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시절부터 자동차의 위험성에 대해 많이 들었다. 사자마자 감가상각되는 재테크의 최대 적이자, 빠져들면 나오지 못하는 돈 먹는 괴물. 그래서 일부러 거리를 뒀다. 그렇게 아이가 둘이 되는 지금까지 SM3를 타고 있다. 이제 7살이 된 첫째 아들이 카시트에 끼어 힘들게 들어가는 걸 볼 때마다 생각한다. 이제 정말 바꿀 때가 되었다.
연봉별 자동차 계급도를 아는가? 연봉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자동차가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다. 계급도는 조금씩 바뀌지만 기준은 명확하다. 본인의 연봉보다 낮은 가격의 자동차를 선택해야 한다. 전에 밝혔지만 내 연봉은 6천만 원이다. 해당 기준에 맞는 적절한 차량은 쏘렌토와 카니발. 생각만 해도 아저씨 소리가 절로 나오는 차다. 그런 와중에 와이프가 벤츠 시승 예약을 해놨다고 가자고 했다.
시승 차량은 벤츠 EQE. 벤츠의 신형전기차였다. 외관도 실내도 멋졌다. 뒤에 앉은 아들은 장식 하나하나에 재밌어했다. 변신 로봇 같은 선루프에도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전혀 좋지 않았다. 생각보다 실내도 좁고 운전도 불편했다. 괜히 삐걱 거리는 것 같았다. 괜히 시비를 걸고 싶었다. 영업사원도 괜히 거슬렸다. 그 차의 가격은 1억. 세금 등이 이래저래 붙으면 내 연봉의 2배가 된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지금 직장에서 벤츠를 타고 있는 선배가 있나? 우리 부서장은 그랜져, 팀장은 말리부다. 아이를 둔 동료들은 싼타페와 소나타, 그보다 어린 그룹은 투싼, 아반떼다. 연봉별 차량 계급도의 신뢰가 급격히 올라갔다. 모두들 이 계급도를 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공공기관의 안타까운 현실에 고개를 떨궜다.
부서장은 연차도 연봉도 상당하다. EQE는 훨씬 넘고 S클래스도 넘볼 수 있을 것이다. 차에도 관심이 많다. 전기차의 기술과 성능에 대해 자주 얘기한다. 그런데도 그랜져를 타고 있다. 그 위의 선배들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사기업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보수적인 공공기관은 그런 것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쓴다. 윗사람보다 좋은 차로 출퇴근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만약 내가 EQE를 끌고 부서장의 그랜져 옆에 주차를 한다면? 괜히 입방아에 오를 게 뻔하다.
직장인은 새로운 도전에 무작정 겁을 내기 마련이다. 내 소득이 이러한데, 내 상황이 이러한데, 회사사람들은 이러한데라고 말하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몇 년 전 육아휴직을 쓸 때, 내 나이 또래의 남자는 단 한 명도 쓴 이력이 없었다. 찍히지 않을까? 승진에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생활비는 감당이 될까? 선택을 방해하는 이유는 끝없이 만들 수 있었지만 눈 질끈 감고 육아휴직을 썼다. 그러자 놀라운 세상과 경험이 펼쳐졌고, 그때의 기억은 평생토록 나에게 감동을 줄 것이다. 최근에는 젊은 남자 직원들의 육아휴직이 줄을 잇고 있다.
뇌를 깨우기에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 벤츠를 보러 가자고 한 와이프에게 감사하다. 사실 최근에 계약도 했다. 사기업 출신으로 앞장서서 틀을 깨고 싶다. 보이지 않는, 아니 뻔히 보이는 공공기관 자동차 서열을 깨부수고 싶다. 부담감을 넘어서고 싶다.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은 당장 알아보자. 지금 쓰고 있는 브런치도 나에게 아주 큰 도전이고 변화이다. 나는 이 브런치를 통해 내가 늘 꿈꿨던 작가가 될 것이다. 출간된 내 책을 나의 아이들과 같이 볼 것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좋은 것도 경험하자. 직장인이라고 스스로 제한을 두지 말자. 근무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따지지 말자. 시간 금방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