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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티 Mar 17. 2024

호갱님, 깨어나셨습니까?

동굴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 2

  나는 졸업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분명 운전대를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까마득한 느낌과 함께 정신을 잃은 것 같다. 사실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의 기억에 잠이 든건지 기절한 건지 알 수가 없다. 눈을 뜨려는데 철판을 눌러 놓은 듯 눈꺼풀이 무거워 눈이 떠지지 않았다. 정신이 들었을 때 주변 상황을 짐작해 보니 응급실이라고 했다. 응급실의 모든 의료진들이 나만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볼 수 없으니 믿을 수밖에. 수군거리는 소리가 내 귀를 맴돌았다. 죽을 뻔했어. 천운이야. 기적이야 어떻게 털끝 하나 안 다치고 저렇게 들어왔대. 차가 저 모양인데. 원래 그런 거잖아, 차가 저 모양이면 사람은 멀쩡하잖아. 기타 등등. 이내 나는 다시 다른 병실로 옮겨진 것 같다. 중환자실인지 일반 병실인지 잘 모르겠다.

  내 차가 어떻게 된 걸까? 이 상황에서도 내 차의 행방이 먼저 궁금했지만 말을 하려는데 입이 없어진 것처럼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의식이 돌아와 눈을 떴는데 다리가 없거나 팔이 없는 그런 건 아닐까 너무 조마조마한데 아무것도 심지어 머릿속에서 눈알조차 굴리지 못할 것 같았다. 제대하고 임용된 후 바로 할부로 뽑은 내 차가 잘못된다면 내가 잘못된 것보다 더 큰 일인데.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천만다행이에요. 다치지 않으신 게. 기억나세요?

    드라마에서 많이 들어본 대사 같은데 지금 나의 현실이다.  


  나는 고개를 저으려고 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돌덩이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힘껏 쳐들고 눈을 끔뻑하고 싶었지만 산스장에 있는 녹슨 덤벨만큼 무거워진 눈꺼풀을 들어 올리기가 너무 힘이 들어 포기했다. 아니라고 눈알을 양쪽으로 왔다 갔다 굴리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순간, 어디선가 많이 듣던 요란한 목소리가 응급실에 울려 퍼졌다.  


  -야야, 재승아! 니 살았나?  아이고 그래서 내가 차 갖고 다니지 말랬제? 우야노~

  그러더니 갑자기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것같았다. 아, 정말 강여사의 오버는 말릴 수가 없다. '누가 좀 말려줘요'를 외치고 싶은데 눈도, 입도 다 봉한 상태이니.

  그나저나 이 익숙하고 우렁찬 목소리, 강여사가 떴다. 확인해야 하는데 눈이 접착제로 붙인 듯 해도 보나 마나 강여사가 확실하다. 아무리 내가 정신이 없어도 엄마만은 말려야 하는데 다 소용없었다. 이미 강여사는 목소리 하나만으로 응급실을 점령했다. 나는 강여사를 제지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손을 힘껏 들어 올리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말을 듣지 않았다. 엄마의 목소리가 내 얼굴 앞에서 나는 것 같아 눈을 감은 채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척했다. 간호사가 옆에 있었는지 엄마에게 한 마디 했다.


  -보호자 분, 환자분이 좀 더 안정을 취하셔야 하니까 잠시 나가 계시다가 저희가 호출하면 그때 들어오세요.


  엄마는 평소 강여사의 면모답게 거세게 저항하는 것 같았지만 의사의 나지막한 만류에 기가 꺾인 건지, 아들의 안위를 위해서인지 순순히 밖으로 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의 목소리가 멀어지자 다시 힘겹게 눈을 치켜떠 봤다. 눈앞이 흐릿하니 점점 사물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환자분, 저 보이세요?


  나는 고갯짓을 하느니 대답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소리를 내려 했는데 쇳소리 비슷한 마찰음만 날 뿐 소리도 나지 않았다. 제기랄. 뭐가 제대로인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았다. 의사는 내 눈꺼풀을 뒤집고 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간호사에게 무언가 지시하고는 나에게 좀 더 휴식을 취하라는 말을 남겼다. 어떻게 된 일인지 너무 궁금한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평소 궁금한 걸 못 참는 나에게 이 상황은 1급 비상사태다. 혹시 다리가 잘리거나 한 건 아닐까? 우선 눈을 껌뻑여 봤다. 빠르지는 않아도 아주 조금 뜰 수는 있었다. 하지만 피곤하니까 내가 눈을 뜰 수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코를 킁킁거려 봤는데 냄새를 맡을 수는 없지만 작은 소리로 킁킁거릴 수 있었다. 입도 실쭉할 수 있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봤다. 엄지부터 차례로 하나씩 힘을 주고 접어도 봤다. 모두 정상이다. 훌쩍 건너뛰어 발가락 차례다. 엄지부터 온 신경을 집중해서 발가락 하나하나를 접어봤다. 그러고 있는데 누가 와서 툭 치며 말했다.  


  -정상이야. 장애는 안 되었으니까 감사한 줄 알아라.


  익숙하고 기분 나쁜 말투.

  ‘저 자식이 여기 왜 왔어.’  

  하마터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그런데 현실은 몸에 힘을 주지도 눈을 뜰 수도 없는 채로 경민이 저 자식의 말소리를 고스란히 들어야만 했다.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야, 이 자식아 이렇게 누워있으면 어떡해. 눈 떠. 눈 뜨란 말이야. 너 없는 세상은 나한테 아무 의미가 없다고. 내가 무슨 재미로 살아. 재승아!


  경민이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게 대체 얼마만인가. 유치원 때부터 붙어 다녔는데 재승이는 나를 언제나 쩨리라고 부른다.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긴 했구나. 그런데 매일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저 녀석이 내 걱정을 저렇게 한다는 게 너무 뜻밖이었다. 당장이라도 눈을 번쩍 뜨고 묻고 싶지만 두 번째 눈을 뜨기 힘들었다.


  간호사가 조금 여유가 생겼는지 경민이에게 정말 친한 친구인가 보다며 의식은 돌아왔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것 같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전화벨 소리가 울리더니 경민이가 황급히 병실을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병실 밖에서 나는 경민이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쩌렁쩌렁했다.


  -어, 쩨리가 죽다 살았어. 식겁했다. 내가 저 자식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아. 놀리는 재미에, 쩨리 차가 내 차잖아, 아참 차는 완전 맛이 갔다는데 다시 사겠지, 자식이. 저 자식은 여자 친구 없인 살아도 차 없인  못 살거든. 돈도 잘 빌려주고 제일 친한 친구인데 클날 뻔했지. 알았어.  


  그 뒤의 말들은 집중이 잘 안 되었다. 빌려간 돈을 합치면 작은 차 한 대를 사고도 남을지 모른다는 걸 저 자식은 알까.


  누구와 통화를 하는지 나의 상태에 대해 소상히도 알리고 있었다. 자기의 속마음과 함께. 내가 호구였다는 건가? 그래도 다행히 이라며 아직 움직이진 못하는데 내가 다 알아듣는 것 같다는 보고를 하고 있었다. 나는 더 자고 싶었다. 듣기만 해도 피곤이 몰려왔다. 갑자기 이대로 며칠 여기 누워 쉬고 싶어졌다. 회사는 회사대로 힘든 일은 모두 나에게 미뤄두고 1년 휴직에 6개월 병가에, 어제까지 멀쩡하던 인간들이 죄다 새로 발령 난 나만 빼고 이탈을 해 버렸다. 나는 고민하며 운전하다 매소홀터널을 지나던 중이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만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정말 어두운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제 나온 느낌이다.


  오늘은 더 이상 기억을 떠올릴 기운이 없었다. 통화하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경민이가 다시 돌아왔다.  

  -야, 이 자식아. 쩨리야! 기운 내. 네가 없으면 나는 못 산다고.  


  갑자기 창피해졌다. 전화 통화 소리가 들리는 내내 내가 지금껏 저 자식한테 호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는 게, 그리고 호구가 없으니 내가 불편하다로 뇌에서 해석이 되었다. 그동안 호구 짓만 한 것 같아 갑자기 창피해지면서 삶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아, 그런데 아르바이트할 시간 돼서 가야겠다. 쩨리야. 내가 또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꼭 깨어나야 돼. 간호사 누님, 얘 괜찮겠죠?

  고비는 넘겼으니 환자가 안정을 취하게 해 주라는 간호사누나의 말을 들은 건지 귓등으로 들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경민이는 돌아간 것 같았다.

  고작 두 명 왔다 갔는데 한 20명 다녀 간 것 같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나는 잠이 들며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제 퇴원하면 차는 사지 않을 거다. 빌려준 돈 모두 회수한다. 나를 호갱으로 봤던 사람들에게 내가 호갱이 아니란 걸 보여주고 말 거다. 그렇게 혼자 다짐하는데 스르르 잠이 몰려왔다. 꿈인지 생시인지 눈이 안 보이니 알 길이 없지만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가 났다.


  -호갱님~ 여기예요. 그냥 가면 안 되죠. 여기 신차 할부 기막힌 조건으로 해 드릴게요.

  나는 나를 부르는 소리인가 싶어 스르르 눈을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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