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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Oct 26. 2021

불면유발자 - 사랑을 얻고 숙면을 잃었다.

개, 고양이, 인간의 수면패턴에 관한 고찰

이전에 수면에 대해 작은 일화를 썼었다. 우리는 모두 잠이 많고, 잠의 소중함을 아는 식구들이었다.

다만 사람보다 동물 친구들에게 잠은 좀 더 삶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


신혼부부들이 처음 살림을 합치고 나서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수면패턴'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잠귀가 밝은 이가 있는가 하면, 누가 왔다가도 모를 만큼 깊은 잠에 빠지는 이가 있다. 자정 이전의 취침을 중시하는 이와, 고요한 한밤중의 적막을 즐기는 이도 있다. 살짝 새어 나오는 빛을 용서할 수 없는 이와 아침해와 함께 눈을 떠야 하는 이도 있다. 그래서 많은 부부들이 여기서 기인된 이유 없는 피로함을 느낀다고 한다.


간단히 우리의 수면패턴을 고민해보았다.

우리도 그러했다.

더군다나 이종들과의 수면은 더욱 그러하다. 비교적 9 to 6의 업무 패턴을 갖고 있는 나 때문에 푸코는 9 to 6을 잘 지켰다. 아침 8시, 저녁 8시는 푸코의 식사시간이다. 일어나서 밥을 먹고 자기 전에 밥을 먹는다.

푸코는 잠귀가 꽤 예민한 개다. 귀가 위로 열려 있어서 그런 건지 보호소에서 여러 개들과 있었던 경험 때문인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잠귀가 예민해서 보통의 사람들이 자는 적막하고 움직임 없는 그런 시간에 함께 잔다. 혹은 사람이 출근하고 난 뒤 낮시간에 낮잠을 혼자 즐긴다.

그래서 휴가로 하루 종일 사람이 집에 있게 되면 푸코는 웬일인지 조금 예민하고 까칠해진다.(숙면 부족) 종종 일부러 집 근처 카페로 푸코가 숙면할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한 적도 있다. (그러나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둔해진 건지 사람이 있어도 곧장 자리를 잡고 자기도 한다.)


푸코의 새로운 애착인형

두부는 다르다. 두부는 24시간 중 14~16시간을 잠 속에서 유영하는 걸로 추측되는데, 그 시간은 두부가 온전히 결정한다. 자신의 허기를 참지 않는다. 굉장히 능동적이다.

어느 날은 머리맡에 앉아 한 시간 가량을 울었다.


‘냐옹, 냐옹, 냐아오오옹'


대충 밥 달라는 뜻으로 추측된다. 나는 잠귀가 꽤 어두운 편이라 쉽사리 일어나는 편이 아닌데 귓가를 라이브로 때리는 두부의 외침은 나를 오전 6시에 깨웠다. 새벽 4시쯤 배가 고팠던 두부는 그날도 나를 깨웠다.

새벽 4시에 두부 밥을 챙겨주고 덕분에 나는 하루 종일 몽롱한 상태로 커피를 들이마셨다.


허기만큼 중요한 것은 애정이었다. 두부는 두부의 애정 게이지를 채워야 한다.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인데, 씻고 침대에 호로록 들어가면 두부가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어느새 옆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머리를 들이민다.

'만져.'라고

신나게 그르렁 소리를 내며 사람의 손길에 템포를 맞춘다. 졸음이 쏟아져 잠시라도 멈추면 어느새 손을 핥거나 다시 한번 머리를 들이민다.

'계속 만져.'라고


숨죽인 공기를 그르렁 소리로 채우는 두부는 자신의 기준에 어느 정도 충족되면 소리 없이 떠난다. 배가 고플 때까지 녀석을 만날 수 없다. 밤을 신나게 즐기는 두부는 해가 뜨면 밖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도 자신의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 깊은 숙면의 세계로. 불러도 대답 없이, 숙면에 빠진다.


숙면의 세계_ 어디서든 잘자요


푸코든 두부든 처음엔 각자의 잠자리에서 수면을 시작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모두 집에서 가장 푹신하고 풀향기가 실려오는 곳으로 모여든다. (푸코에게는 마약방석 및 집, 그리고 두부에게는 캣타워가 있는데 이 둘은 이미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퀸사이즈의 작지 않은 침대는 이런저런 하루의 사연을 가진 이들로 가득 채워진다. 물론 습관이 들지 않은 녀석들은 사뿐히 사람을 지르밟아 잠을 깨우곤 한다.


우리집 DMZ

널찍한 침대를 늘 혼자 차지하던 나는 이제 몸을 뒤척일 때마다 조심스럽다. 혹시나 타인의 잠을 방해하거나 혹은 내 몸짓이 녀석들의 과거를 들쑤셔 긴 밤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 덕분에 선잠을 잔다. 문자 그대로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아침. 이 글을 적어 내려가는 지금도 쓰리샷의 커피를 마시며 잠을 쫓고 있지만 왠지 피곤한 눈을 가까스로 떴을 때 녀석들의 엉덩이와 머물렀던 뜨뜻한 자리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꽤 허전할 것을 안다.


굳이 굳이 저렇게 다 같이 모여서 누울 필요가 있던가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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