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네 Oct 09. 2024

아마 그 순간부터, 프라하 Budget Books

내가 책을, 그리고 네가, 당신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

 나의 아버지는 새참이라 건네던 바나나를 던지며, 중동의 모래바람 속에서 건물을 지었다. 영어는 물론 알파벳도 모르던 그에게 중동의 모래들은 그에게 달러를 쥐어주었다.

 시간이 지나 아내와 자식을 만나러 온 그는 자신을 아저씨라 부르는 딸을 만나곤 고향에 돌아왔다.  시절, 젊었던 아버지는 아마 이상 아저씨가 되기 싫었나 보다.


 그는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 하나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던 모래 바닥에도 집을 지었던 그는 역시나 한국에 와서도 낮과 밤을 뒤집어 살며 일을 했다. 그런 그에게 아들이 생겼다. 늘 알뜰하기만 했던 그는 제 인생 처음으로, 차를 샀다.

 '비둘기색의 엘란트라'


 그는 생애 처음으로 멋진 곳에 온 가족을 데려가 외식을 하고 싶었고 어린 나를 차에 태웠다. 그리고 파랗고 깊었던 바다가 있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그곳으로 달렸다. 그러나 우습게도 그곳은 그의 회사 근처였다.


 어쩌면 지금의 나보다 젊었던 아버지가 가장 잘 알 곳은 그곳뿐이었을 것이다. 푸른 바다를 모두 가릴 만큼 계속되는 공장 벽들과 쏟아 오르는 크레인 너머  위로 햇볕을 받아 일렁이는 바다가 보였다. 그리고 공장 벽을 가득 채운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 나는 띄엄띄엄 글자를 읽었다.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다.


새 책을 사고, 그 책을 읽는 것이 제일 좋다는 나의 아들


2023년 7월 1일

 프라하성을 구경하며 체코의 역사적 사건을 살펴보았다. 프란츠 카프카가 '변신'을 썼다는 집은 어느새 관광객으로 가득 차 보였다. 분명, 십 년 전의 내가 이곳을 걸었을 텐데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 신기했다. 구글 사진 애플리케이션에 떠 있는 나는, 성 비투스 대성당 앞에서 동료 선생님과 점프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남편과 아들 손을 잡고 성당 앞에 서 있으니, 이곳을 들어가긴 했는지 아니면 앞에서 점프샷만 찍고 갔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시절, 나는 한꺼번에 성당과 교회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이렇게 뚜렷한 기억 하나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익숙함보다 생경함이 내게 먼저 온 성 비투스 대성당. 하지만 똑같은 풍경도 제 나름의 다름이 있듯이, 평소 유럽의 건축이나 건물에 관심이 없는 남편은 여행 중 처음으로 이 건물이 웅장하고 아름답다며 사진을 찍으려 했다. 성당 안의 알폰스 무하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가리키는 내게, 아들과 남편은 동그란 눈으로 다른 것과는 그 스타일이 퍽 다르다며 성당 안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엄마, 왜 사람들은 성당 안에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아들에게 문자가 아닌 그림이 가진 의미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모든 사람들이 글자를 읽고 쓰는 것이 당연한 시기이며, 그렇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분노하는 시대이지만, 이 성당이 지어지던 시기인 중세와 근대는 과연 배움이라는 것이 공평했을지.

아들의 질문에 또 다른 질문으로 응수했다.


 아들은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왜 유럽 사람들은 성당이나 교회에 막대한 돈을 들여지었을까. 지금은 불가능할 정도의 아름다운 예술품과 건축은 왜 모두 종교 시설에 있는 것일까. 아들과 중세시기에 대한 역사적 흐름을 돌아본다. 아들은 왕보다 교황이, 개인의 능력보다 계층이 중요했던 중세의 시기로 돌아간다. 이번 여행 중에 만났던 간판에 글자가 없던 오스트리아의 '게트라이더 거리'까지 다녀왔다. 근대의 자본의 생성과 그 지역에 예술이 피어나는 과정까지 그리고 현대의 자본주의로. 아들과 나는 다시 체코 프라하성이 가진 천 년의 시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천년 넘게 체코 권력의 핵심 공간인 이곳에서 아들과 나는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 등 유럽의 다양한 건축양식을 찾아본다.

 우리가 말한 양식이 다 올바르진 않겠지만 건물 속 유행을 찾아 아들과 남편, 나는 이리저리 둘러본다.

 

 지난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해 온 것일까. 지금의 현대는 과연 어떠한 철학 속에 세워진 집일까. 계속된 아들과의 대화에 남편은 집에 돌아가자고 말했다. 길을 안내하고 이끌던 그가 피곤할 때다. 아하하.


 아직 기운이 남았던 우리 둘은 숙소 근처의 서점을 검색했다.


 "신랑, 아들이랑 서점 좀 다녀올게요."


 남편은 우리를 서점에 놓아두고 이스탄불에 가져갈 돼지고기를 사러 떠났다. 역시나 살림꾼이다. 아들과 나는 이것저것을 살피며 마음에 드는 책이 없는지 살폈다. 아들은 이 순간이 너무 좋나 보다. 우리는 들어서자마자 서점의 문 닫는 시간부터 확인했다.


어디서든 책만 보이면 엉덩이를 멈추는 아들


 그 시절, 아버지는 젊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우리 가족은 그가 제 이름으로 처음 산 차에 올라타, 그가 자랑스럽게 다니던 회사 앞 문화센터 안의 경양식 집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젊었던 그는 한껏 부푼 가슴을 안고 우리에게 마음껏 먹으라고 말했다. 그 시절 먹보였던 나는, 신나게 칼질을 하며 돈가스를 썰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부를 잘하던 언니가 서점을 말하니, 짠돌이였던 아버지는 가격도 보지 않고 책을 사주셨다. 언니는 그렇게 끊임없이 읽었고, 나 또한 책을 가득히 쌓아둔 그녀 옆에서 보는 둥 마는 둥, 하릴없이 방바닥을 굴렀다.

 시간이 지나 여전히 책이 가득한 집에 사는 언니에게 책이 좋냐고 물었다.


 "아니, 그냥. 그런데 내가 책을 읽으면 엄마, 아빠가 참 좋아하셨어. 그러다가 나도 좋아졌어."


 그렇다면 나는 그리고 아들은 언제부터 책을 보는, 서점에 가는 순간을 좋아하게 된 것일까. 아들의 알레르기가 심하던 그가 어리던 그 시절.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육아지원센터에 있던 도서관 뿐이었다. 처음엔 장난감을 빌렸고 그리고 책을 빌리기 시작했고, 집에서 아들과의 시간이 지루할 즈음이면 우리가 갈 곳은 그곳뿐이었다.


 키즈카페를 가도, 이른 평일 오전 시간에 있는 어린이는 모두 누워있거나 기어 다니는 작은 아기들 뿐이었다. 나는 결국 어린 아들을 차에 태워 집 근처의 어린이 도서관에 갔다.

 

아들의 최애인 리차드스켈리의 책은 이제 집에 거의 다 있는 듯 하다. 체코에서 또 찾아낸 그의 책들. 가격이 저렴했다.




 이스탄불의 이른 아침, 아들을 평소와 같이 깨웠다. 어제 체육 시간에서 다쳤는지, 다리를 접질렸다며 아프다고 했던 발목을 잡고 끙끙 소리를 낸다. 엄마가 된 나는 마음속에 불안이 가득하다. 예전의 나의 엄마라면 어땠을까. 나는 아들의 다리 상태를 확인하고 아침을 먹인 후,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한테 업힐래?"


 다행히 그는 그 정도는 아니란다. 아들은 나에게 절뚝거리는 다리를 보이며 내 옆을 천천히 걸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또 책을 들었다. 손에 책 들고 외출하기.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가 늘 들고 있는 물건 하나, 책.

 그림을 보는 건지, 글을 읽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가 책을 좋아한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그는 진료를 마치고 손에 쥐었던 책을 들고 자신의 학교로 향했다. 그는 가끔 내게 책을 들곤 더 똑똑해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될 때,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엄마인 나도 계획대로 안될 때가 많다고 다소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어쩌면 나도 어린 나의 아들도, 언니도 그리고 젊었던 아버지도 그저 더 잘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보다 젊었던 아버지의 차에 올라, 아주 천천히 공장의 벽에 적힌 글을 읽어내던 어린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버지와 어머니. 너무나 젊었던 그들이 떠오른다.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순간은,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https://maps.app.goo.gl/Vy7XnFizTrtd1a4s9


덧붙임)

 이스탄불에 살면서 영어책, 한국어책을 구하는 게 사실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한 두권의 책은 꼭 사오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영어책 가격이 다른 유럽 서점에 비해 저렴했고, 그 종류가 다양했습니다.

 캐리어 용량만 가능하다면 더 사고 싶었지만 놓고 온 책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전시된 책에 흠집이 있다고 말하니 바로 할인해 주시던 친절한 서점입니다. 서점에서 더 있고 싶었지만, 다른 유럽의 서점과 비슷하게 오후 7시면 문을 닫습니다. 방문하신다면 시간을 꼭 참고하세요.:)

이전 17화 늑대를 만나기 싫어서, 프라하성 스타벅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