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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태용 Aug 17. 2019

5.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법

나에게 집중하고 내 과거를 생각하고 나를 안다고 해서 당장 스스로가 나은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과거의 슬픈 기억에 집중할수록 현재의 나도 슬프고 우울해질 뿐이다. 지금 나의 고통과 힘든 상황이 과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은 오히려 편해진다. 힘들었던 과거와 상처들은 지금 겪는 고통의 변명거리로 나에게 합리화라는 달콤한 열매를 제공한다. '내가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다 과거의 부모님 때문이야, 혹은 환경 때문이야.'라고 되려 타인을 원망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나 스스로를 아는 것 그 자체가 족쇄처럼 내 발을 묶어 현재와 미래의 가능성을 묶어 둔다. 나의 현재의 고통은 과거의 누군가가 준 상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변화시키기보다 부모를 원망하고 사회와 환경을 원망하는 것이 훨씬 쉽고 마음도 편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어려운 선택보다는 환경과 타인을 원망하는 선택을 하는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를 원망하고 정치인 들을 원망하고 부모와 선생을 원망한다. 물론 그들 혹은 사회는 가해자로서 우리에게 상처와 고통을 준 것도 맞다. 하지만 우리가 훌륭하고 더 나은 부모로서 변하기 위해 그들을 원망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요컨대 타인을 탓하는 것은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 것인가? 


 첫 번째 방법 - 기억 덧씌우기 

 기억이란 생물에게 무엇인가? 특히 척추동물들은 '뇌'를 가짐으로써 보다 유동적으로 자연에 적응하도록 특화되었다. 첫 번째 방에 들어간 원숭이 앞에 두 개의 버튼이 있다. 빨간 버튼을 누르면 바나나가 나오고 초록 버튼을 누르면 바닥에 전기가 흘러 고통을 겪는다. 원숭이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통해 빨간 버튼만 눌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원숭이가 두 번째 방에 들어가서 빨간 버튼과 초록 버튼이 있을 때, 설령 초록 버튼을 누르면 초콜릿이 나온다고 해도 원숭이는 초록 버튼을 누르지 않을 것이다. 초록 버튼을 눌렀을 때 발생한 감전의 고통을 원숭이가 기억하기 때문이다.  

  기억은 이처럼 동물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기억을 가짐으로써 동물은 지난번의 과오를 또다시 겪지 않도록 도운다. 물론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버튼을 누름으로써 강력한 제재를 받은 경험이 있는 동물은 초록 버튼을 누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사람에게도 대입할 수 있다. 어렸을 적에 받았던 충격, 실패, 고통들은 사람의 기억 속에 존재하며 그러한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 사람은 스스로 행동을 조절하게끔 변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렸을 적 받았던 결과의 달콤함과 행복했던 감정을 찾기 위해 빨간 버튼을 누르듯 유사한 행동을 현재 하게끔 기억은 우리의 행동을 유도한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1등을 차지한 경험이 있던 민수는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에게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았고 또다시 열심히 공부를 해서 1등을 하려고 노력한다. 

 평소 공부를 하지 않고 전날 벼락치기를 해서 중간 정도의 결과를 얻었던 현우는 평소에는 놀고 전날만 공부해서 중간 정도의 결과를 얻으려고 한다. 

 공부를 하는 것이 너무 지루하고 노는 것이 너무 즐거운 민서는 꼴찌를 했음에도 선생님과 부모님의 꾸중이 거의 없었다. 노는 것이 즐거운 민서는 꼴찌를 하기 싫지만 공부하는 것이 더 싫어 다음 시험에도 공부를 하지 않는다. 


  이처럼 기억과 행동에 대한 예시는 다양하다. 공부하는 것이 지루한 민서는 1등을 해서 얻는 인정과 칭찬의 기쁨을 경험한 적이 없기에 기억이 없다. 민서가 스스로 공부를 하게끔 하기 위해선 어떤 부모의 노력이 필요할까? 때려서 혼내는 것? 좋은 선생님과 학원을 보내는 것? 물론 이러한 것들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노력해서 성취했을 때 얻는 만족과 인정의 경험을 민서에게 제공하여 민서에게 성취의 기억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스스로 미래를 고민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 노력하여 성취를 얻고 인정받는 기쁨을 알게 된 민서는 공부에 있어서도 노력할 수 있는 기억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기억은 행동을 이끌어 낸다. 


 실험실 원숭이에게 두 번째 방에서 초록색 버튼을 어떻게 누르게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초록색 버튼을 눌렀을 때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험실 연구원은 원숭이 앞에서 초록색 버턴을 누르고 초콜릿을 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원숭이의 손을 잡아 초록 버턴을 누르게 유도하고 초콜릿을 먹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기억을 덧씌우며 원숭이는 초록 버튼이 무해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억을 덧씌우는 이러한 행동은 사실 안 씻는 아이에게 새 옷을 입히는 것과 비슷하다. 새 옷을 입은 아이는 평소와 다르게 주위의 관심과 칭찬을 받고 또 다른 새 옷을 입고 싶어 한다. 새 옷을 입는다고 단번에 아이가 얼굴을 깨끗이 하고 머리를 다듬을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새 옷을 자주 입고 거울을 자꾸 들여다보면 세수도 하고 머리도 예쁘게 다듬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러한 기억 덧씌우기 기법은 안타깝게도 내면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새 옷을 입는 다 해도 옷 안의 더러움까지 깨끗하게 해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문제의 해결은 본인 스스로 근본적인 문제를 알아내고 앎을 통해 스스로의 과거를 이겨낼 때 일어난다. 이를 위해선 뛰어난 지혜와 상처를 이겨낼 용기가 필요하므로 보통 사람이 혼자 해결할 법한 일은 아니다. 


 두 번째 방법 - 행동화    

 행동화는 기억 덧씌우기보다는 어렵지만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방법이다. 행동화는 이성과 자아가 강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방금 전 원숭이 실험을 우리가 당한다고 생각해 보자. 첫 번째 방에서 초록 버튼을 누르면 고통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 우리는 두 번째 방에서 또다시 빨간 버튼과 초록 버튼을 마주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원숭이와 유사하게 초록 버튼을 누를 생각을 못할 것이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방이 달라짐으로써 실험 조건 역시 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새로운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은 다시 한번 빨간 버튼과 초록 버튼을 눌러본다. 기껏해야 감수할 것이 잠깐의 일시적인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콜릿을 얻는다. 


 이들은 기억에 지배당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들은 현재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과 판단을 수행한다. 그런 사람들은 적절하게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과거의 경험만을 가지고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과거와 비교하며 고찰을 통해 새로운 판단을 내린다. 기억과 과거는 하나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데이터로서 작용하지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이들은 니체의 자라투스트라와 같은 철인의 영역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나 역시 이런 사람이 아니기에 명확히 표현할 수 없어 독자에게 미안할 뿐이다. 


 행동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열려 있고 행동화를 하지 못하면 닫혀 있다고 할 수 있다. 행동화는 알을 깨고 나오는 행위이며 자신의 세계를 부술 때 가능하다. 특히 기억은 우리 삶에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요소로 우리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억은 개인에게 가치관과 생각의 틀을 만들어 준다. 그렇기에 기억의 영향력을 벗어난 다는 것은 기존의 가치와 세계관을 부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좋게 말하면 창의적이라고 할 수 있고 나쁘게 만들면 이단이나 룰 브레이커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러한 행동화를 잘하는 사람이 세상을 이끌었고 인류의 지평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새롭게 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행동화는 우리가 가진 기억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편향과 생각을 비판할 수 있다는 이야기므로 잘못되면 '미친 사람'으로 몰릴 수 도 있다. 


 미친 사람과 창의적인 사람은 행동화를 통해 '보편적 사회적 통념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의 차이로 분류할 수 있다. 중세 유럽에서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며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하지만 그 미친 사상은 현대에서는 보편적인 사회적 통념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사회적 영향력이 높은 사람이 이야기할 때 미친 사상은 '그럴 수도 있는 이야기'가 되고 새로운 기준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도 재미있다. 다신교였던 로마가 일신교인 기독교를 황제의 승인으로 받아들인 것이 좋은 예다.  


 행동화는 이성의 강화를 통한 '자아'의 강화가 필요하다. 강화된 자아는 행동화를 할 밑거름을 만들어 준다. 스스로의 마음과 행동의 지배자가 된 자아는 이성을 통해 보다 합리적이고 분석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강한 자아는 타인에게 스스로의 영혼을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서있는 상태를 뜻한다. 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그 자체로 완전해 보이며 자신감에 차있다. 걸음걸이에 여유가 있고 작은 몸짓에도 자신감이 있으며 눈 빛은 총명하다. 스스로의 가치를 의심하지 않고 타인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가진다. 강한 자아를 가지는 비법은 자존감과 독립성의 획득에서 이루어지며 뛰어난 이성과 지혜가 함께할 때 행동화는 완성된다. 


 '기억 덧씌우기'와 '행동화'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기존에 일부 존재하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신과에서는 기억 덧씌우기는 이전의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치료와 일맥상통할 것이고 행동화는 아들러의 심리학과 닮아 있다. 인간의 복잡성과 다양성으로 나의 이야기의 반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우리는 두 가지 자신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함께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가지의 방법론의 공통점은 외부에 나를 집중시키는 것이 아닌 '나 자신에게 집중할 때'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사회는 우리가 개인이 가지는 고통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고 원인을 찾는 행위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주위에는 너무 많은 즐길 거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유튜브 속에는 너무나 많고 흥미로운 시청각 자료가 많고 뉴스는 매일 새로운 소식들을 업데이트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통과 허무에 귀 기울일 에너지가 부족하다. 이는 현대 사회가 주는 과도한 양의 자극에 우리의 주의가 분산되기 때문이다. 때때로 우리가 고통스럽고 허무할지라도 그 감정은 찰나에 그치고 곧바로 문화가 주는 다른 관심 분야에 주의를 빼앗기게 된다. 우리 현대인들은 중요한 이야기를 듣기에 주의는 분산되어 있으며 해야 할 일은 많다. 


 좋은 육아를 위해서 우리는 먼저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선 우리 스스로를 성찰하고 과거를 탐구하며 우리의 내면의 상처를 발견하고 치유해야 한다. 또한 현대 사회의 모습이 어떠한지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통찰 역시 지녀야 할 것이다. 훌륭한 부모란 훌륭한 인간이며 자기를 사랑하며 독립적인 동시에 인간에 대한 공부와 사색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옛사람의 이야기처럼 끊임없는 공부와 스스로를 닦는 수신의 자세가 우리의 존재를 가치 있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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