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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Nov 08. 2021

단언컨대 최고의 아이스브레이커

사람들은 작고 귀엽고 소중한 것들을 사랑한다.

방송엔 절대 불패의 일명 '3B'라는 게 있다고 한다. beauty(미인), baby(아기), beast(동물). 이 세 가지 소재를 활용하면 못해도 평균 혹은 평균 이상의 주목도를 끌 수 있다는 것이다. 셋 중 어느 것 하나 없던 나에게 푸코와 두부 덕에 마지막 B가 생겼다.


나의 유일한 B, 푸코와 산책할 때마다 사람들이 참 친절하고 선하다는 걸 느낀다. 서울숲으로 산책을 가면 나들이에 한껏 꾸민 젊은 아가씨들, 연인들이 푸코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어주었다. 가끔 가족들과 산책 나온 아가들도 '멍멍이다~'하며 푸코에게 힘껏 다가와주었다. 몇 년 사이에 ‘시바’ 견의 인기가 많아진 바람에 시바는 아니지만 살짝 닮은 누렁이는 시바로 오해를 받고 예쁨도 받았다.


새로 옮겨온 동네는 어르신들이 많은데, 시바견보다는 진도견이 더 친숙한 어르신들도 푸코를 볼 때마다 한 마디씩 던지고 가신다. 대답 없는 녀석에게 ‘암캐인가~? 진돗개냐?’ 하며 물어보시면, '수컷이에요.', '섞인 종이예요.', ‘진돗개는 아니에요.’ 하면서 대변인처럼 푸코의 내막을 설명한다. 종종 다른 견주들과 마주치면 배변봉투를 나누기도 하고, 각자 강아지의 이름과 나이, 성별을 묻기도 한다. 특히 푸코처럼 스트릿 출신의 강아지들을 만나면 서로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나눈다.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라는 기복의 인사를 주고받는다. 이렇게 푸코와 산책을 나가면 초면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된다.

 

간식을 나눠먹어요:)


사람뿐만 아니라 네 발 달린 동물에게 우호적인 공간들도 더러 있는데 그리 고맙고 반가울 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아직 소형견에 비해 중 대형견을 환영하는 가게가 많지 않다. 반가움에 가게 문을 열면 여지없이 그곳에도 털 뭉치들이 있거나 그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출근한 주인장이 있다. 점주, 손님들 모두 푸코를 반겨주시는 덕에 둘이 산책 겸 여행으로 그런 가게들을 찾아 나선다. 공간의 한 곁을 털북숭이에게 기꺼이 내어주시니 감사할 따름. 나 혼자 갔으면 지나가던 ‘손님 1’이 될 뻔한 가게들도 푸코와 자주 방문하다 보니 '푸코와 반려인'으로 각인된다. 간혹 푸코를 위해 간식을 챙겨놓아 주시는 따뜻한 환대를 녀석도 느끼는 것 같다. 가게 앞을 지나치지 못하고 어느새 문 앞에 자리 잡고 앉는 걸 보면.


코로나로 인해 늘어난 비대면 회의와 수업으로 인해 자연스레 거주공간이 직장이 되면서 그만큼 노출될 일도 많아졌다. 이 말은 즉슨, 일상에서 푸코와 두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업무시간에 둘은 아주 조용히 강렬하게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반려인 옆에 붙어있기를 좋아하는 어떤 날의 두부는 갑자기 모니터 화면 앞을 스리슬쩍 지나간다. 크고 하얀 털 덩이가 화면에 등장하니 사람들이 놀라기도 즐거워하기도 한다. 반면 푸코는 뒤에서 묘한 소음들을 만들어낸다. 장난감 간식 돌돌이를 돌려서 드르륵 소리를 내거나 토독토독 발톱으로 바닥을 밀어내는 소리를 만든다. 회의를 하다 보면 어느새 둘 중 하나는 무릎에 앉은 채 진행되기 일쑤다. 간혹 브레이크 타임에 푸코나 두부를 보여 달라는 이들도 많으나 막상 보여주려고 하면 녀석들은 슬그머니 사라진다. 회의나 수업을 위해 공들여 준비한 아이스브레이킹용 자료들보다 푸코 혹은 두부를 화면에 비췄을 때 호응과 주목도가 더 좋다. 앞서 말한 3B의 효과를 여실히 확인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의 '견'은 '개 견' 자일 듯.


두 녀석 덕에 잠시 멀어졌던 관계들과의 연락이 한결 매끄러워지기도 한다. 녀석들의 귀여운 모습을 담아 프로필 사진으로 바꾸면 사람들에게 종종 연락이 왔다. '강아지 너무 귀엽다.', '고양이 예쁘게 생겼다.' 같은 따뜻한 문장들로 사진에 담아낸 애정을 읽어주어 대화의 물꼬를 튼다. 개, 고양이의 이야기로 문을 열고 각자의 안부를 나누다 언제 밥이나 먹자며 이야기를 닫는다. 또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와는 각자의 반려동물의 엉뚱한 순간을 공유하며 인사하기도 한다. 모든 관계가 팽팽할 수 없지만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관계들과도 푸코와 두부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어느새 무해하고 애정 어린 문장들이 쌓인다.


(좌) 엄마의 핸드폰 배경화면 (우) 친구들과 한 라이브 방송


더욱 재미있는 건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커져가는 푸코의 역할이다.


아이와 성인 그 사이였다. 학창 시절의 나는 여느 대한민국의 평범한 수험생처럼 마음과 시야 모두 협소했고, 시험을 위한 공부만 하며 스스로를 고립했다. 가족을 비롯한 타인과 정서적으로 단절되었던 그 시기가 여전히 비어있다. 성인으로, 독립적인 주체로 단단해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그 시기. 오로지 좋은 대학과 성적을 위해 내 대부분의 더듬이를 잡아 뜯어버렸던 시기. 부모님은 학업으로 잔뜩 예민하고 날이 선 딸의 눈치를 보기 바빴고, 가족이란 이름만 존재했을 뿐 실재하지 않았던 그 시기에 아버지와의 대화가 있을 리 만무했다. 덕분에 형성된 어색한 공기를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고 지금도 어색하게 비어있다. 나에게 ‘가족’은 정서적인 교감은 부재한 채 물리적 공간만 나누던 공동체랄까.


어느덧 나름 사회생활의 안정기가 찾아왔고, 경제적 독립이 가능해진 틈에 헐레벌떡 집을 나왔다. 독립이라고 외쳤지만 또 다른 고립의 시작이 아닐까 두려워하는 내게 푸코가 왔다. 푸코의 의지로 온 건 아니겠지만 그냥 푸코가 나를 위해 왔다고 해두고 싶다. 부모님은 당연히 제멋대로 나간 딸의 독립을 탐탁지 않아했고, 그로인해 어색했던 공기는 한결 더 두텁게 어색해졌다. 부모님과 그들을 닮은 나는 이런 불편한 공기를 유연하게 만드는 데에 썩 유능하진 않았다. 


이 껄그럽고 매캐한 공기를 걷어낸 것은 김푸코였다. 타고난 아이스브레이커.

소원해진 불빛이 희미하게 신호를 주고받으며 부모님과 통화를 할 때면 조용하던 푸코는 아빠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나에게도 하지 않는 하울링을 푸코는 스피커폰 너머 아빠의 목소리에 맞춰 대답하듯 반응했다. 아빠는 그의 환영인사에 답하고 싶어 종종 나에게 전화하곤 했다. 푸코의 ‘아오~~’ 하는 하울링과 아빠의 ‘푸코야~ 하하하하~’ 대화를 듣고 있으면 뜻은 알 수 없지만 서로의 애틋함이 느껴진다. 가부장적인 시대의 아빠가 장성하여 출가한 딸에게 특정한 목적이 없이 전화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푸코가 그 시대 속으로부터 아빠를 끄집어낸 건지, 다정하고 따수운 아빠를 찾아낸 건지 알 수 없지만 아빠는 녀석을 통로 삼아 딸의 안부를 물으신다. ‘밥은 먹었냐? 옆에 푸코도 있고?’ 하며 두 식구의 일상이 궁금한 아빠의 전화를 받아 든다. 내가 개를 좋아하는 건 아빠를 닮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푸코가 아빠에게 반응하는 건 아빠 목소리에서 내 목소리의 파형이 흐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어렴풋 든다. (나는 첫째 딸답게 엄마보다 아빠를 많이 닮았다.)


여전히 스마트폰 조작에 서툰 아빠에게 가끔 푸코 사진을 보냈다.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지 않아 어설픈 문자로 아빠는 '귀엽다'라는 답장을 건넸다. 아빠와 이전에 몇 번이나 문자를 주고받았었나 싶으면서, 푸코의 사진 덕에 아빠한테 목적 없이 연락해 내가 애정 하는 것을 전달할 수 있어 감사했다. 아슬아슬하게 연결된 고리들을 그나마 푸코와 두부가 임시방편으로 붙잡아 주고 있다. 이 아슬한 연결 고리를 보다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인간의 몫이다.

이런 윤활제 역할을 해주는 푸코와 두부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녀석들은 삐걱거리는 관계항들이 보다 부드러워지는 장치들을 순간순간 심어준다. 나도 인간세상에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싶어 웬만하면 유쾌하고 둥근 문장들을 많이 건네려고 시도한다. 때로는 각지고 날카로운 문장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beast'가 먹히는 건 우리 모두 무해하고 담백한 것들에 대한 동경과 애정 같은 게 하나씩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엄마에게 보낸 사진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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