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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Oct 21. 2022

시골 개의 교양 있는 도시 문물 적응하기

자연주의 강아지는 현대문명이 도대체 낯설다

검색은 계속됐다.

개 캐리어를 자전거 뒤에 설치, 안장에 설치, 핸들에 설치 등등 온갖 키워드를 넣어가며.



결국 검색 끝에 적당한 아이템을 찾았다.

어부바. 정말 이름 그대로 개를 뒤로 매는 방식이다. 가끔 급할 때 녀석을 동생의 농구 운동가방에 넣어본 적은 있었으나 백팩이라니.. 사이트를 찾아보니 맥스 사이즈까지 있어 시베리안 허스키 같은 대형견도 착용이 가능했다. 홈페이지엔 만드신 분이 실제 본인들의 개들과 사용하고 있다는 소개글과 그들의 행복한 여행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 한 녀석이 푸코랑 비슷한 긴 주둥이를 갖고 있어, 구매하기도 전에 푸코와 함께하는 온갖 상상을 해봤다. 그런데 때마침 체험단을 모집하고 있었고, 이게 웬 운명 같은 일이냐며 지원 끝에 운좋게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의 '애매한' 강아지는 역시나 이번에도 사이즈를 정할 때 고민이 많아 몇 번이고 줄자를 들이대야 했다. 아예 크면 L 사이즈를 고를텐데, M 사이즈는 행여나 조금 타이트하지 않을까 이번에도 사이즈의 경계에 서서 견체공학 팀에 문의를 하고 마침내 가방을 기다렸다.


애매까리한 푸코의 사이즈

설레는 마음으로 탄탄한 짙은 녹색의 가방을 받아 들었다. 평소에도 보부상처럼 짐을 많이 갖고 다녀서 숄더백보다는 백팩을 선호하기에, 백팩 형식의 이동가방이 기대된 반려인이었다. 강아지가 가방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간식을 주고 좋은 기억을 심어줘야 한다는 설명서의 글귀를 숙지하고 푸코에게 소개를 했다. '푸코 야, 이건 네 산~책~ 가방이야. 여기 들어가면 좋은 데로 갈 수 있어.' 녀석은 평소처럼 내 말은 귓등으로 듣고 간식을 허겁지겁 찾아먹었다.


본격적으로 어부바 가방 착용을 시도했다. 앞다리를 양쪽 구멍에 쏙 넣고 목 부분을 채웠다. 아니나 다를까 이때부터 녀석이 굳기 시작했다. 자연주의 라이프를 살아왔던 우리 집 시골 누렁이는 이런 도시 문물을 아주 낯설어한다. 활동하기 편한 옷을 살짝 걸치기만 해도 뚱땅 뚱땅 뚱땅 걷는 우리 집 촌스런 멍멍이.. 평소엔 꽤 재빠른 편인데, 목둘레에 스카프만 해도 그 걸음걸이가 0.5배로 느려진다. 그런 녀석이기에 자기 몸 전체가 고정되는 가방은 녀석을 고장내기엔 충분했다.

'자 뒷다리를 하나씩 넣자~ 아이고 착하다~' 아이고 착하다를 주문처럼 쏟아내며 녀석의 온몸을 가방 안에 우선 넣었다. 여기까지는 성공. 이제 녀석을 앉히고 지퍼를 채워서 가방 안에 안정적으로 안착하기만 하면 된다. 녀석을 등에 업고 자전거 타러 나갈 생각에 벌써 신난다.


나주 야산의 보호소에서 만난 김푸코의 첫인상


그렇지. 네가 한 번에 앉을 리가 없지.

원래도 간식이 없으면 잘 앉지 않는 녀석한테, 몸에 무엇인가 걸쳐진 상태에서 앉으라고 하니 앉을 리가 만무했다. 녀석이 원치도 않는데 억지로 어디 데려가려는 나의 욕심인가 싶으며 방금 전 했던 자전거 타고 나가는 상상은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졌다. 처음 유기견 센터에서 왔을 때 녀석이 사료를 먹을 줄 몰랐으나 지금은 그 누구보다 게걸스럽게 먹는 것처럼,  이 역시 적응 후엔 녀석이 더 좋아할 것이라는 예감이 있다. (차 타고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김푸코..)


신 문물에 대한 거부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녀석을 다시 다독였다.

'이 녀석아, 나이 먹어서 누나한테 업혀서 여기저기 돌아댕기자.' 집사의 간절함이 닿았던 것인지 고맙게도 녀석은 가방 안에 앉았고, 쏙 들어간 녀석을 들어 올려 마침내 등 뒤로 업었다. 아까 미뤄두었던 상상을 다시 꺼내본다. 등산을 같이 갈까, 자전거 타고 하남까지 가볼까, 상암동가서 사진 찍고 올까.. 등등등 지도 어플을 켜 함께 가면 좋을만한 곳들에 별표를 했다.


나라 잃은 표정 금지
가끔 나는 고장 난다. 아니 자주

이후로도 푸코를 설득해 가방에 친숙하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다. 첫 시도 때보다 갈수록 수월해져 가는 녀석은 걸 보니 반려인의 애잔한 노력을 녀석도 아는 눈치다. 여전히 적응 중이지만 현재는 등 뒤에 어부바 가방을 메면 푸코는 알아서 두 다리를 내 어깨에 척척 올려놓는다. 여전히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짓지만 녀석도 횟수가 거듭될수록 즐긴다는 걸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도 몸에 이것저것 두르는 게 싫어서 반지, 목걸이 하나 없는데 어쩜 이런 건 서로 닮아가는 건지..

촌스러운 누렁이도 나도 신문물들을 차츰 시도해보고 있다. 이제 어디로 가볼까?



**이 글의 토픽이 '업어 키운' 개 자식인 이유입니다.ㅋㅋㅋ

업고 돌아댕기는 이야기는 후에 계속 됩니다 :)


브런치 푸코 두부 이야기 

인스타그램 @foucault.doo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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