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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샘 Nov 11. 2019

낭만이 별 건가

 

가고 싶은 여행지 중에 굳이 유럽을 정한 이유 중에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파밀리아 성당을 직관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49인치 TV 프레임 안에서 처음 본 가우디성당은 나의 궁금증과 상상력을 한껏 부풀렸다.

궁금증은 탄성으로 변했다. 사그라다파밀리아는 화려한, 웅장한, 아름다운 등의 온갖 미사여구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예술작품이었다.  

성당 앞에 운집한 전 세계관광객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뒤로 꺾고 하늘을 찌르는 탑의 위용에 입을 벌렸다. 나도 그들 틈에 섞여 다시없을지도 모를 황홀한 순간을 만끽했다.      


‘프랑스에 가면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어야지.’ 오랫동안 상상했던 꿈은 현실이 되었지만 그 디테일에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에펠탑의 첫 느낌은 우리 동네 양화대교 밑에 있는 철탑이 생각나게 했다. 거기다 전 세계를 유혹한 에펠탑이 낡고 녹 쓴 철제라는 사실에는 배신감이 들기도 했다. 내가 고철더미를 보려고 여기까지 왔나?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는다고... 수많은 관광객의 웃음과 눈빛과 희열에 반사된 에너지가 에펠을 하나의 기념물로 추앙하고 있었다. 에펠탑과 그 주변은 자유를 즐기는 여행자들로 넘쳐나고 내 마음도 이내 그 물결에 동조되어 이렇게 중얼거렸다.

‘녹 쓴 고철이면 어때, 낭만이 별건가. 파란 하늘과 푸른 잔디가 있고, 한가로이 들려오는 음악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들의 즐거움이 내게도 전달된다면 그게 낭만이지.’

나는 파리의 잔디밭에 앉아 그곳만의 낭만을 끌어안았다.        



따뜻한 여행을 만들어준 사람들

여행 전의 불안과 걱정과 달리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눈빛은 따뜻했다. 여행을 하면서 느낀 건데 여행자들은 객지에서 겪는 불안함에 강한 동질감을 갖고 있는 듯 “Hi~!” 먼저 인사를 건네는 데에 인색하지 않았고 서로의 행운을 빌어주기를 아끼지 않았다.

프랑스 아를 기차역에서 호텔 가는 노선을 설명해주던 50번 마을버스기사는 내가 타야 할 버스를 세우고 이 사람(나를) 호텔까지 태워주라고 부탁하고는 쿨하게 사라졌다. 그를 도로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땐 운전석에서 손을 흔들며 웃어 주었다.

매일 가던 커피숍 주인은 세 번째 날부터는 주문을 받지 않고도 내가 원하는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핫 워럴(hot water)을 준비해 주었다. 그는 일주일 동안 매일아침 찾아오는 동양인에게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웃음과 친절을 베풀었다.


그곳(여행지)에는 이성을 가진 정돈된 사람들과 찾아오는 누구와도 같은 숨, 같은 하늘을 나눌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는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돌아왔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35일간 12개의 도시를 방문했다. 비행기, 기차, 버스, 전철, 배, 택시 이동 가능한 교통수단은 다 타보고 하루 10km는 기본으로 걸었다. 유럽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당을 들러보고 박물관과 5일장도 구경했다. 배고프면 식당을 찾고 예쁜 귀걸이를 구매하고 빨래방을 찾아 헤매기도 하면서 그 나라 도시만의 독특한 문화를 눈으로 보고 자유로운 사고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여행은 자신감이다. 하루라도 젊었을 때 여행을 떠나자.  

한 달 여 동안 홀로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온 나는 행운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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