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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Mar 26. 2022

개 같은 두부, 고양이 같은 푸코

 원래 그런 건 없나 보다

두부와 푸코를 만나기 전,

잘못된 환상과 선입견이 있었다.

애교 많은 살가운 주인만 바라보는 개, 그리고 주인을 돌 보듯 하는 고양이


그런 환상 때문인지 나는 고양이보단 개를 더 좋아했다. '키우는 보람은 있어야 하지 않나.' 하면서. 그래서 처음 두부가 집에 온다고 했을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내가 봤던 두부는 숨어버리기 일쑤였고, 조금이라도 만지려고 손을 내밀면 잔뜩 긴장한 채 온몸을 수그려 빼버리곤 했다.

그러다 배가 고프거나 화장실을 치워야 할 때면 멀치감치에서 냐옹냐옹 거리는 모습이 얄밉기까지 했다. 비단 두부뿐만 아니라 십여 년 지기 친구의 고양이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여러모로 나에게 고양이에 대한 데이터는 썩 긍정적이지 못했다.


푸코를 키우면서 강아지에 대한 환상은 많이 사라졌다. 주인에게 정겹게 몸을 부비는, '앉아' '손' '엎드려'를 멋들어지게 소화하는 강아지. 먼발치서 '푸코~' 하고 부르면 전력 질주하여 주인에게 뛰어오는 강아지. 뭐 그런 강아지들. TV 프로그램에는 분명 이런 똑똑이들만큼 문제견들도 많이 나왔음에도 나는 똑똑이들로 인해 부질없는 환상만을 갖고 있었다.

나는 집에 가기 싫어

사실 푸코는 꽤 고양이 같은 면이 많다. 불러도 들은 체 만 체 하고, 손에 간식 형상 같은 게 비쳐야 어쩔 수 없이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그리곤 간식이 손에 없다는 걸 알면 다시 자기 영역으로 돌아간다. 산책할 때도 그의 독립성은 유독 도드라진다. 푸코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산책을 간다.

고집은 또 어찌나 센 지 소리 없이 온몸으로 버틸 때면 '아휴 이 녀석이 진짜.' 하면서 그의 선호대로 따라간다. 날씨가 좋은 날의 함박웃음이 보고 싶어 멀리서 '푸코야~'라고 불러도 뚱한 표정으로 힐끔 보고 이내 자기 갈 길을 간다. 그러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간식 주머니를 알아채는 순간 저 멀리서 함박웃음을 짓고 달려온다.

거긴 왜 올라갔을까…?

다른 개와 만나면 더욱 고양이 같은 성격이 확연히 드러난다. 비 오는 날, 철푸덕철푸덕 물 웅덩이를 튀겨가는 친구 강아지 옆으로 푸코는 보도 블록 끝자락 높은 이음새 사이를 일열로 걸어가고 있다. '물을 절대 밟지 않겠어.'라는 강한 의지를 보이며. 귀가 후 어쩔 수 없이 다리에 튀긴 물을 열심히 핥는다. 고양이처럼 깔끔을 떤다. 덕분에 집 안 아무 데나 용변을 보지 않지만 우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끙아를 하러 밖으로 나가곤 한다.


부르면 정겹게(?) 봐라봐주심


그리고 나의 또 다른 편견을 깨준 것은 두부다. '냥며들었다'는 부제의 글이 임시저장 글 더미에 파묻혀 있다.

사람들이 '나만 고양이 없어.'를 외칠 때도 '음, 고양이..?'라며 길 위의 고양이 정도에만 관심을 두던 나에게 어느 날 두부가 찾아왔다. 두부를 처음 만난 날이 선명하다. 예민하고 소리에 민감하고 겁이 많은 두부. 고양이는 쉽지 않다는 내 짐작은 점점 오류였다는 것도 선명해지고 있다. 나에게 이렇게 강하게 애정을 갈구하는 생명체가 있던가!


안아됴. 만뎌됴.

서로가 어색했던 시간들을 지나며 두부는 점차 몸을 맞대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을 만지라고 요구한다. 잠결에 살짝 눈을 뜨면 머리맡에 흰 덩어리가 세상 평온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소파에서, 책상 앞에서, 침대 한편에서 어디를 가든 두부는 졸졸 쫓아와 나에게 몸을 기댄다.

내가 상상했던 개의 행동들을 두부가 하고 있다. 마치 이 세상에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두부는 듬뿍 사랑을 강구하고 쏟는다. 적정한 선긋기를 좋아하는 나는 이런 두부의 행동들이 낯설지만 어느 밤 고양이가 머리맡으로 다가오지 않으면 서운한 사람이 되었다.

두부의 꼬리수갑.. 집사는 웁니다


둘의 성향이 적절히 엇비슷해서인지 성견과 성묘가 합사를 했음에도 큰 마찰이 없었다. 가끔 서로 만나면 어설프게 꼬리를 흔들고 고양이 주먹을 휘두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무난하게 과정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참 사람이든 동물이든 겪어보기 전까진 함부로 결론지어선 안된다는 걸 배우고 있는 요즘.


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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