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스플리트에서의 첫날은 비와 함께 시작되었다. 창가 옆에 둥지를 튼 나는 일찍부터 비가 오는 걸 눈치채고 있었지만, 쉽사리 이불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이불이 무겁다기보다는 내가 이불을 걷어낼 힘이 나질 않았다. 얼마간의 침대 여행을 마치고 이불 밖으로 나와 주방에서 커피를 내려 창가에서 비 오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배짱인지 건너편 옥상에는 빨래가 널려있었고 우산 없이 거리는 걷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 골목을 지나는 파란 우산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찰칵’ 방안에 울려 퍼지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고 혹시라도 당신이 들었을까 싶어 급하게 몸을 숨겼다. 방안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지 누구 봤다면 변태로 오해받기 좋은 행동이었다.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무래도 나는, 죄짓고는 못 살 성격 같았다.
거리에는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이 우산 들고 연신 사진을 담고 있었다. 그런 나도 카메라를 들어 골목을 거닐었고 부둣가를 지나 천천히 언덕으로 올라갔다.
바다는 침묵 뒤로 몸을 숨긴 채 가만히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이런 고요함은 오히려 좋았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고요함과는 다른 종류였다. 무심히 음악을 튼다거나, 의미 없이 냉장고 문을 열어보는 거로 고요함을 달랬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확실히 그때와는 달랐고 이번엔 누군가가 나를 달래주는것 같았다. ‘당신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 고요함을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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