이 생각이 불현듯 드는 것을 보니, 체코 프라하가 아이와 여행할 만하긴 한가 보다. 아하하.


 

 한국 사람들이 가득한 프라하성 스타벅스. 태권도를 취미로 배우고 있다는 체코 청년은 내 이름을 듣고 한국어로 능숙히 적곤 내게 물었다.


 "한국사람들, 왜 여기에 많이 와요?"

 "여기가 한국인들에게 유명해요. 경치도 멋있고, 화장실도 무료로 갈 수 있고, 커피값도 맛도 안전하고."

 "프라하에 여기 말고도 좋은 곳 많은데, 많이 오니 전 신기해요."

 "저도 신기합니다."


 한국인이 너무 많아서 신기한 프라하성의 스타벅스. 슬금슬금 조심스레 가방에 있던 수학 문제집을 꺼내본다. 너무 쉬워서 아들 나이에 이 정도를 풀면 안 된다는 소리를 들었던 엄마표 문제집이다. 남들은 모두 '심화'가 적힌 걸 푼다던데, 이것도 안 하면 되겠냐며 머핀을 먹으려는 아들에게 꺼내본다.

 갑자기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 나 아파. 공부 못하겠어."

 "그래? 그럼 아픈데 이 머핀도 못 먹겠네?"

 "아니, 머핀은 먹을 수 있어."

 "그래? 이 머핀 먹을 수 있는 정도면 이거 한 장도 풀 수 있어."


우리의 한국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을 두고, 아들과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엄마, 여기서 공부하는 사람, 우리 밖에 없어. 다들 휴대폰 만져. 나도 쉴래."

 "아들, 사람들은 의외로 너한테 관심 없다. 너 할 일부터 하고 말해."


 꼭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우리말을 모두 알아듣는 사람들 속에서 느껴지는 이국 땅에서의 부끄러움. 평소 이스탄불의 카페에 앉아 긴 방학을 핑계 삼아 같이 문제집을 풀었는데, 내 말을 알아듣는 한국인이 많아서 그런 걸까 아들과의 언쟁이 오늘은 더 부끄럽다. 싫다는 아들의 소리에도 더하기 빼기를 차분히 시켜본다.


 한참을 공부하던 아들이 또 질문을 한다.

 "엄마,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너, 양치기 소년 이야기 알지?"

 "응. 엄마. 정직하라는 이야기? 그건 왜?"

 



 한국 사람들이 가득한 프라하 스타벅스에서 아들과 나는 한국산 수학문제집을 푼다. 다들 늑대를 피해 이곳에 왔나 보다. 여행 블로그, 웹사이트, 무수한 후기들을 보고 이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사실, 프라하에서 이 스타벅스보다 좋은 커피숍은 많았다. 하지만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걸까. 프라하에서 이처럼 한국인이 많은 곳은 내게도 처음이었다.

 마치 내가 이스탄불에 살면서 평일, 베벡(Bebek) 스타벅스에 갈 때마다 여행으로 찾아온 한국인을 매번 만나는 것이 이제 신기한 일이 아닌 것처럼 한국인은 이곳, 스타벅스를 많이 찾는다.


 "아들아. 그 이야긴 정직도 있지만, 살다 보면 늑대도 만나니까 늑대 조심하라는 이야기야."

 "늑대 만나기 전에 공부해."


 공부를 하라는 소리를 하곤 다시 돌이켜 아들의 문제집을 바라본다.

 늑대, 지난 내 삶에서 늑대가 있었나. 운 좋게도 그동안 나는 늑대를 잘 쫓아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전의 나는 늑대가 나타나기도 전에 먼저 불안해하며 울타리를 무수히 다듬었다. 


 아직 혼자였던 나는 이곳에서 내 옆의 그들처럼 무수한 인증 사진을 찍고 와이파이를 켜서 다음엔 어떤 장소를 가야 갔다고 소문날지 고민하던 그런 사람이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쓰고 싶었다. 늑대가 오기 전에 가꾸어야 한다. 하나의 빈틈도 없이, 훌륭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여행을 위해 일을 몰아 해내고 어렵게 시간을 만들고 눈치를 보며 휴가를 내고, 평소에 쓸 돈도 아껴 여행을 왔으니 어떤 실수 없이, 그 하나의 오차도, 일말의 손해없게 하위해 애쓰며 살았다.


 순간 나는, 그 어떤 늑대도 만나지 않을 가장 안전한 선택을 강요하며 불안하게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내 옆에서 아직 오지 않은 늑대를 궁금해하며 수학문제를 푼다. 그는 나와 달리 늑대가 별로 무섭지 않나 보다. 조바심 가득한 나와 달리 편안해 보인다. 어쩌면 아직 그 어떤 것도 무섭지 않은 것이 다행이지 않을까. 한참을 아들이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늑대가 오기 전까지 내가 아들을 잘 지킬 수 있을까. 아들의 양들은 어떨까. 쓸데없는 걱정을 해본다. 역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고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 아들을 바라본다. 그의 글자가 참 예쁘다.


 다행히, 프라하성 스타벅스의 머핀은 늑대가 오기 전에 아들에게 먹히고 말았다. 아들은 그 머핀 덕분에 동글동글하게 행복해졌다.


https://maps.app.goo.gl/9niWhDSk8nLy4XV46

 덧붙임 )

 한국어를 듣고 바로 적을 수 있는 체코 태권청년이 그곳에 여전히 일하고 있을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제 이름을 듣고, '미네'라는 말에 'ㅔ'인지 'ㅐ'인지를 되묻는 통에 깜짝 놀랐습니다. 발전한 한국 문화의 위상 덕분에 두 번째 찾은 프라하에서 새로운 추억을 얻어갑니다. :)




이전 16화 무섭고도 무서운 최고의 칭찬, 체코 프라하 한식당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