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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Oct 01. 2021

가을에는 개 털, 고양이 털 온 집안에 흩날리며.

EP12_반려동물의 털

두부가 오기 전, 푸코의 존재를 아는 이들에게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가

'개털 많이 빠지나요?' 였다.


시바에 가까운 멍멍이기에 다들 궁금했었나보다. 별다른 대답 없이 건넨 몇 장의 사진은 많은 것을 설명했다.


손님, 머리 어떻게 해드릴까요? 1회 빗질 서비스.


털갈이 시기의 푸코는 걸어 다니며 오만 데에 털을 묻히고 다닌다. 걸어 다니는.. 뭐랄까. 무튼 털갈이 시기의 우리의 하루 일과는 푸코의 털을 빗기고, 빗긴 털을 모아 버리고, 청소기를 돌리며 털을 줍고 침구에 붙은 털을 모으고.

가끔 콧구멍 속에서 커피잔 안에서 푸코의 털들을 발견한다.


어느 겨울, 검은 코트를 입고 지하철을 탔는데 누군가 뒤에서 조심스럽게 불렀다.

'아가씨, 중요한 데 가나요?' 라며 웬 중년의 여인이 물었다.

'아니요. 무슨 일이세요?'

지하철에서 말쑥해 보이는 이 여인이 나에게 왜 말을 걸었을지 짧은 시간 동안 온갖 생각이 들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도를 아십니까 인가? 하던 찰나

'아니, 중요한 데 가면 옷에 붙은 개털 떼고 가야 할 것 같아요. 너무 많이 붙어있어서요...'

'아이고 네 감사합니다. 돌돌이로 한번 털고 나온 건데 뒤에 여전히 많이 있나 보네요. 감사해요 ㅜㅜ'


3분 만에 이루어진 짧은, 개털에 대한 대화.

그때부터인가 특히 겨울에 우리 집에 방문하는 이들에게 ‘우리 집 올 땐 검은 옷 금지'라는 규칙을 달았다.

미용을 하지 않아도 되는 대신 푸코는 털갈이 시기에 어마 무시하게 털이 빠졌다. 보통 미용을 하는 강아지(홑겹, 관리 안 하면 길어짐, 푸들, 몰티즈 같은 친구들)와 하지 않아도 되는 강아지(삼중겹, 일정 길이 이상 자라지 않음, 진돗개, 시바 같은 친구들) 두 부류인데 푸코는 후자에 해당됐다. 일정 길이 이상 털이 자라지 않지만(머리통이 너무 귀엽다 ㅜㅜ) 빽빽한 털이 공중에 흩날린다. 마치 플라타너스 꽃가루 마냥...


인간은 모공에 두 번인가 세 번 머리카락이 나면 더 이상 나지 않는다는데 푸코의 모공에선 털이 끊임없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뿜어져 나온다. 그래서 자연스레 푸코의 털이 흩날리기 시작하면 공기의 온도가 사뭇 달라졌음을 느낀다.

(여담 : 머리가 많이 벗겨지신 아빠는 푸코를 꽤 부러워하셨다. 이 원리를 연구한다면 인류 3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탈모’를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털을 털어 털. 털. 털.


두부가 온 이후로.


고양이의 털 빠짐은 개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푸코가 시즌별로 털을 뿌리고 다닌다고 하면, 두부는 매일 가늘고 얇고 힘없는 흰 털을 일상으로 만들어주었다. 밥을, 간식을 먹다 보면 어느새 입에서 가늘고 흰털이 느껴진다. 처음 고양이를 빗겨 주고 나서는 혹시 이 녀석이 아파서 털이 이렇게 우수수 빠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냐옹이가 있다간 자리엔 늘 털이 쌓여있다


두 녀석이 집안 곳곳 털을 뿌리며 지내다 보니 아침은 침구 가득한 털을 터는 일과 함께 시작된다. (밤새 두 녀석 모두 침대를 들락날락해서인가 털이 한 가득이다. 이번 가을에 어두운 색 침구에 도전했는데 잘한 일인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털이 잘 붙는 모직 옷보다는 미끌미끌한 소재의 옷을 찾게 되고, 이케아에 가면 돌돌이를 사들고 온다.


털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라면 누구나 맞닥뜨리는 거대한 산 중 하나다. 블로그 유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아니나 다를까 '개털 비염', '고양이 털 비염' '개털 정리' 뭐 이런 키워드다. 이젠 어느 정도 털들에 익숙해진 건지 입안에서 털이 씹히면 살짝 빼고 다시 밥을 먹는다.


푸코가 녹내장으로 꽤 고생을 했던 2019년 겨울쯤이었다. 신장까지 나빠져버린 녀석은 털갈이가 아니라 온 몸의 털이 '움큼' 빠지기 시작했고 꽤 아프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평소에도 푸코에게 '널 진짜 털빨이야.' 라고 건넸던 농담이 미안할 만큼 푸코의 털이 가늘고 빳빳하고 아팠다. 그때 사진을 가끔 보면 마음이 아리다.

아팠던 시기의 털. 아픈 내색을 안하는 데도 아픔이 느껴진다.

그 시기가 지나고 이젠 다시 건강해졌지만 털갈이 시즌을 벗어나 털갈이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괜시리 불안하다. 건강의 척도가 언제부턴가 털의 윤기, 시기에 맞는 털이 빠지고 나는지에 따라 나뉜다. 공기가 사뭇 차가워지면 푸코는 어느새 여름털들을 밀어내고, 눈을 준비하는 털들로 제 몸을 감싼다. 그렇게 나도 계절이 변하는 걸 느낀다.


그렇게나 온 집안에 휘날리는 귀찮은 '털'인데도 두 녀석 다 털에서 윤기가 촤르르 도는 걸 보며 건강히 잘 지내고 있구나 하며 안도한다. 한두 차례 푸코가 아픈 걸 같이 겪으니 건강한 게 최고라고. 빳빳하고 부드러운 털들 열심히 휘날려도 된다고 속으로 되뇌이곤 한다.

우리의 털복숭이 친구들.

아픈 털 시절. 너무 털이 많이 빠져 난생 처음 옷을 입어봤다.


그런데 얘네 털보다 내 머리카락이 더 많이 휘날리는 거 같은건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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