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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샘 Nov 11. 2019

잊지 못할 파리 이야기


여행의 종착지 파리에 입성한 날이었다. 프랑스 남부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해 파리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낮 1시 30분이었다. 예약한 호텔까지는 25Km, 택시와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고 택시요금은 50불이었다. 대중교통비는 저렴하지만 목적지까지는 4번의 환승과 900m 도보, 2시간이 소요된다고 검색되었다. 

여행경비를 아끼려면 대중교통이 답이지. 나는 자유여행자에게는 남는 게 시간이라 위안 삼으며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문제는 호텔 주소를 잘못 입력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6월, 프랑스의 태양은 살갗을 뜨겁게 지지고 무거운 캐리어가 버리고 싶은 짐이 될 때쯤, 4번의 환승과 900m를 걸어 도착한 곳은 호텔이 아닌 시골 주택가였다. 그 순간에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호텔예약 사이트에 접속해 주소를 검색하니 35Km 밖에 호텔이 있다고 안내했다. 

불행은 연속으로 찾아왔다. 질질 끌고 간 캐리어바퀴가 마모되어 굴러가지 않고 체력은 이미 탈진각이었다. 그제야, 너무 늦게,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인적 드문 시골길에 택시가 없다.

15분, 20분, 불안이 엄습할 즈음 예약한 손님인 줄 알고 차를 세운 택시기사가 다른 택시기사를 불러주겠다고 떠나가고 한참이 지나서야 할아버지 택시가 나타났다. 나는 두려웠던 마음을 쓸어내리며 택시에 올랐다. 

이번에는 할아버지 기사가 문제였다. 그는 술을 마셨는지 출발하자마자 도로 방지턱을 쿵 하고 연속으로 박더니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씩 웃었다. 이런~~

그뿐인가, 퇴근시간에 고속도로에 올라서니 정체구간이고 핸드폰보다 작은 내비게이션을 확인할 때마다 옆 차선을 넘나들며 곡예를 펼쳤다. 말도 안 되게 기사가 운전에 집중하면 길을 놓치고 내비를 쳐다보면 양옆을 질주하던 차들이 빵빵 위협을 가했다. 

“주여~주여~” 그는 영어를 모르고 나는 프랑스어를 모른다. 나는 기사에게 운전에 집중하라고 한국어로 소리쳤다. 그리고 내비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수신호를 전달했다. ‘앞으로’ ‘좌회전’ ‘우회전’,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40여분 동안 나는 택시기사의 시시껄렁한 농담을 무시하고 안전띠를 꽉 붙잡았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나니 저녁 7시, 그제야 배고픈 감각이 온몸에 퍼졌다. 아침 떠나기 전 마신 미숫가루가 마지막 음식이었으니 12시간을 공복상태였다.   

먹을 것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호텔 뒤 마트가 눈에 들어왔다. 빨리 무엇이든 입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에 눈에 보이는 피자 한판과 과일 몇 가지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쭈욱~늘어지는 치즈의 부드러움을 상상하며 피자를 한웅큼 베었더니 아악~ 이가 부러질 듯 아프고 누룽지처럼 딱딱한 피자가 부러져버렸다. 순간 온종일 누르고 눌렀던 서러움이 터져 나왔다.

아~~ 파리여... 파리여...     

환불할까? 환불을 해줄지도 문제지만 그럴 기운이 없어 침대에 몸을 던졌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고 자꾸만 억울한 감정이 목구멍을 치고 올라왔다. 

환불을 못 받아도 좋으니 항의라도 해보자. 아니면 너무 억울해서 오늘 밤 잠을 못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번역 앱의 도움을 받아 내가 해야 될 말을 되새기고 마트에 들어섰다. 

저녁 9시, 마감을 하려는지 손님은 없고 계산대 앞의 직원이 돈을 세고 있었다. 나는 문 앞에 선 사람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을 걸었다.

'Can I refund this it?'

그에게 문제의 피자를 내보였다. 그는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 순간 당황했다. 다음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다음 말을 영어로 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겐 없었다. 하지만 영어를 못한다고 돌아서면 이 억울함은 어디 가서 하소연하나. 그 순간 한국어가 터져 나왔다.

“이것 봐요 사장님, 이렇게 딱딱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당신이라면 이걸 먹을 수 있겠어요?”

그 말 외에도 한참 피자박스를 흔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기가 너무 드셌나? 낯선 이방인과 피자 조각을 번갈아 쏘아보던 사장이 계산대의 직원에게 환불해주라고 지시했다. 그러더니 직원을 밀쳐내고 잔돈푼을 세어 내밀었다. 환불하는 손길이 거칠게 느껴졌다. 

나는 피자 값 6.9불을 환불받았다. 돌아오는 내내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환불받으러 가기 전 내 목적은 오늘 하루 종일 쌓였던 억울함을 한 번이라도 표출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지 환불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한국어로 따지던 나와 툴툴거리면서도 환불 해주던 직원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그 상황이 어처구니없고 놀랍고 기어이 환불받은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했다. 

낯선 이방인이 피자를 흔들며 항의하는 모습이 현지인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그 날은 여행 중 가장 고단한 하루였고, 유럽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날로 기억된다. 

그 일을 겪으며 나는 무엇이든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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