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끼 Mar 02. 2022

'바쁘다바빠 현대사회'를 우리가 살아가는 법

고양이의 속도와 개의 밀도

사람마다 살아가는 속도와 밀도가 다르다. 어쩌다보니 사회적 기준에선 꽤 밀도가 낮은 일을 하고 있다. 사람에 따라 '아니에요. 빡센 일이에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야근에 초근까지 물리적 시간을 할애하는 다른 직군의 친구들에 비하면 느슨한 편이다.


일을 줄인 지 어느덧 3년째가 돼가니 자연스럽게 삶의 밀도는 낮아지고, 속도는 현저히 낮아졌다. 어쩌면 자리 잡은 동네의 삶의 속도가 더욱 이를 가속화시켰을지도 모르겠다. 전에 살던 곳은 거의 매일 공사 현장이 있었고, 늘 힙한 젊은이들이 동네를 찾았고, 1년을 버틴 가게가 대단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곳이었다. 수많은 원자들이 밀집되어 부딪혀 내는 열과 소리에서 나는 꽤 피로감을 느꼈다. 나도 움직이는 저들처럼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무언의 압박 혹은 무언가를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을 활기.


먹을 때만큼은 역동적

지금 우리가 자리 잡은 곳은 과거에 비하면 그 밀도와 속도가 흐려져 마치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거기에 나이가 있는 두부와 푸코의 속도는 세상 느긋하기 짝이 없다.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둘은 조용하고 정적이고 차분하다. 하루의 대부분을 햇빛을 쬐거나, 따뜻한 자리를 찾아 눕거나, 주인이 뭘 하나 구경하곤 한다. 간혹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일어나 먹을 걸 주진 않을까 하는 정도의 작은 움직임들이 있다.

물론 어릴 적 푸코와 두부는 그 누구보다도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았을지 모른다. 지금은 그 치열함 이후 노년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게 보인다. (사실 두부는 가끔 저렇게 잠을 많이 자도 허리가 안 아플까 싶을 정도로 많이 잔다...) 처음 녀석들을 만났을 때보다 둘은 많이 느슨해졌고, 여유 있어졌다. 활동량이 많이 줄고 에너지를 정말 필요한 곳에만 쓴다. 과거 낯선 이에 대한 경계도 많이 사라졌으며 이제 주변 환경이 변하는 것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평소의 푸코와 두부

얼마 전 누구보다 삶을 빡시게 사는 친구를 만났다. 얄파리한 봄 새싹 같은 그녀는 흘려보내는 시간을 아까워하고 관심 있는 것들을 탐닉해나가며, 이를 실행으로 옮긴다. 하루는 그녀와 함께 같은 밀도의 시간을 나눌 일이 생겼는데 그다음 날 나는 기진맥진하며 회복하기에 급급했다. 매일 이 밀도로 살아가는 그녀가 어떻게 쓰러지지 않고 살아나가는지,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달구고 움직이게 하는지 옆에서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아직 그 몰입을 경험한 기억이 나는 전무하다.)


나의 게으른 성향 때문인지 이렇게 삶을 꽉 차게 살아내는 이들이 좋다. 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 같은 게 괜스레 나에게까지 전해져 나도 덥혀진다. 마치 한겨울 전기담요를 찾아드는 두부처럼. 물론 또래의 친구가 밀도 있게 삶을 살아낼 때면 여러 감정이 든다. 무언가에 매진하며 삶을 산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사는 대로 생각하는 대다수의 사람 속에서 생각하는 대로 사는 보물 같은 존재들이기에 감사하기도 하다.


어떤 속도가 옳다고 할 수 없다. 더군다나 '바쁘다바빠 현대사회' 속에서 내 속도감을 알고 휩쓸리지 않은 채 밀도 있게 살아낸다는 그 자체가 기적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자기 속도대로 밀도 있는 매일을 살아내는 이들이 있기에.


 출근하자!


감시하느라 바쁜 두부
자요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집 강아지는 어쩌면 F와  T 그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