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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y 02. 2016

잠꼬대

박지윤



























창문을 열어 두었지만, 누군가 머물렀던 어제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매번 다른 침대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았다. 남은 온기 위에 잠들었던 밤, 꿈속에서 당신을 본 것 같았다. 정확히 얘기하면,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앞서 걷는 뒷모습이었으나 내겐 너무 익숙한 모습이었기에 그것만으로도 당신이란 걸 단정 지을 수 있었다. 한 번쯤 뒤돌아볼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아 내심 서운했으나 설령 돌아본들 또 병신처럼 아무 말 못 하며 발등만 보고 있을 테니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눈을 떴을 땐 아침이었고 어김없이 걸어야 할 시간이 되어 있었다.

걸었고, 또 걸었다. 이곳에선 그거 하나만 하면 되었다. 천천히 언덕을 올라 십자가와 마주 섰다. 작게만 보였는데… 이렇게 큰 줄은 미처 몰랐다. 쓱, 한번 기둥을 쓰다듬고 내려오는 길, 멀리 보이던 마을이 흔들리며 번지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닌데…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가로 등불이 퍼지며 방울이 맺혔고 그 여파로 어깨가 흔들리며 자꾸만 손등으로 뺨을 닦아냈다. 침대에 두고 왔던 온기가 그리웠던 새벽이었다.

날이 밝아 오더니 흔들림은 멈추었고 이네 안정을 찾았지만, 갑작스러운 찾아 든 고요함이 무서웠다. 그 무서움을 달래야 했으나 아직은 그 방법을 몰랐을뿐더러 혼자 떠난 여행이었으니 어떻게든 내가 나를 달래야만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오늘, 나를 재워줄 자장가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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