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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Nov 12. 2021

강아지와 순간을 포착하는 일

EP21_반려동물과 사진 찍기_난이도 : 하

나는 종종 눈에 담은 장면들을 흘리고 싶지 않아서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다. 그리고 어딘가에 게재할 때는 하나하나 신중하게 골라내는 편이다. 신중하게 이미지를 고르는 것 치고는 용량이 가득차서 클라우드에 매달 돈을 쓰고 있다.


그렇게 모여드는 사진들 중 특히 내가 작위적으로 포즈와 웃음을 짓고 있는 건 영 어색하다. 애매한 미소, 애매한 손 동작, 어색한 시선처리 등. 아마 카메라 앞에 설 일이 별로 없는 이들이라면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위로를 해본다.

강아지 사진이 더 많다… 껄껄

그럼에도 눈에 보기 좋은 것들을 렌즈에 담는데, 코로나 이후로 외출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반려동물 사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덩달아 거미랑 달팽이 뭐 그런 마당에서 발견하는 생물들..)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그 자연스러움 때문에 푸코와 두부의 사진을 열심히 찍게 되었다. 사진첩에 온갖 희고 누런 털뭉치 사진이 한가득한 걸 보면서 뿌듯하다. 수많은 사진들 중 어떤 사진을 사람들과 공유할까 하고 한참을 고민한다. 둘에 대한 내 애정이 드러나는 사진, 그리고 녀석들의 사랑스러움이 잔뜩 묻어난 사진을 최종적으로 고른다.


<윤미네 집> 이라는 토목공학자인 아버지가 딸 윤미가 시집갈 때 까지의 사진을 찍어 낸 개인의 사서(史書)가 있다. 평범한 보통의 순간을 그는 매순간 특별하게 포착했다.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 역시 각자의 삶의 중간쯤에 만난 우리들의 기록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였던 것 같다. 브런치를 시작할때 쯤 책을 진지하게 다시 보았다.


전몽각, <윤미네 집>


그런데 항상 녀석들의 사진만을 찍다보니 아쉬움이 슬그머니 피어났다. 특별한 사건이 있지 않는 이상 두 녀석 모두 나보다 먼저 떠날 것이고, 내가 나이드는 속도보다 녀석들이 빠르게 나이들 것이 자명했다. 문득 우리가 함께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녀석들의 순간에 내가 존재했음을 기록하고 싶었다. 언젠가 녀석들이 먼저 곁을 떠나도 내가 그때의 나와 그때의 너를 기억할 수 있게 말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영험한 힘은 크다.


사진은 (그림을 이미지라고 할 때의) 이미지일 뿐 아니라 실재의 해석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발자국이나 데스마스크처럼 실재에서 직접 본을 뜬 흔적이기도 하다.
-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지인들이 우리를 찍어주는 순간들을 소중히 보관했다. 그럼에도 푸코와 나만이 나누고 있는 시간들을 담아두고 싶었다. 우리는 매일 산책을 하는데, 어떤 날은 그 빛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대기의 색과 향이 너무 좋아 같은 날 여러번 간 적도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둘만의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로 셀프 사진을 찍는건 영 불편했고, 어디서나 손에 들려있는 핸드폰을 선택했다. (산책시간을 방해 받기 싫어 핸드폰을 두고 다녔다가 푸코와 사진을 찍은 이후로는 거의 챙기고 다닌다.)

'찰나, 포터블, 스냅'이란 말들에 핸드폰을 이길 수 있는 게 있을까. 그 때 부터 산책을 다니다가 놓치고 싶지 않은 풍경을 만나면 돌부리에 전화기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 한가득 돌부리가 나오는 시행착오도 많고 버릴 사진도 많았다. 필름 카메라가 아닌 게 천만 다행이다.


산책을 자주 하다가 멋진 풍경이 나오면 잠시 멈춰서 돌부리에 핸드폰을 기댄다.


그렇게 '잘' 찍어보려고 했으나 특별한 도구 없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개를 그저 '잘' 찍는다는 건 욕심이였다. 우리는 그냥 그 순간에 너와 내가 있었다는 것을 담기로 했고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둘 다 어색해 하는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으며 마주보고 있는 순간들을 담았다. 물론 아이폰의 연사기능이!


내가 남기고 싶은 건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였다. 세상에 우리들이 존재했음을 아로새기는 그런 의식같은 행위다. 그러니 사람들이 왜 이렇게 sns에 사진들을 보여주고 싶은 지 조금 이해가 된다.(나 포함) 세상에 자기를 새기는 행위. 그렇게 존재를 인정받고 세상에 나를 각인시키고 흔적을 남겨서 입증하고 싶은 그런 마음 아닐까.


우리끼리의 셀카. 푸코의 접힌 턱살

사진이 너무 많아져서 정리하는 건 또다른 과제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데 그걸 추리는 과정에서도 또한번 우리가 같이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다만 단순히 머리색, 옷의 두께만이 변하는 나와 달리 녀석의 누런 털이 점차 희어지고 입술이 점점 거뭇해지고 녹내장으로 보이지 않는 왼쪽 눈이 점점 작아졌다는 것도 느낀다. 녀석의 털이 더이상 윤기나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돌부리에 전화기를 세워놓고 담아내고 싶다.

지금도 나는 네 옆에 있다고. 가끔 우리의 사진을 찍지 못할 때가 올까봐 아득하지만 그 순간을 후회없이 맞이하기 위해 오늘의 순간을 포착해본다.


이런 마음으로 사진 찍기 싫어하는 엄마에게 셀카를 권한다. 사진을 본 엄마는 말했다.

‘안 예쁘니까 지워줘.’


ㅜㅜ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들. 의식하지 않은 채 찍히는 사진이 좋다.
그렇게 모이고 모인 사진들은 펼쳐진 서사가 된다.

TMI. 두부와 사진찍기는 극강의 난이도를 보인다. 고양이 혼자 찍기도 어려운데 인간과 함께라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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