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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Sep 20. 2021

해피추석 그리고 반려동물과 자가격리 하기

EP09_개, 고양이도 코로나를 옮나요?

밀접접촉자라는 통보를 받았다.(가족의 확진)


밀접 접촉 후 내가 거쳐간 곳들을 머릿속으로 재빠르게 복기했다. 출근하고 한 100명 정도는 만난 것 같다. 저녁시간에 통보를 받은지라 다음날 눈 뜨자마자 부리나케 자전거를 타고 선별 진료소로 향했다.

당일 밤, 셀프키트로 우선 음성을 확인했다.

다행히 음성. 그러나 2주 동안 집에 머물러야 한다. 2차 백신까지 맞았음에도 밀접 접촉인 데다, 14일이 지나지 않았기에 자가격리 대상이 되었다.

연휴를 앞둔 터라 2주나 되는 연휴를 어떻게 조심히 야무지게 보낼지 고민하고 있었다.

고민의 시간이 무색하게 자가격리를 하게 됐다.


'그래, 개와 고양이와 행복한 2주를 보내보자. 혼자 있는 것보단 덜 외롭겠지. 이 참에 둘이 오전에 뭐하는지 구경이나 해야겠다.' 하는 순수하고 단순한 마음가짐으로 그렇게 자가격리가 시작되었다.


간호사인 친구의 고충을 아주 조금이나마 간접체험해보며 녀석을 위로하기 위해 연락을 취했다.

'너 반려동물도 코로나 옮을 수 있는 거 알지?'라는 말을 건네받았다. 마음이 복잡했다.

‘녀석들을 호텔링 해야 할지 추석이라 호텔링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개는 맡긴다 쳐도 고양이는 어떡하지.. ' 아직 가족들과 나의 자가격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새도 없이 친구의 말이 쑤욱하고 꽂혀 들어왔다.

푸코와 닮은 친구 Ⓒgettyimagesbank

이 극악무도한 바이러스는 인수공통 감염병이기에 충분히 개나 고양이에게도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친구 이야기를 듣고 검색해보니 실제 국내에도 반려동물의 확진 사례가 있었다. 주인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 반려동물들도 코로나 검사 시행을 한다. 하지만 녀석들을 그것도 종이 다른 둘을 어찌해야 할지 막막했다. 지인들에게 하루 이틀 케어를 부탁한 적은 있었으나 둘 다 노령이고 버림받았던 기억들이 있었었기에 호텔링은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어서 심난했다.


다행히 '동물-사람' 간의 전파는 '사람-사람' 만큼 전이가 빠른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아빠와 접촉을 한 시점이 화이자 2차를 맞은 지 열흘이 넘었을 때였고, 아빠 외에 나머지 접촉자들은 음성이 나왔다. 그렇게 온갖 '괜찮아 회로'를 돌리며 같이 집에 있기로 결정했다. 대신 나는 해 지기 전까지는 웬만하면 마당에 나와있고, 둘은 방에 머물러 있어서 최대한 접촉을 하지 않는 것이 자구책이었다. (비가 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푸코의 고운 털. 산책 어쩌지?

그렇게 공간에 각자의 영역을 대충 정했는데 문제는 푸코의 산책이었다. 야외 배변을 하는 푸코는 산책을 꼭 가야 한다. 하루에 두 번은 가야 매일 뒷산으로 산책 가는 녀석의 활동량을 맞춰줄 수 있다.

감사하게도 자가격리 소식을 듣고 지인들이 푸코를 산책시키러 와주겠다는 연락을 했다. 푸코가 산책시키기 그다지 쉬운 강아지는 아니라 부탁을 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도움의 연락들이 이렇게 감사할 줄이야. 푸코를 사랑해주는 이들 덕에 푸코 털이 저리 고운가 보다.


셋이 하루 종일 붙어있으니 (낮시간에 주로 자야 하는데 이 녀석들은 얼마나 짜증 날까) 하루 종일 녀석들이 자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푸코는 산책을 활발하게 가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다. 두부를 괴롭히려는 시도가 늘었고, 불안하면 가끔 똥꼬가 벌렁벌렁하는데 벌렁거리는 횟수가 조금 늘었다. 일부러 푸코를 마당으로 데리고 나와서 적게나마 활동량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원체 활동량이 많은 녀석에겐 역부족이었다.

휴가를 즐겨본다.

뚱냥이 두부는 주로 캣타워에서만 자는 줄 알았는데 거실 소파에서도 자고, 가끔 침대에 올라와서 자기도 한다. 생각보다 소리 없이 집안을 탐색하는 두부를 찾아내는 일이 재밌다.

또 내가 눈에 보여서 그런지 먹이를 요구하는 횟수가 늘었다. 두부의 끝나지 않는 냐옹 거림에 덕분에 푸코와 나는 잠을 설치는 때가 많아졌고 우리의 부족한 잠과는 반비례로 두부의 몸통은 꽤 퉁퉁해졌다. 둘이 뭔가 대화를 주고받긴 하는 거 같은데 전혀 소통되지 못하고 부서지는 말들이다. 둘의 알 수 없는 케미는 며칠을 관찰해도 알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두부는… 배고픈지 푸코의 곳간을 노렸다.


이전에도 PCR검사를 받았었지만 자가격리 대상이 된 건 처음이다. 자가격리 이후 말 그대로 일상이 아주 정적으로 휙 틀어 움직이고 있다. 나는 반려동물 둘 만으로도 이렇게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할머니를 돌보고 계실 엄마는 얼마나 고될 것이며, (아빠의 주변 식구 모두가 밀접접촉자가 되었다.) 어린 자녀를 가진 부모는 또 얼마나 막막할지 처음으로 코로나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나와 마주친 모든 이들에게 미안함이 한가득 했다. 직장 관리자도 나만큼이나 초조하게 '음성'이라는 보건소의 문자메시지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번 사태로 꽤 많은 공무원, 의료인들과 마주해야 했는데 하나같이 수화기 너머, 마스크 너머로 지치고 스트레스 받은 목소리를 느꼈다. 최전방의 전투병들 덕에 뒤에서 안전하게 반려동물의 코로나를 걱정할 수 있을 테다. 이런 시국에 나만 이렇게 평화롭게 일상을 걱정해도 되는 건지 죄책감 마저 든다.


이 난리통 속에 그나마 좋은(?) 점은 단단하다 못해 경직된 아빠가 틈을 내주었다는 것이다. 항상 가족에 대한, 그리고 스스로의 삶에 대한 두꺼운 짐으로 칭칭 둘러싸던 아빠가 자식들의 도움을 받아들이고 고마워하셨다. 스마트폰을 잘 다루지 못하는 아빠와 한 시간 넘게 통화해본 건 아마 처음일 것이다. 생각보다 나눌 얘기가 많았고, 골절된 허리를 갖고 이렇게 웃긴 얘기를 하는 사람은 아마 아빠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빠는 병상에서도 푸코의 안부를 물으셨다. 먹돌이 뚱땡이라고. 그게 아빠의 애정표현 방식이겠지.


매년 돌아올 추석 때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기엔 코로나가 여기저기서 너무 많은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상흔을 내고 삶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추석의 한 장면이다. 자가격리가 끝나면 부쩍 차가워진 공기를 느끼며 코로나로 있는 듯 없는 듯한 한 해의 끝자락을 희미하게 잡아보려 애쓰는 나를 발견할 테다.


격리기간을 버티며 보낸 일상

1. 새로운 친구를 만남

집 지붕에 고양이가 놀다 갔다. 마당에 누워있다 눈이 마주쳤는데 도망가지 않는 걸로 보아, 이집 터줏대감인듯!

2. 멍멍이 사진을 찍어줌

쿠팡에서 산 배경지로 푸코 증명사진을 찍어주었다.

3. 책을 읽음

하루끼와 고양이

+ 코로나로 반려동물 수요가 늘었다고 한다. 오래 집에 체류하다 보니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기 위해 반려 식물 및 반려 동물을 찾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제발 버리지 않길 바란다. 코로나가 준 쓰라린 교훈을 완전히 망각하는 행위다.

+ 자가격리 통보와 동시에 책을 잔뜩 주문해서 하루에 두 권씩 읽고 있다. 브런치를 쓰다 보니 나의 허접함으로 글이 가득 차 부끄러워진다. 아무 방해 없이 책을 오랜만에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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