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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Apr 01. 2022

고양이 풀 뜯어먹는 소리

개도 고양이도 다 풀을 뜯어먹더라고요.

한 때 꽃 구독 서비스를 했었다. 별다른 인테리어 없이 꽃으로 집안을 화사하게 만들어주고, 은은향 향이 차는 것 같아 꽃이 자리 잡는 집이 좋았다.


그런데 요청사항의 예시 중 '고양이가 있어 000은 빼고 보내주세요.'라는 문구가 있었다.


요상한 문구라는 생각과 함께 다묘 가정의 지인에게 물으니 백합과 식물이 갖고 있는 독성이 고양이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고 한다. 봄 되면 꽂아두었던 튤립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국도 고양이에겐 꽤 치명적인 꽃들이다. 왠지 집안에 수국, 백합 향이 날 수 없는 게 아쉽진 않지만 하마터면 두부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었을 거란 생각에 아찔하다.

자세히 보면 먹고 있는 듯

두부가 새 집에 적응하고 캣타워를 내려와 공간을 뒤적거리면서 때로는 화병 옆에 조용히 다가왔다. 다가와서 킁킁 꽃 냄새를 맡고 재빠르게 도망가곤 했다. 낭만과 거리가 먼 푸코와 달리 고양이는 꽃도 좋아하는구나 싶어 고양이에게 안전한 꽃들을 찾았다.


두부는 워낙 소리 없이 움직이기에 아주 작은 인기척이 들려 뒤를 돌아보면 거울 앞 화병에 자리 잡고 있었는 희고 뚱뚱한 털 뭉치를 발견하곤 했다. 두부의 하얀 털과 파랗고 노란 눈동자가 형형색색의 꽃과 그렇게 조화로울 수가 없었다. 항상 카메라를 들고 있다가 두부가 꽃내음을 맡을 때면 조용히 사진을 찍었다.

너무 예뻐ㅜㅜㅜ


그런데.

알고보니 두부는 꽃내음을 맡는 게 아니였다.

꽃과 함께 꽂힌 보리 같이 생긴 풀을 아작 내고 있었다. 그 양이 적어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풀이 모두 사라졌다는 걸 나중에야 눈치챘다. 생각해보니 고양이는 육식성이라 풀을 먹지 않는데, 그렇다면 두부가 밤새 뜯은 풀들은 어디로 간걸까? 어렵지 않게 열심히 뜯어낸 풀을 공복토와 함께 구석구석 잘 뱉어 놓았다.


캣잎인 줄 알고 열심히 키운 잡초

두부는 저승사자였다. 식물 학대범. 왠지 두부에게도 풀을 뜯는 행위가 좋은 것 같지 않아 꽃을 더 이상 주문하지 않았더니 집에 있던 낮은 층에 있는 야자수 잎들이 아작 나기 시작했다. 키가 큰 두부는 열심히 풀을 뜯었다. 이전 편에서 말했듯 우리 집 식물들도 아픔이 있는 녀석들이라 한 잎 한 잎 새로운 잎이 나올 때마다 기특함이 느껴졌다. 그런 이제 막 돋아난 잎사귀들을 두부가 아작 내놓으니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두부의 키가 닿지 않게 교묘히 돌려놓았다.


생각보다 두부는 영리했고, 두부는 뚱뚱한 몸을 이끌고 벽을 짚어 잎사귀를 뜯기 시작했다. 다행히(?) 특정 나무만 뜯는 것을 보니 취향이 있나 보다. 두부가 무자비하게 씹어대지만 야자나무는 새로운 잎을 계속 만들어주었다. 두부는 계속 잎을 뜯어 씹었다. 검색해보니 다행히 씹었을 때 위험한 풀은 아니다.


뜯고 시퍼

고양이가 풀을 왜 뜯어먹는지 인터넷을 뒤져보았지만 여러 가지 추측과 가설이 있을 뿐 정확한 이유는 확정되지 않았다. 이래나 저래나 나에게 고양이는 여전히 미스터리 하다.


내 생각엔 배고파서 밥 달라는 일종의 시위로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 (왜냐면 두부가 풀을 뜯어내는 시간이 보통 아침 5~6시인데, 이때 무지하게 밥 달라고 냐옹거린다. 하지만 나는 일어나지 못한다. 어느새 소리가 잦아들고, 일어나 밥통을 채워줄라치면 어김없이 풀이 뜯겨 나가 있다. 마치 문 앞에 똥 한 알을 뉘어놓는 행위처럼… - 나의 추측 끝.)


미안하다 칭구야..

공기가 뜨뜻해지고 만개하는 봄을 보니 그럼에도 꽃들을 들여오고 싶다. 푸코랑 봄꽃맞이하러 갈 때다!


봄은 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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