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윤
창문을 열어 두었지만, 누군가 머물렀던 어제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매번 다른 침대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았다. 남은 온기 위에 잠들었던 밤, 꿈속에서 당신을 본 것 같았다. 정확히 얘기하면,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앞서 걷는 뒷모습이었으나 내겐 너무 익숙한 모습이었기에 그것만으로도 당신이란 걸 단정 지을 수 있었다. 한 번쯤 뒤돌아볼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아 내심 서운했으나 설령 돌아본들 또 병신처럼 아무 말 못 하며 발등만 보고 있을 테니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눈을 떴을 땐 아침이었고 어김없이 걸어야 할 시간이 되어 있었다.
걸었고, 또 걸었다. 이곳에선 그거 하나만 하면 되었다. 천천히 언덕을 올라 십자가와 마주 섰다. 작게만 보였는데… 이렇게 큰 줄은 미처 몰랐다. 쓱, 한번 기둥을 쓰다듬고 내려오는 길, 멀리 보이던 마을이 흔들리며 번지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닌데…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가로 등불이 퍼지며 방울이 맺혔고 그 여파로 어깨가 흔들리며 자꾸만 손등으로 뺨을 닦아냈다. 침대에 두고 왔던 온기가 그리웠던 새벽이었다.
날이 밝아 오더니 흔들림은 멈추었고 이네 안정을 찾았지만, 갑작스러운 찾아 든 고요함이 무서웠다. 그 무서움을 달래야 했으나 아직은 그 방법을 몰랐을뿐더러 혼자 떠난 여행이었으니 어떻게든 내가 나를 달래야만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오늘, 나를 재워줄 자장가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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