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하디 흔해진 단어인가? -
어느덧,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이 지나 거짓말 같은 가을바람이 아침저녁 창을 흔들어 댄다.
과연 우리가 인식하는 현재라는 건 얼마나 불확실한 걸까?
지긋지긋하게 덥다는 표현이 어울리던 여름이 끝나지 않을까 봐 두려웠는데... 추석이 다가온다.
조금 더운 것도 이런데.... 지옥은 이것보다 더 뜨겁고 랜덤일 텐데... 아! 잘 살아야지.... 아! 착하게 살아야지....
현재를 살지만,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놓쳐버린 과거와 알 수 없는 미래에
발목이 잡혀 찬란한 현재를 누리지 못하는....
살아가며 가장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질병?
죽음.....
나이가 먹을수록
아! 신난다~~ 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인생의 기한이 정해져 있음에 생각이 닿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거다.
구봉서 아저씨가 돌아가셨다.
그분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잘 아셨던 분인 것 같다.
TV에서 비치는 모습은 언제나 유쾌하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티브이에서 자신의 예전보다 자유롭지
못한 일상과 신체에 대해서도 솔직하지만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며... 대가 답다는 생각을 했다.
덮고 숨긴다고 드러나지 않을 것은 이 세상에 별로 없다.
그분은 유쾌하고 의지가 강하고 순수함을 지니신 분 같다.
어린 시절,
지방에 근무하는 아빠가 1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오셔야 했으므로
나는 부유함을 얻은 대신, 외로움과 지적 호기심을 친구 삼아 살았던 것 같다.
그때 나의 위안거리들은 2층 아빠의 책장에 꽂혀 있던 아동 문학 전집 100권과 미국 어린이 동화.
유럽 어린이 동화 전집. 그리고 도통 이해는 안 되지만 두꺼워서 꺼내 보던 아버지가 보시던 법전(대체 왜 두꺼운 건지 자꾸 만져 봄), 프로이트의 책(구경용)과 '요술공주 세리', '마징가제트', '수사반장',
'웃으면 복이 와요'뭐 이런 TV 프로그램과 공상이 아니었나 싶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갈 때 나는 '퇴행 현상'을 겪었다.
당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나는 중학교에 올라가는 게 너무 눈물 나게 싫었다.
늦게 끝나 집에 오면 내가 좋아하는 만화 프로그램을 못 볼까 봐였다.
자꾸 어릴 적 내가 좋아하던 프로그램의 연기자들이 한 명, 두 명... 돌아가시는 게 안타깝다. 한편으론 내가 그만큼 나이를 먹은 거지.
일찍이 엄마를 떠나보내고 어린 나이에 느낀 게 있다.
있을 때 잘하자.
누구나 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있을 때 서로 사랑하자.
그렇지만, 성경에 있다. 원수는 가까이 있다고.
결혼이란 걸 하고 보니.
너무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나와 비슷한 생명체 때문에, 혹은 그 주위의 인물들 때문에 현재에 내 옆에 있는 생명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렇지만, 내 정신건강을 위해... 자꾸 마음을 고쳐 먹지 않으면
아인슈타인도 아니고, 기인도 아니고, 자연인도 아닌,,,,내 룸메이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게 참............ 힘들다.
날마다 나 자신을 말씀 앞에 비춰보고 기도하는 신앙의 힘이 아니었다면 난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차라리 폭발해서 더 잘되었을까?
미춰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때로 삶보다는 죽음이 주는 교훈이 빨리 와닿을 때가 있는 것 같다.
엄마를 떠나보내며 생각한 것 중의 하나.
1. 있을 때 잘하자.
2. 열심히 살자.
3. 하고 싶은 건 할 수 있는 한, 다 해보자.
1번은 70프로쯤 지키며 사는 것 같다. 약 30%의 생명체를 빼고.
2번은 마음은 그런데, 실질적으로 인식이 잘 안돼서 몸이 게으를 때가 많다
3번. 그런 인간이 몇이나 될까. 워너비~~(세월이 흘러보니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선택과 집중)
누구에게나 죽음은 다가온다. 아니, 뚝 떨어질 수도 있다.
죽음을 두려워할게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는 내가 더 무서운 존재인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괜히 죽음을 미화하거나 조장하는 그런 무리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인생에 죽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유념하라는 뜻이리라.
죽음이 있다는 걸 아는 인생은 함부로 살 수 없으니까.
시간을 허비할 틈이 없으니까.
이것은 어찌 보면 사랑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다.
언젠가 누구나 다 죽을 건데
뭘 그리 미워해서 무엇하나. 사랑하자.
(도저히 잘 안 되는 부류는 일단 스킵해두고)
누구에게나 언젠가 다가올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자신의 운명을 더욱 사랑하고 현재에 충실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일찍이 엄마를 여의면서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었는데.
나중에 커서 이런 이론들이 있다는 걸 알고,,, 아! 그래서 철학자고, 그래서 사상가이고, 그래서 몇백 년을 철학가와 사상가로 전해져 오는구나 싶었다.
난 제법 오랫동안 어린아이들을 가르쳤다.
나의 철학이 이래서인지 어린아이들에게 인생 전체를 바라보는 눈을 저학년 때 가질 수 있도록 교육했던 것 같다.
어떤 녀석은 그런 교육을 하고 났더니 엉엉 울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그럼 난 뭐냐고,,, 평생 돈만 벌다가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다 죽는 거냐고...(똑똑한 녀석이었네^^)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엄마의 세뇌교육 탓인지는 몰라도 자기가 엄마 아빠를 늙도록 모시고 살 거라던
2학년 꼬맹이 녀석이 엉엉 울며, 엄마 아빠 모시고 사는 것도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고...ㅎㅎㅎ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나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떤 상처로 인해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어느 구석 나 자신도 더럽게 미워하고 있을 테니...
하지만,
미처 하든, 받든 먼저 하지 못했을 때
언젠가 그쪽에서 용서를 청해 올 때,
용서하고 나를 치유할 수 있으려면 마음의 준비를 차곡차곡하고 있어야 한다.
영화 '밀양'의 파렴치한처럼 자기 맘 편하자고 용서를 청하는 인간들이 간혹 있기 때문에 세심하고 지혜로워야 한다.
또는 '다 그런 거라'면서 일반화시키며 용서 못하는 나를 바보 취급하려는 다른 종류의 파렴치한도 있기 때문이다.
어제 MBN 동치미를 보다가 김용림, 남일우 씨 부부의 삶이 내 모습 같다 느껴진다.
어처구니없는 시집살이를 많이 하신 것 같다.
목석같은 남편.
남편 되시는 분이 습관처럼 입에 밴 말이 '미안해 여보', '여보 미안해'
부인은 이게 그냥 말버릇처럼 나와서 어떨 때는 '나 갔다 올게. 미안해 여보'
이렇게 영혼 없는 미안해 여보~가 싫을 때가 있다고 하셨다.
나는 그걸 보면서 다르게 표현할 줄 모르는 미안한 마음을 저렇게라도 표현하는 것 같아... 그 정도면 그래도 양심 있는 어른이라 생각이 들었다.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그 분의 진지한 한 마디 말이 가장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과 나만 생각해서 정말 사랑하며 살고 싶다.
다시 태어나면 당신에게 청혼하고 싶다. 라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무게감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 진솔한 무게감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아내보다 주위에 패널들이 더 많이 울었다.
오늘.
오늘을 사랑하자고 다시 다짐해 본다.
운명을 사랑하자.
내 옆에 있는 생명체....... 사랑하라고 보내주신 선물.
너와 별반 다르지 않은데 알아채지 못하는 생명체.... 그것을 귀히 여기라 하신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다 고만고만한 인생이다....
2019.02.13의 단상을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