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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샘 Nov 11. 2019

Hi! Hello! Ciao! Bonjour!

첫 여행지였던 로마의 인상은 강렬했다. 바다보다 더 파란 하늘엔 흰 구름이 유유자적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사실에 입이 떡 벌어졌다. 콜로세움, 바티칸 박물관, 베드로 성당, 트레비분수, 이름 없는 건물과 돌탑들이 TV에서 보았던, 마치 방금 전 TV를 보다가 그 속으로 걸어들어 온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로마는 역사유물보다 관광객 수가 더 많은 여행자의 도시였다. 나는 오래되고 낡은 역사 속 어디쯤을 여행하듯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에서 잠을 자고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길을 걸었다. 나는 관광객이 아닌 이탈리안이 된 것처럼 코를 세우고 로마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여행 나흘 만에 우려하던 첫 시련이 찾아왔다. 며칠 동안 호텔 체크인할 때 외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관광지를 찾아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구글지도 맵을 이용했고 음식은 슈퍼에서 파는 햄버거나 한국에서 가져간 간편 식품으로 해결했다. 몇 개월 전부터 달달 외운 여행영어는 입안에서만 맴돌 뿐 낯선 외국인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 눈길은 바닥이나 허공에 매달고 다녔다.

그날도 아침 10시쯤 숙소를 나와 대성당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수많은 관광 인파속에 파란 눈의 꼬마와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나는 애써 눈길을 돌리며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 순간 아빠 손을 잡고 있던 꼬마가 나를 향해 “Hello~!” 인사를 하는 것이다. 겁에 질린 나는 못 들은 척 외면하고 발길을 재촉했다.

“Hello!~”

꼬마가 고개를 돌린 내 얼굴 쪽으로 다가와 해맑은 웃음으로 다시 인사를 건넸다.

“ㅎ ㅔㄹ로우~~”

나는 목구멍 안으로 숨은 비겁한 목소리를 간신히 끄집어내며 어색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낯선 이방인의 불안한 눈동자가 안쓰러웠을까? 그 순간 어린아이가 아닌 천사가 다가와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눈인사여도 괜찮아요. 우리 헬로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천사의 “Hello!” 한마디에 쪼그라들었던 자존감이 크게 날숨을 내쉬었다.

‘영어를 못하면 어때,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정서와 문화를 공유하는 우리는 세계인, ‘We are the world.’ 누구와도 “안녕~!” 정도는 할 수 있잖아.’

그날 이후부터 나는 외국인에게 서툰 영어로 길을 묻는 것을 창피해하거나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Hi, Hello, Ciao, Bonjour.

어떤 언어이든 괜찮다. 내가 먼저 말을 걸 수 없다면 상대의 호의에 웃어라도 주자. 소통은 Hi, Hello 단순한 인사에서부터 시작되고 바디랭귀지(손짓, 발짓)로도 얼마든지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이해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주문한 크라상과 우유 한 잔.

이런 일도 있었다.

해외여행을 꿈꿀 때면 항상 햇볕이 눈부신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 한잔에 브런치를 먹으며 여유를 즐기는 그림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며칠 동안 관광지를 둘러보느라 발바닥은 이미 물집 투성이였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어디까지가 식당인지, 어디서부터가 도로인지 모르게 색색갈의 야외평상이 도로를 점령하고 노랗고 하얗고 검은 웃음들이 여유 있어보였다. 나는 호객행위에 침을 튀기는 목소리를 따라 평상을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가도 ‘영어로 주문을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 때문에 길바닥에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여행경비를 아껴야지, 나는 피자 파스타를 좋아하지 않아.’      


그렇게 영어울렁증과 싸우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부터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을 관람하고 옥상에 올라 시내 전경을 굽어보며 탄성을 쏟아냈다. 시계를 보니 숙소를 나온 지 벌써 4시간이 흘렀다. 다리는 곧 주저앉을 듯이 아프고 배도 고팠다. 순간 속에서부터 치밀고 올라오는 생각 하나 ‘될 대로 돼라, 영어 못한다고 쫓아내지는 않겠지.’ 나는 눈앞에 보이는 어느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테이블에 앉아서도 수많은 생각들이 맴돌았다.

점원이 다가와 먼저 주문을 해줄까?

손을 들어 점원을 불러야 하나?

메뉴판의 글들을 알아볼 수 없으면 어떡하지?

이상한 음식이 나오면 또 어쩌나?


불안한 눈길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니 옆 테이블에 앉은 연인은 피자와 파스타에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드디어 점원이 메뉴판을 가져왔다. 순간 우려했던 걱정이 현실이 되었다. 메뉴에는 불친절하게도 그림이 하나도 없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책장 넘기는 연기를 하다가 한숨을 내쉬며 책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카운터 유리 진열대의 크라와상이 눈에 들어왔다.

살았다, 하는 안도의 숨이 올라오고 손을 들어 ‘Order new~!’를 외쳤다.

나는 크라와상을 가리키며 이렇게 주문했다.

“This one, Hot milk one.”

잠시 후 점원이 크라와상 하나와 따뜻한 우유 한 컵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별거 아니네. 괜히 겁먹었잖아.’

꼬깃꼬깃 쪼그려지다 못해 지하까지 숨었던 자존감이 다시 펴지고 무거운 다리도 가벼워졌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일상이 되는 법이다. 그 후로는 주문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그림이나 실물을 가리키며 ‘This one’ 정도만 할 수 있다면 주문은 어렵지 않았다. 현지인들은 외국인의 어설픈 언어에 관대했고 모르면 아는 쪽이, 답답한 쪽이 먼저 소통을 시도했다.     

여행은 자신감이 없어 못하는 거지 영어를 몰라 여행 못한다는 말은 핑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번 여행은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날들이 많이 있었다. 저렴하지만 맛 좋은 커피(1불, 1,400원)는 여행에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주고, 피자의 고장에서 맛본 오리지널 피자 맛은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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