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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Nov 01. 2021

이름이 초코라구요?

멍멍이 명명에 관한 해명

푸코의 이름은 <감시와 처벌>로 유명한 철학자 장 미셸 푸코에서 따왔다. 푸코를 구조한 찬은 철학을 사랑했고, ‘Foucault’라는 이름은 철학에 어울리는 반면, '푸코'라는 이름은 왠지 살짝 띨빵한 표정을 지닌 멍멍이에게 잘 어울렸다.

프랑스 철학자 장 미셸 푸코


(올드독 작가님의 강아지 '풋코' 외에 한번도 푸코라는 강아지를 본 적은 없다.)


푸코의 이름은 전혀 받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발음하기가 어려웠다. 푸 하고 공기를 뱉어낸 후 재빠르게 코 하고 공기를 흡입해야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다. 덕분에 어른들은 온갖 독특한 이름으로 푸코를 불러주셨다. 푸첸, 쿠쿠, 쿠키, 푸쿠, 초코, 포코 등 초성이 파열음의 자음 두개로 명명됐다. 그렇게 우리 할머니에겐 '초코'가 되었고, 엄마는 푸코라는 빠른 발음이 어려워 '푸우코'라고 부르신다. 아빠는 '푸코'와 '코코' 그 경계를 적당히 뭉뚱그려 부르곤 한다. 초코든 푸우코든 푸코코든 누렇고 식탐 많은 강아지는 똑같다.

가을에 부른 푸코.


우리나라 강아지 이름 순위(2021한국반려동물보고서 - KB증권)

1위 코코 16,391마리
2위 보리 15,116마리
3위 콩이 13,721마리
4위 초코 13,387마리
5위 두부 9244마리


인데 푸코는 코코도 아니고 초코도 아니다. 그래서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이름이 왜 푸코에요?'

'아, 프랑스 철학자 이름에서 따왔어요.'

'아하, 처음 듣는 철학자에요!' 라는 반응과 '아, 그 푸코!' 라는 반응으로 갈린다.


한번은 자주 산책하던 곳에서 너무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산책을 자주 하다보면 비슷한 시간 대에 마주치는 이들이 있다. 그중 한 분은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한다.

'강아지 이름이 뭔가요?'

'푸코에요.'

'거참 너무한 주인이다. 그지?' 라며 푸코에게 나를 나무랐다. 겸연적은 웃음을 짓고 집으로 돌아섰다.


그 얘기를 듣고 고민했다. 내가 만약 푸코를 처음 만나서 이름을 지어야 한다면 뭐로 하지? 생각지도 못한 고민에 한참을 고민했다. 지인들의 강아지 이름을 떠올렸다. 스카, 감자, 벼리, 호두 같은 이름부터 구찌, 돼지, 다비까지 각양각색의 이름들이 있다. 아마 푸코의 누렁털을 보고 나도 누렁 계열의 이름을 붙여주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푸코의 인스타 친구들(주로 황색 시바가 많다.)을 보면 망고, 호두 같은 누런 이름들이 많다. 우리에게 오기 전 푸코의 이름은 뭐였을지도 궁금하다.

초창기 푸코를 만질 때, 싸늘하게 날아오는 눈빛


발음하긴 어렵지만 책을 읽다가 푸코 덕에 맥락없이 웃는 구간들도 있다. 진짜 철학자 '푸코'의 책이 여기저기 많이 인용되는데 꽤 진지하고 고민해서 읽어야하는 구간에 '푸코의 말에 의하면'같은 문장이 나온다. 그러면 우리집 누렁이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우리 푸코는 이렇게 똑똑하게 말했을리가 없는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생각을 잠시 끊어버리지만 덕분에 재미없을 법한 책도 재밌게 느껴진다.


너무나도 고전적인 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처럼 우리 강아지도 '푸코~' 하는 나의 목소리에 반응하고 누렇고 묵직한 꽃이 된다. 그리고 그는 음성언어가 아닌 온몸으로 나를 부른다.

푸코에게 인식표를 처음 걸어주었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각자에게 고유성을 부여하는 일이자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일이다.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많은 걸 의미한다. 과거 '명찰'은 이름을 통한 권력의 비대칭성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교사는 학생의 이름은, 고객은 점원의 이름을 알고 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또다른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수많은 학생들, 점원들 중 나는 너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권력이 형성된다. 족보는 그런 이름의 권력을 보여주는 또다른 예다. 과거엔 모두가 족보에 이름을 올릴 수 없었다. 족보에 '이름'이 씌여짐으로써 개인은 비로소 존재한다.


영화 <옥자> 중

영화 <옥자>에서도 수많은 슈퍼돼지와 옥자를 나누는 기준은 이름을 소유하고 있느냐 없느냐로 나뉜다. 어떤 개별성을 인정하는 일.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다. 그러기에 반려동물을 맞이하는 가정은 고민끝에 녀석의 이름지어 부른다. 고유한 사랑이 끝까지 함께 하길 바라며.


푸~ 코~




푸코의 반응을 하찮아 하는 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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