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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태용 Aug 22. 2019

13. 우리가 제시할 이정표

부모가 제공하는 두 가지 이정표 

 부모는 자녀에게 자녀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제공하려 노력한다. 책을 보고, 다른 부모의 양육 노하우를 배우며, 누구보다 자녀의 성공을 응원하고 지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모의 이정표를 따라 자라나는 아이들은 흔치 않다. 즉 많은 아이들이 부모가 제시하는 이정표를 결국 거부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부모가 자녀에게 이정표를 더 강요할수록 자녀들은 반항이라도 하듯이 더더욱 그 이정표를 거부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모방하기를 좋아한다. 작은 습관부터 말버릇, 세상에 대한 태도 또한 자녀들은 우리를 닮는다. 자녀는 본능적으로 부모의 모습을 롤모델, 즉 이정표로 삼아 모방하고 성장한다. 부모를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이의 머릿속에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것처럼 아이들의 모방은 정확하고 범용적으로 행해진다. 부모는 자녀에게 두 개의 이정표를 제공하는 셈이다. 첫 번째 이정표는 그 자신들의 삶의 모습이며 두 번째 이정표는 그들이 자녀에게 이야기하는 이상적 모습이다. 자녀는 혼란스럽다. 어릴 때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그것을 이정표 삼아 살지만 부모는 그동안 모방했던 그들 모습의 이정표 대신에 새로운 이상적 이정표를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어떤 이정표를 따라야 할까? 


 우리가 이상적이라고 하는 이정표는 대부분 타인보다 나은 삶이다. 보다 나은 직업과 보다 부유하게 살며 좋은 집에서 좋은 배우자를 얻는 것을 성공한 삶이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사회가 정해준 기준이기도 하다. 경쟁에서 승리한 삶을 사는 것.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승리란 1%의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되었다. 수능에서 오직 1%만이 뛰어난 학벌을 얻고, 사회에서 1%의 부자가 전체 절반의 부를 차지한다. 뛰어난 재능과 기반을 갖추지 못한 99%는 또다시 우리 세대와 같이 패배에 익숙해지게 될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 자녀가 승리할 가능성의 평균은 여전히 1%이다. 사실은 1% 이하다. 기득권층의 자녀들이 경쟁에서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자녀에게 제시하는 이정표는 맞는 방향인가? 1%가 되는 자녀를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를 하기에 우리의 어깨는 약하고 병들어 있다. 전력투구를 한 뒤 우리는 부상으로 다시는 공을 던지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며 공은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육아 방향은 어딜 향해야 하는가? 


 다시 전략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전략을 짠다는 것은 해도를 그리는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선장은 수많은 길 중 가장 적합한 길을 선택한다. 선장은 해적의 출몰 가능성, 해류의 방향, 풍향과 풍속, 태풍의 존재와 같은 모든 것을 고려하여 최적의 길을 찾아 목적지로 향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은 전략을 짜기에는 정해진 목적지가 없이 태어난다. 선장은 파도를 헤치며 항해하는 것도 바쁜 와중에 목적지까지 정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인생이란 바다의 파도는 거센 편이라 순항하는 것도 버거울 때가 많다. 그렇기에 보통 부모가 알려준 목적지를 따라 파도를 헤치며 배는 나아간다. 하지만 항해를 계속하다 보니 부모가 알려준 목적지에 다다르기는 힘들고 선장은 다른 곳을 목적지로 바꿨다. 그리고 결국 선장이 원한 목적지에 다다르게 된다. 위 이야기의 선장 정도의 인생이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선장은 어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자신의 목적지를 찾지 못한다. 그리고 부모가 정해준 목적지에 도달하기 싫음에도 꾸역꾸역 그곳으로 향하는 선장도 있다. 그리고 가고 싶은 목적지는 있지만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 이도 저도 못하고 표류하는 배들도 많다. 


 성공한 항해란 자신이 원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아주 빠르게 도달할 수 있고 누군가는 다 늙어서야 도달할 수도 있다. 다행히 부모가 가르친 목적지와 같을 수도 있고 아주 다른 방향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배의 선장은 자신이기에 인생의 바다에서 성공이란 선장이 정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제시하는 이정표를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선장은 스스로가 원하는 목적지를 찾고 다가가기에는 더 요원해진다. 앞서 말한 부모가 제시하는 두 가지의 이정표 가운데 부모의 삶을 통해 제시하는 첫 번째 이정표는 자녀를 양육하는 한 반드시 자녀에게 주어진다. 자녀는 부모를 모방함으로써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하기 시작한다. 누구나 처음 바다를 항해하는 기본적인 항해법은 배워야 하는 법이다. 부모는 두 번째 이정표를 추천하고 장려할 수는 없지만 결코 강요해서는 안된다. 배의 목적지는 선장이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장은 부모의 두 번째 이정표를 따를지, 새로운 이정표를 따라 항해할지 그 자신이 정한다. 그것이 훌륭한 삶의 방향이다. 


 부모는 자신의 삶을 통해 자녀에게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는 기본적인 기술들을 가르친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으며 어디서 행복을 추구하고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부모를 통해 배운다. 그리고 자녀는 독립성을 얻음에 따라 본인의 이정표를 정해 항해하여 목적지에 다다른다. 물론 목적지에 도착하면 새로운 목적지가 있어 살아 있는 동안 끝없는 항해가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나는 부모는 하나의 이정표만 제시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의 이정표만 제시하기엔 인생이란 바다가 너무 거칠고 파도도 높다. 시시 때때로 해적이 나타나기도 하고 태풍이 불기도 하는 이 인생의 바다를 건너기에 우리의 자녀들은 너무 연약해 보인다. 그렇기에 나는 부모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두 번째 이정표를 제시하는 대신 자녀의 배를 더 튼튼하게 만들라고 말이다. 


 예를 들면 책을 읽혀 사고력을 높이는 것은 자녀에게 이정표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자녀의 기본 스펙을 높이고 삶을 보다 현명하게 살아가는 힘을 제공한다. 즉 배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다. 나무 대신 단단한 철을 이용해 배를 만들면 배는 강한 파도에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바람만 이용해 배를 운행하는 것보다 모터를 달아 주면 배는 더욱 빨라지고 바람과 상관없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자녀의 통찰력과 행동력을 키우는 것이 그러하다. 통신 기술을 배애 접목하여 다른 배나 인터넷에 접속하게 하여 날씨를 알게 된다면 배는 태풍을 피할 수 있다. 자녀의 사회성을 키워 주는 것이 그러하다.  


 많은 부모들은 이러한 기본 스펙을 키우는 것에 돈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비싼 사교육과 많은 체험들은 당연히 자녀들의 지적 능력을 키우고 경험을 풍부하게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교육은 단순히 시험과 같은 평가에서 뛰어난 점수를 얻는데 특화되어 있다. 내신을 잘 보고, 토익, 토플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수능을 잘 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사교육이다. 이런 것들은 눈에 잘 보이고 타인과 비교하기에도 좋다. 하지만 뛰어난 인간의 근본에는 다른 것들이 있다. 원활한 사회성, 깊은 통찰력, 자유로운 감정 조절, 유창한 언어적 능력과 같은 것들은 뛰어난 인간이 지닌 가치들이며 평가하기도 어렵고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능력이다. 이런 근본적인 능력들이 뛰어난 아이들은 혼자서 공부해도 뛰어난 성적을 얻으며 사회에서 놀라운 업적을 이룩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근본적인 능력들의 본질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이런 능력들을 함양할 수 있는가? 아무리 찾아보아도 통찰력을 길러주는 학원은 없다. 


 그렇다면 인생이란 바다를 항해하기 좋은 배는 어떤 배이며 탁월한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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