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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샘 Nov 11. 2019

'나라'와 '민주주의'

대한민국 국민이 된 이후로 3번의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 참여했다.
대통령 선거를 처음 경험하던 겨울, 차분하던 도시가 시끄럽고 혼잡스러운 상황에 적응되지 않았다. 거리마다 빨갛고 파란 대자보가 아무 데나 걸리고 확성기가 질러대는 앙칼진 소리에 얼굴이 이지러졌다. 북한이나 중국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남한의 선거문화가 낯설게 다가왔다. 정치에 문외한인 나에겐 아직도 선거전 풍경이 시끄러운 잡음일 뿐이다.

2016년 겨울, 온 나라가 편을 갈라서서 대규모 시위를 하고 있었다. 매주 토요일 라디오, TV, 인터넷에서는 대통령과 그 비선 실세에 주목하고 있었다. 뉴스는 쉬지 않고 정보를 생산하고 입을 가진 사람이면 누가 더 새로운 소문을 전달하는지 경쟁이었다. 나는 ‘정치가 그렇지 뭐.’ 하고 외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저 사람들은 이 추운 날 무엇을 바라고 시위를 할까? 저런다고 무엇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는가? 저러다 잡혀가면 본인과 가족들은 위험하지 않을까?’ 어느 쪽이든 시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촛불집회가 최고조에 이르던 어느 토요일 저녁 6시, 나는 옷을 든든히 껴입고 광화문으로 나갔다. 시청광장 주변에서부터 광화문 앞까지의 도로는 이미 양쪽 진영이 자리를 잡고 한쪽은 촛불을, 다른 한쪽은 태극기를 흔들었다.
시청역 지하에서 올라오면 먼저 태극기 집회 현장이 있었다. 그 옆을 한참 배회하다가 용기를 내고 태극기를 들고 서있는 한 어르신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어르신, 여기 집회에는 어떻게 오셨어요?”
몇 초간 나를 쏘아보던 어르신이 거칠게 답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필요 없어, 저리 가. 젊은것들이, 우리가 얼마나 고생해서 세운 나라인지 니들이 알아?”
무뢰 했나? 무섭고 무안했다. 다시 주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광화문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양쪽 10차선 도로에는 자동차 대신 사람들로 꽉 찼다. 자동차만 다닐 수 있는 전용도로를 걸어서, 그것도 아무런 제재 없이 걷고 있다는 것에 이상하고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이 비장한 순간에 이런 감정을?
교보문고가 보이는 사거리 앞에서부터는 더 걸어갈 수 없었다. 도로 전체에 촛불을 든 시민들이 앉아 있었다. 그렇게 많은 군중 속에 둘러 쌓여본 것은 처음이었다. 두렵고 후회가 밀려왔다. 쓸데없는 호기심을 자책하며 돌아갈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광화문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밀고 올라오는 사람들에 막히고 버스를 타려면 어디까지 걸어가야 할지 막막했다.
촛불을 들고 함성을 지르는 군중 사이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들 중 누구에게 말을 걸 용기는 더 없었다.
확성기가 달린 대형 트럭이 움직이고 행진이 시작되었다. 깃발부대가 앞장에 서고 횃불을 든 부대가 뒤따랐다. 그 뒤로 촛불을 든 사람들이 거대한 덩어리로 응집되어 천천히 움직였다. 촛불은 광화문 쪽에서 좌회전하여 종로 쪽으로 움직였다. 그 모습이 마치 전장에 나서는 전사들 같았다.
나도 그 틈에 끼어들었다. 앞뒤 좌우를 살펴보니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무리, 10대 남아와 그보다 어린 여아를 목마 태운 부부, 20대 남자 무리, 여대생으로 보이는 친구들 무리 등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야 우리가 촛불 들고 있을 줄 몰랐다.’ ‘이렇게 소리라도 지르니 좋다.’
그들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촛불을 든 젊은 친구들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이라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나는 군중이 행진하는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40대로 보이는 여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촛불이 없으시네요. 이거 드세요.” “아, 네. 고맙습니다.” 얼떨결에 그가 건네주는 초와 종이컵에 불을 붙였다. 내 손에 촛불이 들렸다. 이때다 싶어 그녀에게 물었다.
“왜 여기 집회에 나오셨어요?”
“음...”
한참을 생각하던 그가 대답했다.
“나 한 사람이라도 촛불을 들어야 될 것 같아서 나왔어요. 이게 나라냐고요.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될 것 같아요.”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속에는 ‘나 한 사람의 말을 누가 들어준다고’라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 그러나 거리에는 그런 ‘나 한 사람’이 수십만이었다.


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것이 없다. 진보요, 보수요, 우파니, 좌파니 하는 단어는 몇 번을 들어도 잘 모르겠다. 잘 모르니까 내 방식대로 내가 ‘을’ 일 때는 바꾸자는 편에 섰다가 어쩌다 ‘갑’의 자리에 서면 지켜야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의 의견과 이익이 소중한 만큼 상대의 의사도 존중받고 함께 상생하는 그런 사회를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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