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와 함께 걷는 길

길다, 짧다, 멀다, 가깝다, 비싸다 반의어 알기

by 미네

나란 사람은 겉보기에는 참 재빠르게 보이지만, 사실은 참 느리다. 뭐 이렇게 말하면 아마 주변 사람들은 '너 정말 그래.'라고 대답할까 봐 무섭지만, 사실 난 달팽이다. 그래 그냥 곰이다. 재빠르지도 못하고 참으로 느리다.


처음 이스탄불에 도착했던 작년 9월, 그때는 이곳, 튀르키예에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였다. 하루 코로나 발병 인원수가 세계 여러 국가 중 최상위권을 찍고 있었고 한국보다 많은 인원 수가 사망자로 나오던 시기였다. 마스크를 쓰고 겁을 내며 도착했지만 동네 사람들의 모습은 한국과 많이 달랐다.


멋 모르던 나는 이곳에 오자마자 덜덜 떨었다. 누가 집에 올까 봐 사실 무서웠다. 장을 보러 나가면서도 떨었다. 튀르크체를 모르니 번역기의 도움이 아니면 인터넷 쇼핑도 힘들고, 번역도 늘 오류인지 이상한 물건만 검색되어 나왔다. 그렇다. 아, 나가서 사야 했다.

그러나, 난 무서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코로나가 걸릴까 봐 아니 이곳이 무서웠다. 영어로 물어도 이상하게 쳐다보기만 하던 사람들. 그러나 나보다 먼저 튀르키예에 왔던 다른 주재원 아내들은 그동안의 셧다운을 보상받고 싶은 듯, 마치 코로나가 끝난 것처럼 모이고 이야기하며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주셨다. 그때의 나에게 모든 것은 그저 어렵고 힘든 자리였다.


그때의 나는, 이삿짐이 없어 텅텅 빈 우리 집처럼, 물건이 없어 가난한 것이 아닌, 마음이 참으로 가난했다. 누군가가 무서웠던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어렵고 힘들었다. 반갑기보다 오히려 힘들었다. 나의 마음은 가난했고 튀르키예에서의 코로나는 더 없이 심각했다. 어느새 일 년이 지나고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게 사람이 없는 이스탄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때 모든 것이 참 조용했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나는 암울했다.




학교를 가고, 회사를 가고, 수영을 하고, 마트를 가는 일.

먼저 이스탄불 살이를 시작했던 대부분의 주재원들은 지금, 2022년에 오는 새로운 주재원들을 부러워한다. 지난 시간, 셧 다운이 되어 멈추어진 이스탄불에서 살았던 그들에게, 할 수 있었던 것보다 할 수 없던 것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수능일을 앞둔 수험생처럼, 코로나 시기의 시작인 2019년에 부임한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이스탄불의 남은 임기를 바쁘게 살아간다.


며칠 전 옆 동에 살던 시오리네가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녀도 마지막까지 이곳에서의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찾으려고 애썼다. 영어로 말도 잘했고 그래서 쉽게 소통했다. 아이도 밝고 예뻤다. 여기선 일본 사람도 한국 사람도 같은 동양인이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쉽게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다.

이렇게 이스탄불에 이방인으로 사는 같은 신세 탓에, 내가 조금 알면 여기가 좋다. 이 가게의 여기가 물건이 비싸고, 여긴 싸고, 이건 나쁘고, 어찌 보면 누구에겐 정말 시시한 정보겠지만, 사실 사는 데 이런 정보보다 중요한 건 없다. 이 동네에 들어와서 처음 물건을 살 때, 시세도 모르는 나에게 여기 미용실은 이렇다 저렇다며 저기는 동양인들 머리를 이상하게 자른다고 이야기해준 것도 인근에 사는 일본인 메구미였다.




일 년 전, 집 앞에 커피집, 슈퍼, 작은 꽃집, 철물점, 미용실, 세탁소, 은행, 빵집.

생활에 필요한 것은 거의 집 근처에 있었다. 당당히 구# 번역 앱을 켰다.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소통했다. 그러나 그렇다. 못 알아듣겠다. 그는 답답한 듯 번역 앱을 쳐다보았다. 대충 계산했다.

맞다. 그는 분명 말했지만 나는 못 알아들었다. 그는 친절히 다시 말했다. 터키어로 말이다. 나는 그냥 계산했다. 모르면서 어쩔 수 없었다. 번역 앱은 말이 길어지면 무용지물이었다.


사실, 모든 언어가 그러하듯 새로운 언어의 시작은 말하기가 아닌, 듣기다. 친절한 튀르크인을 만났다면 나의 번역기의 마이크 기능을 사용하여 다시 말해주지만 대부분은 내가 번역기를 들기 전까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지역 특성상, 외국인이 많은 동네지만 가게 주인(sahibi: 사히비)이 모두 친절하진 않다. 아니 여기에선 외국인이 흔해서 그런지, 그렇게 특별한 시선으로 너를 배려해주겠다는 생각은 없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지금은 뭔가 싶어서 다시 가서 물어보지만 작년의 나는 그냥 덮어놓고 삶을 살았다. 힘들었다.


집 앞 커피 가게 아저씨처럼 나의 터키어를 끝까지 들어주시는 좋은 분도 계시지만, 사실 처음은 어색하고 무서웠다. 특히 오래된 우리 집에 하수구가 막히거나 전등이 나가거나, 전기가 끊기는 등의 위기 상황이 오면 번역 앱에서 나온 말을 전화기 너머로 열심히 말했지만 돌아온 말은 음, 생략한다. 왜냐면 난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정도 단어는 알고 있으면 이스탄불의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형용사는 많이 알아두면 편하다.

1. 길다 (uzun;우준) - 짧다(kısa; 크사)

2. 멀다 (uzak; 우자크) - 가깝다(yakın; 야큰)

3. 비싸다 (pahalı; 파할르), 싸다고 굳이 이야기할 일은 없으니 아하하하.

4. 고장 난 (bozuk ; 보죽)

5. 같은 (aynı; 아이느) - 다른 (baska;바스카, different가 아닌 other의 의미)

6. 느리게(yavaş ; 야바쉬) - 빠르게(hızlı ; 흐즈르)


자, 이제 실전이다. 예를 들어 바지를 사고 싶은데 다른 물건도 보고 싶다.

Başka şey?(다른 물건 있어요? ; 바쉬카 쉐이?)

물론, 물건 사이즈를 보고 튀르크체 숫자를 아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가끔 영어로 숫자를 이야기하는데 사이즈의 숫자가 10 이상인 경우, 황당한 사이즈를 들고 오는 경우가 있으니까.


가게 주인과 가격 흥정을 한다.

Ne kadar? (얼마예요? ; 네 까다르)

Bu pahalı. (이거 비싸다.; 부 파하르)

주인이 할인(indirim)을 해준다고 한다. 오예! 계산을 하고 나가서 인근의 옷수선집에 가서 수선을 한다.


Bu uzun (바지가 길다.; 부 우준)

옷수선을 맡긴다. 주인이 언제 찾으러 오라고 말한다. 그렇다. 공부는 끝이 없다. 아하하하.

생존을 위해서 배울 말은 또 생겨난다. 아하하하.


때론 번역기로 검색한 물건에 이상한 것만 나와서 사진을 보여주며 직접 매장에 가서 찾는다고 하자. 그때, 같거나 비슷한 물건을 찾을 때, 물건을 사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형용사와 숫자(수사)는 등장한다.




구#번역은 상당한 실력으로, 내 삶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절대 번역 앱은 맹신하면 안 된다. 무시무시한 번역 실수를 가끔 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 쓰던 이름 그대로 적어 화장품 가게(한국의 '올리브#'과 같은 화장품 가게)에서 구# 번역 앱을 쓰는 순간, 한국어-터키어 번역은 나를 쳐다보며 '너 돌아이 아니냐?' 이런 표정으로 쳐다보는 경우가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구# 영어 번역을 여러 번 다시 동원하여 수정한 뒤에야 나는 '돌아이'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달팽이처럼 천천히 걸어간다. 이제 겨우 일 년을 살아냈으니 너무 바쁘게 달릴 필요가 없다. 놓칠 것도 잊은 것도 아직 없다. 이제 일 년을 살아냈고, 지나고 보니 이곳에 머무는 동안 온 가족이, 한국에 있는 보고 싶은 부모님, 가족, 친구들이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기 때문이다. 해야 할 것, 아직 가지 못한 곳이 많지만 내 남은 시간, 이 모두를 아주 느리지만 천천히 나아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덧붙임)

드디어 학교가 개학을 하고, 다시 국제 학교 생활의 시작! 시작하자마자 아들의 알레르기 증상은 자연히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꼭 학교가 많이 바뀌어지길 바라며 많은 것을 건의하고 있지만 참, 답답하네요. 한국 학교에서 저는 너무 열심히 일했었나 봅니다. 그들을 보며 자꾸만 화가 나는 것을 보면요. 아하하하하. 그들 덕분에 메일을 하도 많이 쓰고 자주 만나서 영어 실력이 늘고 있습니다. 아하하하. 한숨.


한국영화 '미나리'가 상영되는 동네 축제 알림판, 자주 가는 미용실( 튀르크체 형용사 늘 등장)

한국영화가 상영되고 혜민스님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있는 튀르키예의 오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스탄불 이케# 배달 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