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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태용 Aug 17. 2019

9. 의존에서 독립으로

 타쿠는 엄마, 아빠에 대해 객체로서의 구분을 시작하게 되며 성장함에 따라 자아에 대한 인식도 강해진다. 특이한 점은 엄마의 반응이다. 엄마는 타쿠를 낳고 기르며 타쿠와 감정적 유대가 깊어짐에 따라 타쿠의 고통이 이브 스스로의 고통이 되게 된다. 타쿠가 넘어지면 타쿠 보다 이브 역시 큰 고통을 느끼게 된다. 타쿠의 문제는 이브의 문제가 되며 타쿠가 어려움을 겪어 내고 성취하게 되면 그것은 본인의 성취처럼 느껴지게 된다. 타쿠가 아주 어릴 때는 이것이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하지만 타쿠가 성장하며 자아가 강해지며 독립의지가 자라기 시작하며 충돌의 원인이 되어갔다. 이브가 작은 일까지 타쿠에게 간섭하는 것을 타쿠가 싫어하기 시작하며 부쩍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아담과 이브의 의견에 대립되는 의견도 많이 내며 소위 반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방식으로 타쿠가 독립을 이루어 내는 과정은 수년에 걸쳐 진행된다. 타쿠는 스스로 사냥을 하거나 도구를 만들면서 부모에게 도움받기를 거부하며 정신적 자립을 이루어낸다. 언젠가 타쿠는 부모를 떠나 자신의 무리를 이루려 할 것이다. 


 인간은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났으나 그 본성은 자유를 갈구한다. 갓 태어난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행위 밖에는 없다. 태어났을 때에 본인의 머리조차 가누지 못해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위대한 정복자인 나폴레옹과 카이사르 역시 이러한 숙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어린아이는 모든 것을 의존한다. 먹는 것, 대소변 처리, 엎드리는 것 모두 엄마의 도움 아래에서 행해진다. 


 아이가 성장하며 몇 가지 육체적 행위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독립성을 획득한다. 고개를 들고 자세를 바꾸며 양팔과 다리를 이용하여 이동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생후 12개월 즈음에는 양발로 걷기 시작한다. 아이가 손을 잘 사용함에 따라 스스로 수저를 사용해 먹기 시작하며 대소변 처리를 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시행착오의 경험을 통해 아이는 운동 능력을 더 세밀하고 정확하게 발달시킨다. 


 아이의 육체가 성장하며 정신적 인지 역시 발달함에 따라 아이는 차츰 정신적 독립을 추구하는 성향을 가진다. 아이에게 정신적 독립이란 스스로가 하고 싶은 행위를 함으로써 주체성을 획득하고자 한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행동은 주로 욕구 충족적인 특성을 가지는데 단 것을 먹거나 TV를 보거나 잠을 자지 않고 노는 행동들이 예가 된다. 자신의 행동에 독립을 원하는 아이와 어른의 생각에서 바르지 못한 행동을 제제하려는 부모의 다툼은 필연적이다. 부모의 반응은 대부분 타협의 형태로 나타나 일부 허용해 주는 경향을 보인다. 그 방식은 주로 대화를 통해 일어나며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타협의 기술을 익혀나가게 된다. 


 대화라는 수단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은 어른의 방식이며 현대 사회에서 공인된 방법이기도 하다. 대화는 내 아이가 어른으로서의 역할 수행을 기대한다면 반드시 가르쳐야 할 중요한 수단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플라톤 또한 자신과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사상을 산문형식으로 풀어내지 않고 대화를 통한 토론 형식으로 서술하였던 점도 대화의 중요성을 부각해 준다. 외교적 협상과 비즈니스도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고 계약을 이끌어낸다. 또한 대화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된다. 진료실에서 의사는 대화를 통해 환자의 삶을 건강한 방향으로 이끌어 낼 수 있으며 심리상담사는 환자와 대화하며 그에게서 문제를 이끌어 낸다. 대화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은 현자나 명망 높은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 큰돈을 아끼지 않는다. 인간이 가진 가장 훌륭한 의사소통 수단으로써의 대화는 앞으로 내 자녀의 인생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도울 것이다. 


 하지만 대화의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 부모도 존재한다. 그 무엇도 허용하지 않는 완전한 제한과 너무 빠른 시기에 아이에게 주어지는 완전한 자유이다. 부모가 그 무엇도 허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아이는 두 가지 선택지를 가지게 된다. 첫 번째는 좀 더 투쟁하는 것이다. 바닥에 누워서 떼를 쓰거나 그치지 않고 엉엉 우는 행동이 이와 비슷하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른보다 쉽게 감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는 아이의 요구를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 만약 아이가 감정적인 호소로 원하는 것을 얻게 되는 경험을 가지게 되면 부모는 더 큰 문제를 겪게 된다. 아이는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마다 감정에 호소하게 되며 떼를 쓰거나 더 크게 울어 부모를 난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부모의 거절에 대한 아이의 두 번째 반응으로 아이들은 욕구를 포기한다. 아이는 강경한 부모의 태도에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부모는 이런 상황에서 대개 아이를 칭찬함으로써 아이를 위로한다. 이런 방식은 아이의 절제력을 높이는 데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으나 지속적으로 행해지면 아이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욕구 표현 자체가 줄게 된다. 어차피 요구해도 부모는 안된다고 이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친구나 선생님 역시 부모처럼 안된다고 말할 것 같아 자녀는 자신의 욕구를 말하지 않고 스스로 참는 법을 익힌다.  어른이 볼 때는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보일 수 있으나 아이의 자존감은 낮아지고 자기표현이 서툰 아이로 자랄 수 있다. 아이는 쉽게 의존적인 형태를 보이게 된다. 


 아이의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아이는 자신이 욕구하는 모든 것을 가지게 된다. 집에는 장난감으로 가득하고 항상 달달한 간식을 먹으며 자란다. 아이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아이는 또래 아이들과의 교제에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다른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은 빼앗기 일쑤이며 그것이 옳지 않은 행동임을 알 여지도 없다. 자연히 타인과의 교제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며 위축되게 된다. 또한 자신의 욕구만을 충족시키는 삶이 어른이 되어서까지 이어진다면 이는 결국 사회적 고립과 무절제한 생활로 이어진다. 


 육아의 목표는 부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추후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하며 행복하고 충실한 삶을 살아갈 기반을 쌓는 데 있다는 명제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자유를 추구하는 본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독립성과 주체적 삶을 살아갈 권리는 추후 어른이 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부모는 아이의 건강한 삶을 위해 육아의 방향을 의존 상태에서 차츰 독립성을 점차 확대해 나가는 쪽으로 향해야 하며 이는 수년에 걸쳐 진행된다. 또한 그 과정에서 부모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와 타협이다.   


 다시 타쿠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타쿠의 엄마는 타쿠에 대한 욕심이 없다. 가정 밖 사회가 없기에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남들보다 성공한다는 개념은 아직 없을 터이다. 그저 집이 있고 식량이 있고 아내를 맞아 가정을 이루면 된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타쿠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교육은 대부분 이러한 목표에 준해서 일어나게 된다. 안전한 보금자리를 만들고 수렵활동을 통해 먹을 것을 얻고 아버지로부터 사냥하는 법에 대해 배운다. 이러한 것들은 기술의 영역이다. 타쿠의 배움에 열정이 있고 적절한 훈련만 이루어진다면 타쿠는 교육의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타쿠에게 자신감을 주며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의 독립성도 부여하였을 것이다. 그 시대에는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다면 독립된 개체로 인정받는 것이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가 사는 세대는 타쿠의 세대와는 다르다.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우리는 피라미드와 같은 사회에서 한 계급이라도 더 위로 올라가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몇몇 기득권층은 이러한 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 계층 사다리를 부수려고 노력한다. 가진 자들과 가지지 못한 자들의 각축장인 것이다. 또한 같은 계층에서도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서로 뺏고 빼앗기는 투쟁이 일어난다. 그야말로 위아래, 양옆으로 투쟁하며 사는 것이 현대인인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우리의 독립성을 인정받기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원시 사회에서 필요했던 의식주의 기준도 현저히 높아져 평생 일해도 자신의 집을 사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의 시대에는 늙어서도 여전히 남의 집에서 살며 독립성을 획득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독립성이라는 것은 이런 의식주의 표상적인 획득의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독립성은 내가 스스로의 삶과 생각을 통제하고 있고 주도적인 인생을 살고 있다는 주관적인 느낌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내가 노예의 신분에 있다 하더라도 나의 감정에 따라 나의 독립성은 유지되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객관적으로 본다면 독립성은 육체와 정신의 두 가지 독립 상태를 분리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노예의 삶은 비록 정신적인 독립성을 지녔다 생각할지라도 자기 육체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기에 일반적으로 독립적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육체적으로 통제권을 잃은 사람은 거의 없을 터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의 독립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우리와 아주 친밀한 것으로부터의 독립이다. 바로 부모와 사회이다. 


 과거 사회에서 개인은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지지를 거의 받지 못했다. 자신의 삶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했다. 사실 인구의 대부분이 농사를 짓는 농경사회에서 농업 기술을 익히고 땅을 경작하여 소득을 이룰 수 있게 되면 어느 정도 독립을 이루어 낸 것으로 보아도 좋았다. 발달되지 못한 의학과 부족한 영양으로 평균 수명 자체가 지금과 비교하면 아주 낮았던 시대로 젊은 나이에 대부분 가정을 이루는 풍조가 있었다. 나라와 부모로부터 받는 것이 적기에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절반은 독립성을 획득한 상태로 자연스럽게 가정을 이루며 스스로 서게 된다. 


 오늘날의 사정은 좀 다르다. 부모는 이전과 다르게 자녀의 교육과 양육에 많은 서포터를 해준다. 자녀는 부모에게 해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 것이 일상적이고 당연하게 된다. 결혼할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부모의 지원을 받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한다. 사회 역시 우리의 자녀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잘 정립된 교육 시스템으로 많은 수의 자녀들이 대학교까지 진학한다. 청소년과 아동을 위한 법도 있으며 이전 사회보다 가능성을 지닌 자녀들은 더 쉽게 기득권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보장 시스템은 시민들의 교육 수준을 높여 시민의식을 높이고 훌륭한 인적자원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가진다. 하지만 정신적인 독립성을 획득하는 데에 복지 시스템은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좋은 복지 시스템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개인이 사회에 의존하지 않도록 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독립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아이의 양육 과정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방법이 좋다. 가장 큰 이유로는 일방적으로 한쪽은 주기만 하고 다른 한쪽은 받기만 해서는 독립성을 이루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자녀에게 독립성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사회와의 관계에서도 일자리를 얻어 세금을 납부하기 전까지 일방적으로 국가의 혜택을 대부분 받기 때문에 독립성을 함양하기가 어렵다. 오늘날의 사회와 가정의 분위기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많은 것을 제공하지만 반대로 독립적인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전 세대에 비해 많은 혜택을 받은 자녀들일 수록 독립성의 획득은 요원해진다.


 물론 정부나 부모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하는 지원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만큼 독립성을 획득하는 나이도 늘어야 된다는 것이 맞다고 본다. 특히 한국은 고부가 가치를 지닌 산업이 발달되어 있어 긴 교육기간이 필수적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육아의 방향성이 의존보다는 독립으로 명확히 향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가정에서 부모는 아이의 모든 불평을 받아주고 아이의 뜻대로 하게 두어선 안된다. 부모는 그들이 가진 경험과 사랑, 지혜로움으로 적절한 통제와 자유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독립성을 함양할 수 있다. 


 독립성을 키워주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와 나의 일을 분리하는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숙제를 가지고 왔을 때, 부모는 아이에게 약간의 힌트와 조력자의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그 숙제는 아이의 과제가 된다. 조력자의 역할이 최소화될 때 아이의 독립성은 늘어난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와 부모의 감정적 분리가 일정 부분 필요하다. 아이가 경험하는 모든 일은 부모의 일이 아닌 아이 인생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다. 이를 부모가 자신의 일처럼 여겨 해결하려 들면 그 결과는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아이는 좋은 결과를 위해 부모에게 의존하게 되고 자녀의 독립은 늦어질 것이다. 부모는 자녀를 너무 사랑해서 자녀의 아픔이 때론 부모의 아픔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자녀가 넘어져 무릎이 다치면 부모는 자신의 무릎이 다친 것보다 더 괴롭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부모의 가장 우선적 역할은 아이를 안심시키고 아이의 상처를 씻고 소독하는 일이다.  


 독립성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도 간과하는 부분이 많다. 혼자 서기에 사회는 너무 각박하며 가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인간의 역사가 쓰인 수천 년의 기간 동안 세상이 힘들지 않았던 시절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사례에서 몇몇 기득권층을 제외한 서민들의 삶은 항상 괴롭고 힘들었다. 불과 100년 전 일제 치하의 한국의 소년보다는 지금 우리의 자녀의 환경이 더 나을 것이다. 이전에는 철저한 신분사회여서 일반 서민이 양반이 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시민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항상 고달픈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삶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지구에는 사람 수만큼의 스토리가 존재한다. 부모의 도움을 받아가며 쉽게 살아가는 스토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소재로서는 부족하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토리는 고향에서 나와 고난과 다양한 시련들을 지혜와 용기로 극복해 나가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우리의 인생이 스토리이듯 우리의 스토리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런 경험들이 필요하다. 물론 실패라는 리스크는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나는 인간은 또다시 실패하더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아무도 비웃지 못할 것이다. 


 독립성은 우리에게 의지와 끈기를 선물한다.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가 집중력을 높인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스스로 서있는 상태에서는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두 다리밖에 없다. 강한 바람이 불 때 옆사람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두발과 두 다리에 힘을 주고 견뎌야 한다. 견디는 시간이 늘 수록 두 다리는 튼튼해진다. 이전보다 더 강한 바람에 더 오래 견딜 수 있게 단련된다. 바람이 불 때마다 옆사람에게 의지해선 다리의 힘이 튼튼해질 여지가 없다. 


 내가 말하는 독립성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하는 독선주의적인 경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서 고립된 채 혼자 자급자족하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독립성은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다. 그렇기에 좀 더 노력하고 좀 더 공부해야 한다. 한번 더 생각해야 한다. 많은 것을 책임지려 하는 자세는 자연스레 그 사람을 리더로 만든다. 한번 더 생각하는 사람은 절제력 있고 신중한 사람으로 만든다.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자녀들에게 닥친 작은 사건들을 우선 해결하고 책임지도록 하자. 우리는 작은 조력자로서 자녀들을 지지하고 사랑하며 믿고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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