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남편이 주재원 생활을 시작한 지, 만으로 일 년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 가족은 모두 코로나에 걸렸고, 그리고 남편의 격리가 끝나자마자 기다리던 이삿짐이 3개월 만에 왔다. 정신없이 이삿짐을 정리하고 그리고 시작된 겨울, 안탈리아 여행, 아이의 국제학교 시작, 등교 5일 만에 코로나 확진 그리고 나도 감염. 주재원 생활의 시작은 그렇게 고단했다. 코로나 시국, 우리는 이삿짐도 없는 집에서 그렇게 세차게 코로나를 맞이했다.
온 가족이 완치자가 되자 우리는 코로나 완치자 이름표를 달고, 남편이 쉴 수 있으면 무조건 여행을 시작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영국 런던, 그리고 튀르키예의 이즈미르, 보드룸까지 우리는 달렸다. 그가 회사 일에 문제가 없다면 꼭 나가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서울 사람 모두가 경복궁에 가지 않은 것처럼, 나 또한 이스탄불에 살건만 일상을 쫓겨, 오히려 이스탄불에서 줄 서는 관광지는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다.
그리곤 다시 아이의 알레르기 반응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다시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병원을 오가고, 학교에 가고 다시 피부가 이상해지고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시 적응하고, 건강해지도록 아이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그리고 이제 다시 긴 두 달 반 여름방학의 시작. 그렇게 남편의 주재원 생활 일 년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재원 아내로 산 지, 9개월이 지났다. 그가 떠나고 뒷정리를 하고 3개월 뒤에 아이를 데리고 떠났으니 난 고작 9개월을 이스탄불에서 살아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바쁘게 산 탓인지 한참을 살아낸 것 같다. 시간은 정말 빠르다.
그 빠른 시간 속에서 내가 이렇게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들이 내 곁에 하루 종일 있을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루종일 아이와 놀고 공부하고, 밥을 챙기고,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그러면 어느새 지쳐 잠이 드는 엄마가 어찌 글을 쓰겠는가 아들을 재우다가 결국 나도 잠에 든다. 그렇게 우리의 이스탄불의 일년은 지났고 드디어 한국에 가게 되었다.
회사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신랑의 회사는 주재원이 회사에서 일 년마다 한국에 올 수 있도록 가족 항공비를 지원해주고, 위와 대장 내시경을 포함한 주재원 본인과 배우자의 신체검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그리고 단체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입원 시 필요한 수술비 등 병원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이번에 한국 출발 전부터 건강검진 병원을 예약해 한국 도착 2일 차에 신체검사를 실시하였다. 건강검진을 위해 이스탄불에서부터 출발 전 PCR, 대한민국 정부의 규정에 따라 입국 3일 내에 PCR을 실시하였다. 난 이번 한국행에서 병원복을 벗자마자 3일 차 PCR을 위해 보건소를 찾아야 했다.
그냥 해 본 건강검진이었다. 절차가 귀찮았지만 작년에 고생을 많이 했고, 내가 아주 건강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대장 내시경 중 용종이 이렇게 크기도 크고 개수가 많아 이원까지 할 줄은 몰랐다. 천식 때문에 수면을 하지 않고 용종 제거 수술을 받았다. 수술 중 나는, 대장을 훤히 봤다. 일반 내시경과 달리 용종 제거 수술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용종의 크기가 커서 결국 이원을 하고 입원해서 용종을 제거하였다. 비행 일정을 고려해서 건강검진센터 선생님들은 가장 빠른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주셨다. 고마웠다.
퇴원하자마자 다시 치과부터, 그리고 건강검진 결과에 따라 마지막 날까지 병원 투어가 이어졌다. 그러고 나니 어느새 15일이 지나고 다시 튀르키예로 돌아간다. 그렇다. 한국에 와서 건강검진 결과 때문에 피만 뽑다가 그렇게 이스탄불로 돌아간다.
튀르키예에 오기 전, 남편은 두 번의 회식을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인원이 나눠진 두 번의 회식을 치루었다.한 번은 젊은 나이대의 사람들과의 회식이었고, 또 한 번은 이미 주재원을 경험한 선배들과의 회식이었다. 첫 번째의 회식이 축하와 응원이었다면 두 번째의 회식은 해본 사람들의 고생담과 후회의 이야기였다고 한다. 그 고생담과 후회를 듣고 온 신랑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다시 주재원 생활의 주옥같은 잔소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한국에 갔을 때, 다른 일 한다고 건강검진을 미루지 마라. 나중에 고생한다. 건강보다 소중한 건 없다.
2. 아이의 국제학교에서의 영어를 고민하지 마라. 속도의 차이일 뿐, 결국 아이는 적응한다.
3. 진짜 문제는 한국어 교육이다. 안 쓰면 금방 잊어버린다. 책을 많이 읽어줘라.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간다.
4. 갈 수 있다면 최대한 여행을 가라. 아낀다고 궁상 떨어도 천만 원, 이천만 원이다. 한국에 돌아오면 아이는 이미 자랐고 그 때는 시간이 없어 가고 싶어도 못 간다.
5. 집이 있다면 전세를 주지, 월세를 주지 마라. 외국에 있기 때문에 집 관리가 되지 않는다.
6. 거기서 한국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나지 마라. 말이란 발 없는 말이다. 네 말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진다.
7. 주재원 지역에 일하는 사람이 한국 사람처럼 일하지 않는다고 분노하지 마라. 그들은 너를 떠날 사람으로 본다. 화내면 너만 손해다.
좋은 잔소리에 따라 우린 건강검진을 했고, 난 문제가 있었고, 15일을 꼬박 그에 따라 병원을 오갔다. 어쩌면 이 잔소리들은 굳이 주재원이 아니더라도 마음에 되새길 이야기들이다. 건강, 아이의 공부, 여행, 사람과의 관계. 모든 것은 어느 곳에서나 똑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간에 쫓겨 이렇게 중요한 것들을 그냥 놓치기도 한다. 착실하게 조언을 따름으로 인해 때론 지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일찍 발견했다는 안도감과 한국 병원의 효율성과 속도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차를 타고 이번엔 남편도 같이 셋이서 이스탄불로 돌아간다. 다시 비행 10시간을 넘기고 이스탄불 공항의 장기주차장에 놓인 우리 차를 향해, 이스탄불 에틸레르로 지금 우린 다시 출발한다. 그때처럼 짐을 100kg를 싣고, 체크인을 하고 짐을 부치고 비행기를 타고 다시 이스탄불에서 살아가는 그 여행을 시작한다.
만약 당신이 일 년에 한 번, 5일을 한국에 가는 휴가를 얻는다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튀르키예 공휴일을 보태 애를 써서 늘린 긴 한국행 이건만 15일은 너무나도 짧았다. 일 년에 한 번 한국에 온다면 당신은 무얼 해야 잘 보낸 것일까, 부모님을 뵙고, 친구를 잠깐 보기도 빠듯했던 시간, 일 년의 한 번, 주재원이 아닌 모두에게 주어질 휴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다시 한 번, 이 글을 읽는 모든 이가 건강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