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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Oct 22. 2021

나 산책하다가 고라니 봤다! : 강아지의 산책 후기

EP17_ 푸코가 두부에게 들려주는 바깥세상

은근한 대화 시도 중

두 : 푸코야, 주인이랑 나가서 뭐해?

 : 글쎄, 다른 친구들 냄새도 맡구, 꽃도 보구, 쉬야도 하고 그래.

두 : 오늘은 뭐 봤어?

 : 오늘은 연못 다녀왔어.  친구들이 돌이랑 나무에 왔다 갔다고 써놨길래, 답장하느라  바빴어. 처음 보는 애들도 요새는 나무 같은데 써놓더라. 먹을  빼고 쪽지에 답장할 때가 제일 좋아. 가끔 주인이 원래 가던데 말고  길로 가면 궁금해 죽겠어. 애들이 뭐라고 써놨을지.

두 : 우와, 친구도 만나? 너 조용해 보였는데 인싸구나.

 : 아니. 가끔 스치듯이 만나는 애들도 있는데 요새는 거의 쪽지만 주고받고 있어. '이거 내 땅. 김푸코 왔다감.' 이렇게.

두 : 또? 그냥 쪽지만 주고받았어?

 : 아아아, 연못에 엄청 큰 꽃 폈다! 진짜진짜 왕왕 커. 정확히 색깔은 모르겠는데 엄청 커서 그런가 사람들이 모여서 구경하더라. 그리고 잎도 왕왕 커. 그리고 물에 동동 떠있어.

 

푸코가 본 자이언트 빅 왕 연꽃

두 : 너 물 좋아해? 난 물에 젖는 거 싫어.

 : 아 나도 보는 거 더 좋아해. 암튼 비 온 후라 연못에 물도 많고, 꽃도 짱짱 많았어. 아 그런데 갑자기 엄청나게 낯선 냄새가 나는 거야. 완전 처음 보는 냄새였다? 가끔 산으로 산책 다닐 때 냄새가 나긴 했었는데, 그렇게 진하게 나는 건 처음이였어. 그래서 내가 막 신나서 난리 쳤지.

두 : 주인이 아무 말도 안 했어?

 : 그런 거 생각할 틈이 없었다니까? 진짜 처음 맡는 찐득한 냄새였어. 너무 신나서 막 빙글빙글 돌고 주인한테도 말했거든? 근데 바보같이 못 알아듣더라. 근데 뭐가 나타났는지 알아?

두 : 뭐가 있긴 있었어?

 : 너랑 나랑 여지껏 본 적 없는 거였어. (푸코와 내가 본 것은 고라니였다..)


어린이 고라니는 연못에서 허우적 대다 도망갔다.

두 : 우와 인사해보지!

 : 허겁지겁 도망가버렸어. 다음에 보면 인사할게.

두 : 그래. 그리고 또 뭐 봤어?

 : 아, 너랑 비슷한 애들 많이 봤어. 너랑 비슷하게 생겼던데, 내가 인사하려고 하니까 도망갔어. 아마 나는 싫어해도 너는 좋아할걸? 나랑 비슷한 애들은 나 보면 막 달려오는데, 너랑 비슷한 애들은 나 보면 막 도망가더라. 쫌 속상함!


가끔 만나는 동네 길고양이 친구들


두 : 아, 원래 다들 좀 조심하는 편이라 그래. 나도 너랑 얘기하는데 시간 좀 걸렸잖아. 너, 나같이 성격 좋은 고양이 보기 힘들다니까? 나도 한 번 만나보고 싶긴 하다. 누가 내 영역에 들어오는 거 싫긴 한데, 그래도 다른 애들은 어떻게 사나 좀 궁금하기도 해.

 : 가족 같았어. 비슷하게 생겼더라고! 다들 나는 냄새도 비슷하고.

두 : 와, 좋았겠다.

 : 가족 하니까 생각났는데 어떤 할머니 두 분이 걸어가는 것도 봤어. 산책하러 가면 사람들 엄청 많이 만나거든? 할머니들은 보통 나 되게 예뻐해 주신다? 두 분이 나한테 인사해주고 같이 가셨어. 나랑 주인 같아. 둘 중에 누가 강아지일까?


두 : 바보야. 개랑 사람이랑 어떻게 친구 하냐.

 : 그런가? 무튼 그래서 나랑 주인도 뒤 종종 쫓아가는데 주인이 갑자기 멈추더라.

두 : 왜? 너가 똥 싼 거 아니야?

 : 아니야. 주인이 좋아하는 꽃이 있었나 봐. 멈춰서 사진을 엄청 찍더라고. 그래서 나도 한 장 찍어달라 했어. 사실 이거 비밀인데 주인이 사진 찍으면 간식 준다. 그래서 나 가끔 간식 먹고 싶을 때 얌전히 사진 찍어. 이거 봐봐. 근데 이제 점점 공기가 차가워져서 그런지 꽃이 많이 떨어졌더라.


수국과 파란 하늘. 가을로 넘어가는 문턱.

두 : 맞아. 요새 집에만 있는데도 확실히 공기가 차가워졌어. 넌 맨날 밖에 다니니까 확실히 알겠다.

 : 응응, 그리고 털이 바뀌어!

두 : 아, 너 요새 털 휘날리던데. 이제 두꺼운 털 나오는 건가?

 : 응응, 겨울 털로 바뀌어. 어쨌든 오늘 산책 길이야. 맨날 갈 때마다 신기한 거 짱 많아. 산책 너무 좋아! 두부 넌 왜 산책 안 해?


두 : 나는 움직이는 거 귀찮아. 내 구역 안에서 그냥 멀찍이 보는 게 좋더라고. 그리고 너가 가끔 이렇게 얘기해주니까 괜찮아. 나 이제 자러 간다~ 너도 졸려 보인다. 얼른 자. 얘기들려줘서 고마워.

 : 웅 잘 자. 내일 또 갔다 와서 얘기해줄게.


대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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