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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Jan 07. 2022

칸트와 푸코 사이 - 산책가자

멍멍이 산책 최적화 경로 : 공원-산-강

 푸코와 산책하기 위해서 이사를 할 때 늘 주변에 산책할 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본다. 아무래도 실외 배변을 하는 강아지인 데다가, 녀석의 활동량을 맞춰주기 위해선 널찍이 산책할 만한 공간이 늘 필수적이다.


1. 처음 선택했던 곳은 아주 큰 공원이였다. 00숲으로 불릴 정도의 아주 큰 공원. 집에서 몇 계단 걸어 나오면 공원 입구가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늘 사람이 붐비는 공원을 이른 아침(5~6시)부터 조용히 만끽했다. 매일매일 공원이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고, 조금만 더 나서면 한강으로 갈 수 있어서 하루에 세 번 산책을 한 적도 있다.

꽤 힙한 동네라 그런지 대부분의 카페와 음식점들은 강아지를 동반한 것에 우호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울 전역에서 온갖 멍멍이들이 모여들어, 주말에 산책을 하러 나가면 각양각색의 멍멍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가 푸코는 아주 즐겁게 마킹을 하고, 발길질을 했다. 늘 에너지 넘치는 공원을 뒤로한 채 우리는 떠났다.

산책하다가 둘이 텔레비젼에 나왔다.


2. 감사하게도 집에서 지근거리에 강이 있다. 강 주변으로 시설환경이 잘 꾸려져 있어서 그런지 동네 온갖 멍멍이들을 다 볼 수 있다. 강 주변의 보행자들은 비교적 개에게 우호적이다.

강바람에 실려오는 낯선 냄새 때문인지 푸코는 걷다가 가끔 멈춰 강바람을 만끽한다. 슬쩍 눈을 감고 바람결에 털이 빗겨나는 걸 보면 녀석이 행복하다는 걸 넌지시 느낀다. 가끔 강가를 따라 러닝을 하곤 하는데 비릿한 강바람은 늘 새롭다. 새삼 '나의 도시는 이런 모양새구나.' 하며 눈에 익숙한 도시의 풍경을 낯설게 담아본다.

다른 멍멍이닷!!!


3. 그다음으로 우리가 자리 잡은 곳은 산 바로 초입이였다. 정말 초입이였다. 산이라기보다 둘레길에 가까웠음에도 열린 창문 틈새로 넘어오는 공기는 달랐다. 멍멍이 개체수가 많은 동네는 아니였다. 다른 강아지를 만날 일이 그리 많지 않은 산책길이였다. 덕분에 조금 편하기도 했다. 푸코가 사회성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서, 산책하는 입장에서는 고요한 산책을 즐기기에 좋았다. 다만 도심에서 맡을 수 없었던, 청솔모나 고라니,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의 등장과 체취는 푸코를 역대급으로 흥분시키곤 했다. 푸코는 처음 듣는 소리를 냈다. 흥분되고 신나는데 무서운 듯한 온갖 스탠스를 취한다.

공원이 어느 정도 예상된다고 한다면 산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들을 보여주었다. 매일 바뀌는 나뭇잎과 공기, 날씨에 따라 풍겨내는 분위기까지. 푸코가 아니였으면 이렇게 부지런히 산을 음미할 수 없었을 테다. 덕분에 나는 어른들이 왜 그렇게 산을 좇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고작 몇 미터 차이로 도시에서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 매일 달라지는 자연을 보며 그 자연에 도취된 건 나였다.


철학자 칸트는 걸어다니는 시계라고 불릴만큼 규칙적인 생활을 했는데, 특히 산책시간을 꼬박 지키기로 유명했다. 푸코 덕분에 나도 하루에 두번 규칙적으로 산책을 떠난다. 사람들이 간혹 '바쁜 데 맨날 그렇게 두번 산책하는 거 힘들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물론 너무 춥거나 몸이 피로할 때 혹은 아플 때는 귀찮기도 하다. 하지만 리드줄만 들어도 빙글빙글 돌며 좋아하는 푸코를 보며 가까스로 옷을 챙겨입는다.


아침-저녁 산책의 루틴이 몸에 붙으니 오히려 산책을 안하는 날은 하루가 제대로 시작되지 않음을 느낀다. 게다가 적어도 산책하는 동안 만큼은 혼자의 시간에 생각들을 정리하고, 전자기기로부터 멀어지면서 나무와 햇살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값지다. (푸코 사진을 찍고 싶어서 핸드폰을 주섬주섬 챙기지만!) 아마 푸코가 없었더라면 내가 이렇게 까지 부지런히 움직일 수 있었을까. 적어도 산책 시간만큼은 소란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잘 놀고 쓰러져 잔다 zZ

도가니 건강할 때 열심히 달리자고 둘이서 다짐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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